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는 매미 울음소리가
떠나는 여름을 아쉬워하고
저녁엔 귀뚜라미 노랫소리가
가을이 다가왔음을 알린다.
퇴근길 석양이 뉘엿뉘엿
넘어갈 즈음 귓속 이어폰에서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영화 제목도 영화 내용도
토토의 30년 전 어린시절처럼
아득하고 또 아득하지만
엔니오 모리꼬네가 작곡한
'시네마 천국'의 주옥같은 ost는
잊고 있던 나만의 그 시절을 소환한다.
김민영 씨는 영화음악감독이다.
영화 속 인물들의 감정 선을 따라가며
영화음악 작업을 하고 있다.
"영화음악은 영화를 위한 음악이에요.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기보다는
그 영화에 맞게 그 이야기를
가장 잘 서포트해줘야 합니다.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상징적이면서도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게
영화음악 작곡가의 역할이죠.
제가 좋아하는 알렉산드라 데스프라는
영화음악 작곡가를 페인터에 비유했어요.
감독이 그려준 밑그림에 색채을 입혀
비로소 그림을 살리는 역할이라는 거죠.
그 다양한 색감과 색채는 무궁무진한
악기와 장르에 비유할 수 있어요."
영화음악을 전공하게 된 계기는 뭘까.
"영화와 영화음악을 좋아했어요.
재즈피아노 연주 전공으로 입학했지만
작곡에 대한 갈망이 늘 있었어요.
그러던 중 우리나라와 미국에서
영상음악 작곡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고
영상 내에서 음악의 큰 힘을 알게 됐죠.
작곡과 창작을 즐기는 저도 발견했어요.
그 시간들을 통해 확신이 들었고
영화음악 전공을 결심하게 됐어요."
"원래 한국에서 음악을 하고 있었는데
마음 한구석엔 뭔가 갈증이 있었어요.
무엇을 좋아하고 또 하고 싶은지에 대해
묻고 또 물으면서 방황의 시기를 보냈죠.
그 시기 나사렛대 곽윤찬 교수님을 만나
재즈를 공부했고 또 교수님 권유로
오디션을 통해 버클리 음대에 합격해
미국으로 건너하게 됐어요."
"외국생활은 처음인데다
가족을 떠나 홀로 생활하다 보니
언어나 문화가 달라 적응이 힘들었어요.
언어가 유창하지 못하다 보니
한동안 이방인으로 살 수밖에 없었죠.
제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된 시간이었어요.
음악이라는 소통 창구가 없었다면
몇 배는 더 힘들었을 것 같아요."
"학교에서도 시행착오가 많았죠.
하지만 그만큼 수확도 컸어요.
제가 무엇을 잘하고 또 좋아하는지
확실하게 알게 된 시간이었어요.
유학생활에서 얻은 가장 큰 배움은
창작자로서 마음가짐인 것 같아요.
학교에서 프로젝트를 하고
곡을 쓰는 과정을 거치면서
제 안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완벽주의와 직면할 수 있었고
그것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깨닫고
또 내려놓는 값진 시간이 된 거죠.
곡을 만들면서도 완벽해질 수 있고
당장 완벽하지 않아도 계속 만들고
또 하나씩 하나씩 해나가다 보면
조금씩 조금씩 더 발전한다는 걸
몸소 체험한 시간이었습니다."
지금은 영화음악감독으로서
첫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상업영화 음악작업에 참여하게 됐어요.
음악이 중심이 되는 가족 영화입니다.
학교에선 아티스트적인 부분을
가장 많이 생각하고 공부했는데
현장에서 직접 작업에 참여해보니
유연하게 많은 대중들과 호흡하고
소통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우고 있어요."
김 감독의 작업실 한쪽 벽엔
다양한 글들과 그림이 붙어 있다.
김 감독이 가장 큰 영감을 받은
영화음악과 그 작곡가는 누굴까?
"작품마다 위대한 곡도 작곡가도 많죠.
다만 특별히 제가 늘 작업할 때마다
기억하는 영화 장면과 음악이 있는데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에서
사랑에 빠진 여자와 남자 주인공이
이별과 함께 갑자기 닥친 슬픔으로
울면서 글을 쓰는 장면이 있거든요.
근데 그 장면의 음악을 들어보면
슬픈 음악이 흘러나오지 않아요.
주인공은 처절히 울고 있지만
절대로 슬픈 장면은 아니거든요.
대신 그 장면을 정확히 표현하는
사랑스러운 음악이 잔잔하게 흘러요.
그러면 관객들은 함께 웃게 되죠.
영화음악 작곡가는 그래야 해요.
그 장면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유연함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돼요."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계절이 바뀌는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 바쁘게 또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그럴 땐 한 번쯤
가을이 오는 길을 걸으며
사랑이 가득 담긴 가을색을
온몸으로 느껴보는 건 어떨까.
세상에서 나를 잠시 멈추게 했던
그 시절 그 영화음악을 들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