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이다.
111년 만의 기록적인 폭염으로
서울은 서프리카로 불릴 정도다.
서울 광화문엔 이보다 더 뜨거운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거리의 삶을 살던 노숙인들이
광화문의 추억을 만들어주는
사진작가로 변신했다.
광화문광장 해치마당엔
노숙인의 재활을 지원하는
희망사진관이 자리하고 있다.
광장에서 촬영 후 인화한 사진은
즉석에서 가져갈 수 있다.
광화문 희망사진관은
조세현 사진작가와 서울시의 공동작품이다.
조세현 작가는 사진을 좋아하는 이라면
누구나 아는 대한민국 대표 사진작가다.
비영리 사단법인인 희망프레임을 통해
2012년부터 6년간 177명의 제자를 키웠다.
과연 어떤 계기로 이 일을 시작했을까.
"영국 윌리엄 왕자가 주최하는
'포지티브 뷰(A Positive View)'라는
사진전에 초청받은 적이 있는데
사진경매 금액으로 노숙인 작가를
양성하는 걸 보고 큰 감동을 받았어요.
당시 박원순 변호사의 사진을 촬영하며
이 이야기를 함께 나눈 적이 있는데
서울시장이 된 후 뜻이 맞아
'조세현의 희망프레임'을 시작하게 됐죠."
감동으로 일을 시작하긴 했지만
지금까지 힘든 과정은 없었을까.
"저는 원래 사람을 좋아합니다.
어떤 사람이든 애정을 느껴요.
도와줘야 할 대상이라기보다
인격적인 친구로 생각합니다.
제가 지금은 광고사진이나
유명인들 사진을 많이 찍지만
젊었을 때는 사회에서 이슈가 되는
다큐사진을 많이 찍었어요.
소외계층과 스타들이 함께 한
'천사들의 편지'가 사진인생의 결정체죠.
밝은 빛과 어두움을 합치는 작업이었죠.
사진의 원리인 빛과 그림자와 비슷해요."
조세현 작가는 재능기부를 통해
우리가 보지 못했던 곳곳의 그림자를
직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모두가 인격을 가진 같은 인간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봐 주시면 됩니다.
노숙인을 바라보는 여러 시선이 있지만
어쩌면 우리가 그들을 거기로
밀어 넣었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가 중요해요.
인식의 문제지요.
인물 사진을 몇십 년 찍으면서 느낀
제 감정을 모두 이해하긴 쉽지 않아요.
하지만 저도 그 일을 꾸준히 하면서
많은 인식의 변화를 느낍니다.
그게 제가 할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랜 시간 꾸준히 하다 보면
같이 고민하고 동참해주는 분도 많아져요.
주변에선 노숙인과 입양아, 장애인들을
돕는다고 하는 데 사실 돕는 게 아니라
작가로 그들을 만납니다."
서울시 자활지원과 나종택 주무관은
노숙인들이 사진을 배우면서
부쩍 많이 달라졌다고 전했다.
"사진을 배우면서
알코올 중독자가 술을 끊고
도박 중독자가 도박을 끊고
아무런 의지가 없던 분들이
어떤 일에 집중하는 모습을 봅니다.
사진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노숙인 분들이 자신감을 갖고
삶에 대한 의지가 생기는 계기가 되는 거죠.
서울시도 사회적인 인식을 개선하려고
여러 방면으로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자신감을 회복한다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거든요.
이 과정에 조세현 작가의 역할이 큽니다.
노숙인 분들이 조세현 작가님에게
배웠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이 있어요.
조세현 작가님이 사진은 물론
인문학 강의까지 주선해주시는데
사회 각계각층 저명인사들을 초청해
이야기를 들을 기회를 만들어 주시죠.
당장 눈앞의 도움보다 멀리 내다보고
스스로 일어서도록 돕고 있습니다."
'조세현의 희망프레임'엔
많은 사람이 함께 하고 있다.
조세현 작가가 광화문에 오던 날
여러 회원도 함께 광화문을 찾았다.
'조세현의 희망프레임' 회원인 이인숙 씨는
찜통더위에도 아랑곳없이 이런저런 포즈로
여러 장의 사진을 찍는다.
"저는 사회복지사인데
조세현 작가님이 어려운 아이들에게도
사진을 가르쳐주고 있어요.
그중에 우리 센터 아이들도 있는데
다들 너무 좋아해요.
작가님이 직접 스튜디오로 데리고 가
고가의 장비도 보여주시곤 하는데
최고의 작가님에게 배운다는 자부심으로
자신감 넘치는 아이들로 변하는 걸 보면서
작은 도움이라도 될까 해서
이 일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사진을 배운 학생 중 3~4명은
특성화고에 진학하기도 했습니다."
강승천 씨는 일반인 사진 교육을 듣다가
조세현 작가의 활동에 감동을 받아
희망프레임 회원이 됐다.
"사진으로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노력을 보며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도 이 일에 참여하면서
노숙인을 새롭게 보게 됐어요.
여러 가지 이유로 노숙인이 됐지만
제대로 동기부여만 된다면 새로운 삶을
찾을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생겼습니다."
이재영 씨는 희망사진관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4년 전 일인데
노숙인에게 사진을 가르쳐준다는 거예요.
그것도 유명한 조세현 작가가.
그래서 덜컥 사진을 배우게 되었죠.
아주 우연한 기회였지만
스스로 저 자신을 돌아봐도
그 전과 후 많이 달라졌어요.
초등학교를 중퇴했으니
전문지식이라고는 전혀 없죠.
그런데 4년에 걸쳐 사진을 배우면서
저만의 전문지식을 쌓을 수 있었고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껍데기만 있는 희망이 아니라
내가 노력해서 뭔가 이뤄가는
희망이어서 무엇보다 큰 힘이 됩니다.
태어나서 지금이 가장 행복합니다.
제 영역을 인정받고 존중받는 느낌
57살에 찾은 행복입니다."
김창훈 작가는 2015년 희망사진관이
오픈할 때부터 꾸준히 일하고 있다.
김 작가는 사진을 배우고
그 계기로 출연한 한 TV프로그램을 통해
헤어졌던 가족과도 만났다.
"젊을 때 많이 방황했죠.
외국으로 공부하러 갔다가
노숙인 처지가 됐어요.
자연스럽게 가족과도 연락이 끊기고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노숙인 생활을 계속하다 보니
가족을 찾을 생각은 아예 못했죠.
부모님은 다 돌아가시고
형제자매에게 의지하고 싶지도 않고
그때는 희망이 아예 없었고
될 대로 대라는 식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홈리스 월드컵에 참여하려고
칠레에 간 적이 있었어요.
바닷가 구름이 너무 멋있는데
함께 간 사진작가님이 그 풍경을
너무 멋지게 담으신 거예요.
그 모습을 곁에서 보면서
사진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죠.
마침 2015년 1월 희망프레임에서
사진 지원자를 뽑아서 지원했죠.
그 후 전시회도 하고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김창훈 작가는 직접 찍은
무지개 사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광화문에서 촛불집회가 처음 열리던 날
무지개가 하늘에 뜬 거에요.
무지개를 보면 희망을 말하잖아요.
저 또한 지금 절망 가운데 있거나
희망을 발견하지 못한 분들에게
이 사진을 보여드리며 말해주고 싶어요.
일곱 빛깔 아름다운 무지개처럼
희망은 분명히 다시 떠오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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