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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재정안정화 의지가 없는 것인가

  • 2019.02.18(월) 15:55

[전문가기고]③김혜진 국민연금硏 박사
"연금 재정목표 '수용 가능한 범위' 내에서 마련해야
국민 의견 다양…수리적 계산보다 사회적 합의 필요"

제4차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이 발표된 이후 일각에서는 현 정부가 국민연금의 재정안정화에 대한 의지가 없다고 주장한다.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재정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개혁 방안을 수립해야 하는데 이번 정부 계획안에는 구체적인 재정목표 없이 4개의 개혁안만 담겼다는 것이다.

# 재정목표란 무엇인가
 
재정목표에 대한 지침을 권고하고 있는 국제노동기구(ILO)는 연금의 근본적인 재정목표는 재정안정화라고 말하고 있다.

국민연금 등 대부분의 공적연금은 가입자에게 급여산식에 따라 미리 확정된 급여를 지급할 것을 약속한다. 따라서 연금제도가 가입자에게 약속한 급여를 지급하기 위해서는 재정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재정안정화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재정균형이다. 가입자가 납부한 보험료를 재원으로 하는 연금제도에서 재정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보험료수입과 급여지출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
 
공적연금의 근본적인 재정목표가 재정안정화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재정지표의 달성 수준을 정함으로써 ‘재정안정화’보다 구체적인 재정목표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재정지표를 이용해 재정목표를 구체화하다 보니 각 연금제도마다 재정목표가 다양하다.

재정지표는 재정목표의 달성을 평가하는데 사용되는 구체적인 기준인데 재정지표가 다양하기 때문에 재정목표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재정지표가 다양한 이유는 재정 상태를 평가하는 방법이 연금재원을 마련하는 방식, 연금제도의 성숙도, 인구·사회·경제적 환경 등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외국에서 사용되는 재정지표에는 ▲제도부양비(가입자수 대비 연금수급자수) ▲부과방식기여율(당해 연도 지출을 충당하기 위해 당해 연도 가입자가 부담해야 하는 보험료율) ▲GDP 대비 수입비율 ▲기금의 적립배율 ▲기금소진연도 ▲적립기금 최대연도 등 많은 기준들이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면 공적연금제도의 역사가 오래된 독일의 경우 필요보험료율, 소득대체율, 적립배율, 제도부양비 및 지속가능성 계수, 연금가치를 재정지표로 사용해 재정상태를 평가하고 있으며 이 중 세 가지 지표(보험료율, 소득대체율, 기금 유지비율)의 달성목표를 정하고 있다.

최근 유럽연합에서도 재정안정화 측면에서 사회보장제도의 지속가능성을 판단하기 위해 GDP대비 연금지출, 노인부양비, 연금수급율 등 다양한 재정지표를 이용해 재정안정성을 정기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재정지표를 이용해 재정목표를 구체적으로 설정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과연 재정목표가 사회적으로 수용가능한 정도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실제로 국제노동기구는 재정목표(재정방식)를 설정할 때 연금급여수준(소득대체율 등), 현재 세대와 미래세대간 형평성, 기금적립 규모, 보험료 수준을 고려해 정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즉 구체화된 재정목표와 이를 달성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함에 있어 연금제도에 속한 가입자, 연금제도를 둘러싼 경제·사회적 환경을 고려해 그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구체적인 재정목표를 정하는 것은 어려운 작업이고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독일의 경우도 연금제도를 1891년에 도입했지만 2004년에서야 법률로 구체적인 재정목표를 정했고, 일본도 1961년 국민연금제도를 만들었으나 2004년에서야 법 개정을 통해 재정목표를 정했다.

# 국민연금의 재정목표는 무엇인가

국민연금법 제4조에는 '국민연금재정이 장기적으로 균형을 유지해야 하며 이를 위해 급여수준과 연금보험료가 조정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재정목표'라는 용어를 명시적으로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국민연금의 재정목표는 재정균형 즉 재정안정화이다.

그러나 우리의 국민연금은 다른 국가의 공적연금에 비해 역사가 길지 않아 구체적인 재정목표를 정하는 시간이 충분하지 못했다. 물론 전문가들의 제언대로 재정목표를 정했다면 지금보다 더 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얻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 사회가 그렇게 마련된 재정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지를 충분히 논의하고 검토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재정목표를 '향후 70년 후 적립배율 1배' 로 한다는 것은 향후 70년 후에 그 해 지출될 연금액 규모만큼의 기금을 유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민연금은 낮은 보험료율과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소득대체율로 인해 수입과 지출의 규모가 불균형 상태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태에서 향후 70년 후의 적립배율 1배를 유지(소득대체율 40% 가정)하기 위해서는 2020년부터 보험료율을 약 16%까지 인상시켜야 한다. 과연 이 정도가 우리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급격한 보험료 인상에 따른 국민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보다 현재의 어려운 경제·사회적 여건을 고려해 민생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고, 국민의 수용성을 감안한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사회적 수용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소득대체율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40%이지만 여전히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높으며 공적연금의 노후소득보장강화에 대한 목소리도 높다. 이런 상황에서 소득대체율 40%를 유지하는 것만을 가정해 재정목표를 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재정안정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맞는 방향일까.

# 수용가능한 범위 내에서 재정안정화 대책 마련

재정안정화 대책을 마련할 때 구체적인 재정목표가 제시되지 않았다고 해서 재정안정화에 대한 의지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이번 제4차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안에서도 구체적인 재정목표를 제시하지는 못했으나 재정상태를 평가하고 이를 토대로 재정안정화 방안은 제시했다.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 조정 범위별 GDP 대비 연금지출, 기금소진년도를 평가해 각 대안을 실행했을 경우 예상되는 재정상태를 평가했다. 실제로 정부가 제시한 정책조합방안 중 소득대체율을 45%로 하고 보험료율을 5년마다 1%포인트 인상하는 방안(노후소득보장강화방안 ⓵)은 현행유지보다 기금소진년도가 연장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정부가 제시한 방안만으로 국민연금 재정이 균형상태에 도달할 것이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균형상태로 가기 위한 시작점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번 정부 계획안이 과거 정부안과 다른 점은 국민의 의견을 보다 더 적극적으로 수용한 계획안이라는 점이다. 정부는 작년에 토론회, 온·오프라인 설문조사 등을 실시해 국민연금의 개선방향에 대한 국민의 의견을 수렴한 바 있다.

그런데 그 결과가 다소 상반되었는데 재정안정화가 필요하다는 의견, 현행유지를 원한다는 의견, 소득보장강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으로 구분되었다. 이렇게 국민들의 의견이 상반된 상황에서 정부는 근본적인 재정목표인 재정안정화를 제고하면서도 우리 사회가 수용해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범위 내에서의 제도개선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이번 정부가 국민의 수용도를 고려해 재정안정화 방안을 마련했다고 하더라도 재정안정화를 위한 노력은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5년마다 실시되는 재정계산결과를 토대로 국민연금의 재정상태를 주기적으로 예측하고 장기적으로는 재정이 균형상태에 도달할 수 있도록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또한 국민연금의 수입과 지출의 규모가 균형을 이루는 시점에서는 국민들이 급여 및 보험료 수준의 변화를 쉽게 예측할 수 있도록 ‘재정안정화’라는 근원적인 목표보다 더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작업은 수리적 계산에 의해 진행되기보다 노후소득보장과 지속가능한 제도유지라는 큰 틀에서 검토되고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할 것이다. (김혜진 국민연금연구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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