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어는 우리한테 보양식이다. 그것도 주머니 사정 가벼운 서민들이 마음 놓고 배불리 먹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음식이다. 일본에서도 여름이면 장어를 보양식으로 먹는다. 사실 장어가 보양식이라는 개념은 우리보다 일본이 더하다. 복날이면 우리가 삼계탕 먹는 것처럼 일본인은 장어를 먹고, 여름에 장어를 한 번쯤은 먹어줘야 더위를 타지 않는다는 믿는 일본이다.
보양식이 워낙 풍부한 중국 역시 두드러지지 않아서 그렇지 장어를 보양식의 개념으로 먹는다. 다만 음력 5월을 장어의 계절로 여겼으니 먹는 시점은 조금 빠른 것 같다. 단오에 먹는 장어는 인삼보다 낫다고 한다.
영국에서도 장어를 먹는다. 서양인들이 장어를 먹는다는 사실에 다소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없지 않지만 그것은 편견이다. 먹는 음식에 굳이 동서양의 구분이 있을 수 없다. 장어는 영국, 그 중에서도 수도 런던의 전통적인 토속 음식이다. 런던 토박이들이 시내를 관통해 흐르는 테임즈 강에서 장어를 잡아다 요리해 먹었기 때문이다. 옛날 서울 깍정이들이 청계천에서 미꾸라지를 잡아 끓여먹은 것이 서울식 추어탕으로 발전한 것과 똑 같다.
런던 토박이들이 장어를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한때는 한 집 건너 또 한 집 장어 전문 음식점이 생겨났을 정도라고 한다. 물론 현재의 이야기가 아니고 19 세기를 전후해 런던 동부, 즉 이스트 런던의 풍경이지만 장어 전문점이 번성했던 흔적은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 옛날 런던 토박이들은 왜 그렇게 장어를 열심히 먹었던 것일까? 동양과 마찬가지로 장어가 몸에 좋은 보양식이라고 여겼기 때문이 아니다. 엉뚱하지만 산업혁명의 결과다.
19세기 전후의 런던은 산업혁명의 여파로 환경오염이 극심했다. 테임즈 강 역시 오염물질을 마구 버려 새까맣게 변했고 물고기들이 살 수 없는 죽음의 강으로 변했다. 결국 테임즈 강에 살던 물고기들이 하나둘씩 사라졌지만 생명력이 강한 장어만큼은 오염된 강물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남았다.
런던의 중산층들은 오염된 테임즈 강에서 잡은 장어를 먹지 않았다. 하지만 가난한 서민들은 또 달랐다. 지금도 이스트 런던은 서민 거주지역이지만 19세기에는 주로 공장 노동자들이 몰려 살았던 지역이었다. 산업혁명 당시 노동자들에게 오염 여부를 따지는 것은 사치였다. 이들은 값싸고 영양이 풍부한 장어를 먹으며 단백질을 보충했다.
▲ 삽화: 유상연 수습기자/prtsy201@ |
이때 발달한 음식이 런던의 장어 파이다. 사과로 만든 애플파이나 소고기를 넣어 만드는 미트 파이처럼 파이에 장어를 넣어 으깬 감자와 함께 먹었다. 지금도 런던 서민의 대표 음식으로 꼽히는 파이 앤드 매시(pie and mash)다. 흔히 영국을 대표하는 서민음식으로 생선 튀김과 감자 프라이인 피시 앤 칩스(fish and chips)를 꼽지만 따지고 보면 장어 파이가 더 오래 된 런던 토속음식이다. 그리고 더운 여름에는 장어를 끓였다가 식힌 장어 푸딩이 인기였다.
동양에서는 장어가 중산층의 여름 보양식이었지만 산업혁명 당시 런던에서는 장어가 이렇게 서민과 노동자의 생존을 책임진 영양식이었다. 어쨌거나 장어가 그만큼 동서양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영양식품이라는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