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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총투어]글로비스, 훌륭했던 전자투표.. 아쉬웠던 '엄근진'

  • 2019.03.14(목) 15:45

배당금 3300원인데 전자투표하니 4100원짜리 커피쿠폰 지급
주총장소 가득메운 주주들…그러나 시무식같은 엄숙한 분위기

자본시장이 발달한 나라에선 주주총회를 '자본주의의 축제'로 부르기도 합니다. 아직 우리나라 주총은 엄숙·경직이란 단어가 더 어울립니다. 그동안 국내 언론의 주총 관련보도 역시 극히 예외적인 이슈를 제외하면 형식적 결과 전달에 그쳐왔습니다. 주총 현장을 보다 생동감 있게 전달하기 위해 기자가 직접 소액주주의 시선으로 주총에 참석, 경험을 공유하는 [주총투어]를 연재합니다. 우리나라 주총 문화가 조금씩 나아지는데 작은 발걸음이 됐으면 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14일 정기주총을 개최한 현대글로비스입니다.[편집자]

# 난생처음 전자투표란 걸 경험했다

주총에 직접 참석하지 않더라도 PC나 스마트폰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전자투표란 제도가 있다. 세상이 정말 편해졌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렇게 편리한 제도를 우리나라 주주들은 충분히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

전자투표가 도입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회사 이사회가 도입 여부를 정하도록 하다 보니 지금도 도입률 50%를 겨우 넘는다. 이마저도 제도만 도입해놓고 실제론 사용하지 않는 상장회사가 많고, 대기업 상당수는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IT강국이란 자화자찬이 무색하다. (☞관련기사 [법안톺아보기]'IT강국' 국회서 잠자는 전자투표법)

현대글로비스가 속한 현대차그룹도 예외는 아니다. 작년까지 현대차그룹 11개 상장회사 가운데 전자투표를 도입한 곳은 단 곳도 없었다. 그러나 현대글로비스가 그 흐름을 깼고 덕분에 난생처음 전자투표란 걸 경험했다.

현대글로비스는 주총전 주주들에게 보낸 주총소집통지문과 주총소집공고문을 통해 주총 전날인 13일 오후5시까지 전자투표로 의사를 표시할 수 있다는 점을 안내했다. 또 주총 현장에서 수정안건이 있을 경우 전자투표로 행사한 의결권은 무효 처리된다는 점도 빼놓지 않고 알렸다.

전자투표 마감시한을 30분 앞둔 13일 오후4시30분 한국예탁결제원 전자투표시스템(K-evote)에 접속했다. 처음이다 보니 거쳐야할 관문이 많았다. 프로그램을 깔고 공인인증서를 등록한 뒤 개인정보 이용 동의, 휴대전화 인증까지 몇 단계를 거쳐 드디어 전자투표 창에 접속했다.

현대글로비스의 올해 정기주총 안건은 ▲재무제표 승인 ▲정관 일부 개정 ▲이사 재선임 ▲이사 보수한도 승인 4가지였지만 실제로 투표해야하는 항목은 15개나 됐다. 정관변경만 12개 항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전에 안건을 숙지하고 나름의 분석을 거친 덕분에 투표하는데 장고를 거듭할 필요는 없었다. 재무제표 승인에서 이사선임 안건까진 일사천리로 모두 찬성했다.

임기 3년의 이사 재선임대상인 얀예빈왕 이사는 보수를 받지 않는 기타비상무이사다. 그는 현대글로비스 주요주주(지분율 12.04%)인 노르웨이 선박회사 빌헬름센 몫의 이사진이다. 정확히는 빌헬름센의 자회사 덴 노르스케 아메리카린제 에이에스(Den Norske Amerikalinje AS)가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가지고 있다. 빌헬름센은 2004년 11월 정의선 부회장으로부터 글로비스 지분 20.15%를 매입한 후 전략적 제휴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곳이다.

마지막 15번째 안건인 이사 보수한도 안건은 반대했다. 현대글로비스의 별도기준 영업이익이 전년도 5399억원에서 지난해 5252억원으로 줄었고 순이익은 6349억원에서 3266억원으로 48% 급감했음에도 전년도 수준의 이사보수한도(50억원)를 유지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경영진은 경영실적에 연동해 적절한 보수를 받아야한다.

현대글로비스가 주총소집공고문에 지난해 이사보수총액을 얼마 지급했는지 설명하지 않은 점도 반대표를 던진 이유다. 이사보수한도는 말 그대로 한도이며 실제로는 이를 다 쓰지 않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실제 주총현장에서 주주의 질문을 받고 회사 측이 41억원을 집행했다고 답했다.)

전자투표를 마치고 나니 커피쿠폰을 준다는 팝업창 하나가 새로 떴다. 전자투표에 참여한 모든 사람에게 스타벅스 아메리카노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모바일쿠폰을 지급한다는 내용이었다.

현대글로비스 보통주 주당 배당금이 3300원인데 전자투표 한번하고 4100원짜리 커피쿠폰이 생겼다. 기자는 현대글로비스 주식 1주를 보유하고 있다. 커피쿠폰은 전자투표 활성화를 위해 한국예탁결제원이 실시하고 있는 한시적 이벤트이지만, 뜻밖의 커피쿠폰 덕에 배당금이 두 배로 늘어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좋은 전자투표를 왜 도입하지 않는 걸까.

현대글로비스 전자투표창

# '엄근진'.. 이것은 축제인가 시무식인가

주총 전에 전자투표를 한 주주는 실제 주총장에선 의결권을 행사할 순 없다. 그러나 주총현장의 분위기를 체감하고자 주총장을 찾았다.

현대글로비스 주총장은 본사가 아닌 다소 의외의 장소에서 열렸다. 서울 강남구 삼성2동문화센터 7층 강당. (과거 공시를 검색해보니 현대글로비스 정기주총장소는 매년 바뀐다) 교통은 편리했으나 승강기 하나로 7층까지 올라가야하는 불편한 구조였다.

우편으로 미리 받은 주주총회참석장과 신분증을 직원에게 건네고 주주확인표를 받았다. 주주확인표에 적힌 번호는 206번. 앞서 205명의 주주가 먼저 도착해 있다는 얘기다. 주총 시작 20분전에 도착했음에도 이렇게 부지런하고 열정적인 주주들이 있다는 게 놀라웠지만 그 비밀은 금세 풀렸다.

주총장 문을 열고 들어가니 200명 남짓을 수용할 수 있는 주총장 좌석은 이미 모든 사람들이 착석해 빈자리가 없었다. 적지않은 참석자들이 진행요원들과 아는 사이로 보였다. 물론 직원들도 주주라면 주총에 참석하는데 결격 사유가 없다. 지금까지 주주 신분이 아닌 취재 기자의 자격으로 참관한 여러 주총장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던 풍경이다. 다만 옆 자리의 숨소리도 들릴법한 엄숙하고 근엄하고 진지한 분위기는 축제라는 단어와 너무 거리가 멀어보였다. 오히려 시무식에 가까웠다.

예정시간 5분 넘긴 9시 5분 주총이 시작됐다. 이날 주총에 참석한 의결권은 현대글로비스 총 발행주식의 78%인 2929만주라는 설명, 주총에 앞서 서면·전자투표가 진행되면서 모든 안건을 의결하는데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 있었다.

김정훈 현대글로비스 대표이사는 인사말을 통해 "글로벌 자동차산업 수요가 부진할 것으로 예측되면서 비(非)자동차부문 물류사업을 확대하고 해외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글로벌 사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곧이어 '원활한 주총 진행을 위해 안건 진행에만 발언권을 얻고 질문해달라. 부득이할 경우 질서유지권을 발동할 수 있다'는 사회자의 안내가 이어졌지만, 곧바로 '엄근진' 분위기를 뚫고나온 주주 발언이 쇄도했다.
 
흔히 주총장에서 본질에 벗어난 발언을 이어가며 고의적으로 시간을 지연시키는 사람들을 '주총꾼'이라 지칭하기도 하지만 이날 현대글로비스 주총에 참석한 소액주주들의 발언은 단순히 주총꾼으로 폄훼하기엔 꽤 전문적이었고 건설적이었으며, 무엇보다 진정성이 느껴지는 제안도 많았다.
 
자신을 소액주주라고 밝힌 이들은 ▲현대글로비스의 지난해 별도기준 순이익이 전년대비 급감한 배경인 환율변동(외화환산손실)에 대비할 회사의 계획이 있는지 ▲정관에 새로 추가한 사업목적(포장시험·연구·서비스업)이 중소기업 사업영역을 침해하는 건 아닌지 ▲이익 감소에도 이사보수한도를 전년도와 동일하게 제시한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물었다.

이런 얘기를 묻고 답하라고 있는게 주주총회가 아닌가.

전자투표에 참여하면 커피쿠폰을 지급한다는 팝업창

소액주주들이 집중적으로 발언했던 내용은 또 있다. 회사 측에서 처음부터 '원활한 행사진행을 위해 주주발언권을 제한하고, 의장이 질서유지권을 발동할 수 있다‘는 점을 여러 차례 언급한 것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주총 중반까지 다른 주주들의 발언을 차분하게 지켜보던 한 주주는 "의사진행방식이 너무 독단적이다. 1년에 한 번하는 주총장에서 질서유지권부터 꺼내는 건 주주들에게 발언하지 말라는 엄포"라며 "주총장에 왔을 땐 주주의 질책을 받아도 답을 해야 할 각오를 하고 나와야한다"고 쓴소리를 건넸다.

현대글로비스는 지난해 주주권익 보호 담당 사외이사(길재욱 한양대 교수)를 선임한데 이어 기업지배구조헌장을 만들고, 올해는 그룹계열사 가운데 전자투표도 처음 도입했다.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고자하는 노력만큼은 현대차그룹 내에서는 물론이고 대형 상장회사를 통틀어 주목받을 만 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원활한 행사진행과 질서유지권'만 일관되게 강조한 엄숙하고 무거운 이날 주총의 분위기는 정책과 현장의 괴리를 보여주는 아쉬운 장면이었다.

더군다나 별다른 설명도 없이 5분 늦게 시작한 주총이었다. 차라리 '원활한 의사진행과 질서유지권'을 언급하기 앞서 '1년에 한번 주주들을 초대한 자리인 만큼 누구나 자유롭게 질문해주면 성심껏 답변하겠다. 회사가 참고할만한 좋은 의견을 많이 부탁한다'는 말을 회사 측에서 먼저 건넸더라면 어땠을까.
 
회사 측은 진행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주주들의 발언이 끊이질 않자 주총 말미에 "진행상 불편한 점이 있었다면 내년 주총에선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주총은 시작 전에 이미 안건통과여부가 결정됐음에도 결국 1시간이상 지나서야 끝났다.

주총이 마무리된 이후에도 승강기 한대뿐인 협소한 건물을 빠져나가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현대글로비스는 주총이 끝나고 1시간 30분 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모든 안건이 원안대로 통과됐다는 간결한 '주총결과공시'를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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