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공급규칙에 청약관련 업무는 사업주체가 직접 수행하거나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라 건설업 등록을 한 자가 대행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규정은 2007년 8월부터 적용됐다고 하는데요. 건설업 등록이 안 된 분양대행사는 분양대행을 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이런 조항이 있는지 분양대행사는 물론이고 분양대행사를 쓰고 있는 건설사조차 알지 못했다는 겁니다. 당연히 대부분의 분양대행사들이 건설업 등록을 하지 않았을 테고요. 말하자면 지금까지 건설사들은 무등록 업체를 활용하고 있었다는 건데요.
10년 넘게 서랍 속에 처박아 둔 이 조항을 정부가 꺼내든 이유는 뭘까요. 이번에도 범인은 '로또아파트'인 듯 합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3월 디에이치자이 개포, 과천 위버필드, 논현 아이파크, 마포 프레스티지자이, 당산 센트럴아이파크 등 서울과 과천 5개 단지의 특별공급 당첨자에 대해 조사를 벌였는데요.
이 과정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일부 단지 특별공급에서 기존에 당첨자로 통보했던 당첨자와 다른 명단이 제출됐다는 것인데요. 국토부의 조사 소식에 분양대행사가 임의로 당첨자를 변경했다는 겁니다.
국토부 관계자는 "서류 검토를 대행사에서 하는데 임의로 당첨자를 변경하는 등 규정에 맞지 않게 처리하는 사례가 과거에도 있을 수 있다는 의심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국토부가 미등록 업체의 분양대행 금지를 꺼내든 결정적 배경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부실한 상담에 따라 관련 민원 증가, 관련 서류 미보관 또는 임의폐기 등의 사례들도 발각됐고요. 국토부는 자격이 없는 분양대행사들이 시장에 혼란을 주고 있다는 판단입니다. 최근 일부 단지 청약이 과열되고 혼탁해지는 것의 원인을 여기에서 찾고 있는 듯도 보입니다. 마침 적당한 규정도 찾아냈고요.
하지만 정부조차도 현재 분양대행사가 몇 곳이나 되고 이 가운데 몇이나 건설업 등록이 돼 있는지 등 현황 파악이 전혀 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국토부 관계자는 "분양대행사 관련 현황을 조사중"이라면서 "미숙한 감이 있기는 한데 정부의 의지 표명 차원으로 봐달라"고 말합니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로만 해석하기엔 예상보다 파장이 크고, 문제의 근본 원인을 파악해서 해법을 제시하는 정책 목표와도 부합하지 않아 보입니다.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성만 떨어뜨립니다.
건설사 한 관계자는 "10년 넘게 관리감독을 안하다가 이제와서 유예기간도 없이 갑자기 문제를 삼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최근 일부 분양시장에서 광풍이 불었던 것도 분양가를 통제하면서 로또아파트를 양산했던 데서 근본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허술한 청약시스템도 한몫을 했고요.
건설업에 등록한 분양대행사를 활용한다고 상황이 크게 나아질지는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건설사와 분양대행사의 책임성을 강화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 디에이치자이 개포 견본주택에서 상담사들이 상담을 하고 있다.(사진=이명근 사진기자) |
많은 건설사들이 분양대행사를 이용하고 있지만 한편으론 서울 지역 분양에선 대행사를 전혀 활용하지 않는 곳도 있습니다. 오히려 마케팅도 자제하는 분위기이고요. 가만히 둬도 잘 되니까요.
지방은 다릅니다. 상대적으로 사업성이 떨어져 분양대행사를 활용해 다양한 마케팅을 펼치기도 하는데요. 이번 조치로 타격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분양대행사는 분양 전 짧게는 한달 혹은 서너달 전부터 해당 분양단지에 대한 시장조사, 타깃층 분석, 사전마케팅부터 견본주택 현장 상담, 전화상담, 아르바이트생 등 인력관리 등 청약 절차의 상당 부분을 도맡아 처리합니다.
그나마 여력이 있는 분양대행사들은 건설업 등록을 준비중인데요. 한달은 걸린다고 합니다. 소수의 분양대행사로 소화가 될지도 모르겠고요. 대형 건설사들은 자체 분양팀이 있고 분양소장들의 역량으로 소화한다고 해도 중견건설사 밑으로는 이마저도 쉽지 않은 형편입니다.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청약시장에서 문제가 발생할때마다 그때그때 임기응변 식으로 처방을 내놓기보다는 근본적인 청약시스템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