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쉬드 갤러리카페에 들어서자
진한 커피향이 후각을 자극한다.
전시장 안으로 더 들어가자
이번엔 음악이 청각을 노크한다.
더불어 마음도 한결 편안해진다.
스피커 볼륨을 표시하는 바늘이
쉴 새 없이 좌우로 움직인다.
아날로그 감성이 그대로 묻어난다.
스페인 론다의 숙소를 나와
해질녘 거리를 산책하면서
우연히 만난 연주가의 CD가
7년이 지난 후 이곳에서
관람객들을 만나고 있다.
윤정 작가는 자신을
프로젝트 아티스트로 소개한다.
"프로젝트 아티스트라고 하면
다들 생소하게 들리실 텐데요.
제가 만든 직업이에요.
사진과 글을 혼용하면서
프로젝트로 작업하는 아티스트죠.
맨 처음에 담당했던 작업이
휴먼 다큐멘터리 제작이었어요.
사람들에게 꿈과 사랑, 죽음 등의
질문을 던지는 작업이었어요.
어떤 영역에 제한을 두지 않아
더 많은 프로젝트 기회가 있었어요.
콘셉트와 생각이 맞는다면
협업이 가능해 자유로워요.
새롭게 이것저것 시도하면서
남이 가보지 않은 길들을
가보고 싶어 선택하게 됐어요."
"이번 전시가 10번째 개인전인데
작가가 되기 전인 2013년
스페인 여행을 담은 작품들입니다.
책 작업으로 다시 꺼낸 사진들인데
지금 봐도 너무 좋더라고요.
스페인은 별 기대가 없었는데
따뜻하고 포근한 감정을 느꼈어요.
지금은 어떤 것들을 바라볼 때
작가로서 특유의 시선이 생겼는데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잘 모르겠어요.
스페인 사진을 꺼내며 너무 반가웠죠.
오랜 친구를 우연히 만난 것 같은
그런 좋은 느낌을 가지게 되는 건
아마 당시엔 아무런 생각 없이
정말 제 안에 순수함과 본능으로
사진을 찍었기 때문인 듯해요."
"스페인 사진을 찍었을 때
그때 그 마음으로 앞으로도
계속 작업했으면 좋겠어요.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고
예전에 그랬듯 자유롭게 찍는 게
더 좋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전엔 느끼지 못한 신기한 감정인데
이제는 완성도를 개의치 말고
예전으로 돌아가자라고 생각한 거죠.
그동안 개인전 10번 그룹전 10번
모두 20번의 전시회를 경험했고
또 6년 동안 이곳저곳 다녔는데
스페인 사진은 작가가 되기 전이라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 듯해요."
"작가가 된 후 스스로
지금 사진이 더 좋다고
편협하게 생각하곤 했죠.
글을 쓰면서 문득문득 생각해요.
5살 6살 꼬마 친구들이 있다면
함께 대화하며 작업하고 싶다는.
어린아이들만의 순수함과 솔직함
시적인 표현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때 묻지 않고 틀에 갇히지 않은
자유로운 세계의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표현할 수 있는
그 생각들을 갈망하는 것 같아요."
"탄자니아 여인입니다.
알비노(선천성 색소결핍증)죠.
백색증이라고도 합니다.
2019년 1월 NGO인 월드쉐어의
단체사진 재능나눔으로 방문했다가
현지에서 만난 여성입니다.
알비노 환자의 신체 일부를
먹거나 소유하면 부자가 된다는
미신으로 폭행 심지어 살해당하는
일이 많다 보니 이 여인은
늘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살아요."
"탄자니아 잔지바르라는 곳인데
얼마 전 영화로 이슈가 된 그룹 퀸의
프레디 머큐리가 태어난 고향입니다.
인도양의 흑진주로 불리기도 하는데
수도 바르에스 살람에서 동쪽으로
40km 정도 떨어져 있어요.
노예 경매시장으로도 악명이 높았죠.
슬픈 역사와 달리 풍경이 아름다워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지역입니다.
큰 아이러니죠.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반짝이고 빛나는 삶이 있지만
아픔과 슬픔도 공존하는 것 같아요."
"저는 20대 대부분을
미국에서 보냈는데요.
한곳에 머무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그런지 깊이
바라보는 걸 좋아해요.
네팔과 아프리카를 좋아하는데
특히 에디오피아의 특유한
커피문화에 흠뻑 빠졌어요.
커피를 많이 좋아하기도 하지만
에디오피아 커피 세레머니의 매력은
커피를 좋아한다면 누구나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에디오피아에선 생두 상태에서
커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하나하나 직접 보여주면서
커피를 대접하는 문화가 있어요.
화려한 전통 의상을 입고
숯을 피워가면서 커피를 만드는데
그 시간만 30분 정도 걸려요.
원두 체리를 절구에 으깨어
껍질을 제거한 후 원두를 볶고
그 향을 맡고 함께 얘기하다 보면
전혀 지루할 틈이 없어요."
"세레머니 커피문화에선
세 잔의 커피를 마시게 되는데요.
첫 잔은 환영 두 번째는 행운
그리고 세 번째는 축복을 뜻해요.
커피 세레머니 문화가 좋아
파주 헤이리 작업실에서
똑같이 커피를 팔기도 했죠.
지금도 새록새록 생각이 나서
언젠가 다시 가보고 싶어요.
긴 시간을 기다리고
그 기다림 끝에 커피를 마시며
그 의미를 새기는 문화가
개인적으로 너무 좋았어요."
"직장에 다니다 작가로 전업했는데
경제적으로는 많이 팍팍해요.
하지만 마음은 참 편하고 좋아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하지만
내일보다 오늘을 더 행복하게 살자
그렇게 생각하고 다짐하곤 하죠.
제가 걱정이 별로 없는 편이에요.
오늘 괜찮으면 내일도 괜찮을거야
또 이번 달이 괜찮으면
다음 달도 그다음 달도 괜찮을거야
그럼 마음으로 생활하고 있는데
어느덧 작가로서 6년이 흘렀어요."
"변종모 작가님이 선물해준 글입니다.
개인적으로 참 좋아해서 전시장 한켠에
제 사진을 곁들어 전시하고 있습니다.
미국 시카고에서 취재기자로
3년 반 정도 일한 적이 있는데
사진기자가 없어 직접 사진을 찍었죠.
앞으로도 사진은 놓지 말라는
동료기자의 말에 용기를 얻어
사진을 더 깊이 만나면서
또 더 사랑하게 되었어요.
사랑하는 사진을 작가로서
평생 찍을 수 있게 된 만큼
더 욕심을 부리진 않으려고 해요."
윤 작가의 전시회는 24일까지 열린다.
책을 읽으면서 전시를 보는 방식이다.
모두가 힘든 시간이 이어지고 있지만
하루만이라도 멋진 사진여행을
경험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