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음악으로 영화를 색칠해요

  • 2019.08.30(금) 11:02

[페북사람들] 방보영 프리랜서 다큐감독

아침에는 매미 울음소리가

떠나는 여름을 아쉬워하고

저녁엔 귀뚜라미 노랫소리가

가을이 다가왔음을 알린다.

퇴근길 석양이 뉘엿뉘엿

넘어갈 즈음 귓속 이어폰에서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영화 제목도 영화 내용도

토토의 30년 전 어린시절처럼

아득하고 또 아득하지만

엔니오 모리꼬네가 작곡한

'시네마 천국'의 주옥같은 ost는

잊고 있던 나만의 그 시절을 소환한다.

김민영 씨는 영화음악감독이다.

영화 속 인물들의 감정 선을 따라가며

영화음악 작업을 하고 있다.

"영화음악은 영화를 위한 음악이에요.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기보다는

그 영화에 맞게 그 이야기를

가장 잘 서포트해줘야 합니다.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상징적이면서도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게

영화음악 작곡가의 역할이죠.

제가 좋아하는 알렉산드라 데스프라는

영화음악 작곡가를 페인터에 비유했어요.

감독이 그려준 밑그림에 색채을 입혀

비로소 그림을 살리는 역할이라는 거죠.

그 다양한 색감과 색채는 무궁무진한

악기와 장르에 비유할 수 있어요."

영화음악을 전공하게 된 계기는 뭘까.

"영화와 영화음악을 좋아했어요.

재즈피아노 연주 전공으로 입학했지만

작곡에 대한 갈망이 늘 있었어요.

그러던 중 우리나라와 미국에서

영상음악 작곡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고

영상 내에서 음악의 큰 힘을 알게 됐죠.

작곡과 창작을 즐기는 저도 발견했어요.

그 시간들을 통해 확신이 들었고

영화음악 전공을 결심하게 됐어요."

"원래 한국에서 음악을 하고 있었는데

마음 한구석엔 뭔가 갈증이 있었어요.

무엇을 좋아하고 또 하고 싶은지에 대해

묻고 또 물으면서 방황의 시기를 보냈죠.

그 시기 나사렛대 곽윤찬 교수님을 만나

재즈를 공부했고 또 교수님 권유로

오디션을 통해 버클리 음대에 합격해

미국으로 건너하게 됐어요."

"외국생활은 처음인데다

가족을 떠나 홀로 생활하다 보니

언어나 문화가 달라 적응이 힘들었어요.

언어가 유창하지 못하다 보니

한동안 이방인으로 살 수밖에 없었죠.

제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된 시간이었어요.

음악이라는 소통 창구가 없었다면

몇 배는 더 힘들었을 것 같아요."

"학교에서도 시행착오가 많았죠.

하지만 그만큼 수확도 컸어요.

제가 무엇을 잘하고 또 좋아하는지

확실하게 알게 된 시간이었어요.

유학생활에서 얻은 가장 큰 배움은

창작자로서 마음가짐인 것 같아요.

학교에서 프로젝트를 하고

곡을 쓰는 과정을 거치면서

제 안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완벽주의와 직면할 수 있었고

그것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깨닫고

또 내려놓는 값진 시간이 된 거죠.

곡을 만들면서도 완벽해질 수 있고

당장 완벽하지 않아도 계속 만들고

또 하나씩 하나씩 해나가다 보면

조금씩 조금씩 더 발전한다는 걸

몸소 체험한 시간이었습니다."

지금은 영화음악감독으로서

첫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상업영화 음악작업에 참여하게 됐어요.

음악이 중심이 되는 가족 영화입니다.

학교에선 아티스트적인 부분을

가장 많이 생각하고 공부했는데

현장에서 직접 작업에 참여해보니

유연하게 많은 대중들과 호흡하고

소통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우고 있어요."

김 감독의 작업실 한쪽 벽엔

다양한 글들과 그림이 붙어 있다.

김 감독이 가장 큰 영감을 받은

영화음악과 그 작곡가는 누굴까?

"작품마다 위대한 곡도 작곡가도 많죠.

다만 특별히 제가 늘 작업할 때마다

기억하는 영화 장면과 음악이 있는데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에서

사랑에 빠진 여자와 남자 주인공이

이별과 함께 갑자기 닥친 슬픔으로

울면서 글을 쓰는 장면이 있거든요.

근데 그 장면의 음악을 들어보면

슬픈 음악이 흘러나오지 않아요.

주인공은 처절히 울고 있지만

절대로 슬픈 장면은 아니거든요.

대신 그 장면을 정확히 표현하는

사랑스러운 음악이 잔잔하게 흘러요.

그러면 관객들은 함께 웃게 되죠.

영화음악 작곡가는 그래야 해요.

그 장면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유연함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돼요."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계절이 바뀌는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 바쁘게 또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그럴 땐 한 번쯤

가을이 오는 길을 걸으며

사랑이 가득 담긴 가을색을

온몸으로 느껴보는 건 어떨까.

세상에서 나를 잠시 멈추게 했던

그 시절 그 영화음악을 들으면서.

 

naver daum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