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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드립니다’ 그 다음은?..시즌2

  • 2014.12.19(금) 12:01

2014년 재계는 사과로 시작해 사과로 끝날 모양이다. 말 그대로 다사다난한 갑오년이다. 사과의 시작은 매끄러웠던 반면 끝은 심하게 덜컹거렸다.

 

연초 폭설로 경주 마우나 오션리조트 강당이 무너져 대학생들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이를 운영해 온 코오롱그룹은 바로 다음날 사과문을 발표하고 총수가 현장에 달려가 머리를 조아렸다. 사과의 원칙이라고 할 수 있는 ①타이밍 ②진정성 둘 다 합격점을 받았다. 호미로 막을 일을 호미로 막은 것이다.

 

반면 ‘땅콩 회항’으로 비난 여론의 도마에 오른 대한항공은 모르쇠와 책임회피로 일관하다 십자포화를 맞았다. ‘사과 같지 않은 사과’ ‘사퇴 같지 않은 사퇴’로 미적거리다 골든타임을 놓쳤다. 그 결과 당사자인 조현아 전 부사장은 구속 위기에 처했다. 타이밍과 진정성 모두 퇴짜를 맞으며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게 생겼다.
 
이렇게 상반된 결과를 낳은 원인은 뭘까.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은 그 원인을 경직된 조직문화와 낙제점 수준인 위기관리 시스템에서 찾았다. 그는 “오너와 경영진 등 상사에게 ‘노(No)’라고 얘기할 수 있는 조직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해결 방안도 제시했다.
 
전적으로 올바른 해법이지만 실천의지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대한항공은 회사 차원의 사과문에서 “환골탈태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는데 환골탈태는 임직원들이 아니라 오너 일가가 해야 조직문화가 달라질 수 있다.
 
그동안 대한항공은 황제경영의 대표적인 사례로 지목돼 왔다. 직원을 인간적으로 대우하는 게 아니라 종처럼 부려왔다는 것인데 이런 전근대적인 기업문화가 일조일석에 바뀌기는 쉽지 않다. 미국의 취업정보 사이트 글래스도어 (www.glassdoor.com)가 조사한 대한한공의 기업문화 평점은 2.2점(5점 만점)으로 꼴찌 수준이다. 여기에 글을 올린 한 직원은 “뭘 하든 꾸중 듣기는 마찬가지다. 의견을 낼 수조차 없다” “상사들이 마치 신처럼 행동한다”고 푸념했다.
 
예고 없이 터지는 위기에 잘 대처하려면 매뉴얼을 갖추는 것도 필요하지만 평상시에 긍정적인 기업 이미지를 쌓는 게 더 중요하다. 소위 평판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미지가 좋은 기업은 부정적인 이슈가 터졌을 때도 동정 여론이 형성될 수 있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운이 나빴다’ 하는 우호적인 분위기가 방패막이 역할을 하는 것이다.
 
긍정적 이미지는 광고를 많이 하고 사회공헌 투자비용을 늘린다고 해서 단번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최고경영자의 꾸준하고 일관된 관심과 투자가 뒷받침돼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한국 기업과 같은 오너경영 체제에서는 전권을 가진 총수가 직접 나서서 길라잡이 역할을 해 줘야 한다.
 
배우자 출산 30일 유급휴가, 안식월 및 안식주 운영, PC오프제를 통한 정시 퇴근, 여직원 안심귀가서비스, 직원 스트레스 관리 프로그램 등을 잇따라 도입하면서 기업문화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현대백화점그룹의 변신도 결국 오너인 정지선 회장의 결단에서 비롯됐다. 
 

‘사과드립니다’ 그 다음은? (2014-03-11)


‘엎드려 사죄드립니다’ (코오롱, 2월18일, 경주 마우나 오션리조트 강당 붕괴 사고와 관련)
‘무엇보다 먼저 피해 복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GS칼텍스, 2월11일, 우이산호 유류유출 사고와 관련)
‘고객님께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 (국민카드·롯데카드·농협카드, 1월 20일, 1억 건이 넘는 고객정보 유출 사고와 관련)

 

기업들이 각종 사고와 관련, 사과문 발표에 여념이 없다. 작업장 안전사고부터 정보유출사고까지 여러 유형의 사고들이 시도 때도 없이 터지고 있다. 부주의와 무신경이 불러오는 사고는 억울한 경우도 있지만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업들은 사고가 터지면 리스크 관리 매뉴얼을 가동한다. ‘사과(apology)성명→사태수습→(사과 성명)피해보상→재발방지대책→시스템 구축’ 등의 프로세스가 작동한다. 사고는 음으로 양으로 막대한 비용이 뒤따른다. 겉으로 드러나는 손실보다 이미지 실추에 따른 잠재손실이 더 큰 경우도 많다. 리스크 관리는 이 비용을 줄이는 기법이다.

 

①사과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타이밍을 놓치면 안 하느니만 못하게 된다.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걸 가래로도 막을 수 없는 상황으로 악화된다. 그런 점에서 경주 마우나 오션리조트 붕괴사고에 대한 코오롱그룹의 사과 타이밍은 참고할만하다. 인명사고의 경우 사과 타이밍은 빠를수록 좋다.(원인 규명을 한 뒤에 사과를 하는 게 일반적인 수순이다)

 

②사과는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상대방(피해자)이 인정하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겉치레 사과는 일을 복잡하게 만들 뿐이다. 사태 수습에 쏟는 정성, 피해에 대한 충분한 보상은 사과의 전제조건이다. 법률적 검토를 앞세우면 피해자의 반감만 살 수 있다.

 

사고 수습은 뒤처리가 깔끔해야 한다. 같은 사고가 다시 터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사고 대책의 처음과 끝이다. 그래서 재발방지 대책은 제도적이고 항구적이어야 한다.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들여다보고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마음가짐은 백번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다. 요즘 기업들은 이미지를 먹고 산다. 소비자들은 상품을 사는 게 아니라 이미지를 먹고 마신다. 휴대폰을 사는 게 아니라 ‘갤럭시’를 사는 것이다.

 

따라서 이미지를 관리하는 일은 이미지를 만드는 일 못지않게 중요하다. 경영자들은 이미지를 만드는 일에만 돈을 쓸 게 아니라 지키고 가꾸는 데에도 그만큼의 비용을 들여야 한다. 이런 점에서 리스크 관리 매뉴얼은 사고가 터졌을 때도 필요하지만 평상시에도 필요한 것이다. 사과는 벌어진 일에 대한 것이지만, 벌어질 일을 미연에 막는 것이 돼야 의미가 있다. ‘사과드립니다’ ‘거듭나겠습니다’에서 ‘달라졌습니다’로 진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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