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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이 들썩들썩…예비타당성조사가 뭐기에

  • 2019.02.04(월) 09:00

4대강 사업 앞두고 '지역균형발전' 등 예타면제 대상 확대
문재인 정부도 같은 근거로 예타 면제
예타 최후의 보루인데, 면제했다 자칫 지역경제에 '독'

최근 정부가 예비타당성조사(이하 예타) 면제 사업을 발표한 이후 나라가 떠들썩합니다. 아마도 이번 설 연휴 내내 고향에 모인 가족들 사이에서도 화젯거리가 될 것 같은데요.

어떤 곳에선 KTX나 고속도로가 뚫린다며 기뻐할 테고요. 또 다른 지역에선 기대했던 사업이 빠지면서 실망감을 감추지 못할 텐데요. 실제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대상에서 빠진 사업지들에선 벌써부터 반발 움직임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에 발표한 예타 면제 대상은 23개 사업에 총 사업비 무려 24조1000억원에 달합니다. 이해관계에 따른 갑론을박과 정치권의 날선 공방까지 더해집니다.

그만큼 민감한 이슈인데요. 말하자면 설 선물(?)을 받은 쪽과 못 받은 쪽, 왜 선물을 주느냐고 하는 쪽, 애초 선물이 아니라는 쪽 등이 뒤엉켜 있는 상황입니다.

예타제도는 1999년 김대중 정부에서 처음 도입했는데요. 국가재정법에 따라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이고 국가의 재정지원 규모가 300억원 이상인 신규 사업은 기획재정부의 예타를 거쳐야 합니다.

대규모 예산을 편성하기에 앞서 경제·정책적 효과를 따져보겠다는 겁니다. 큰 돈(세금)이 나가는데 당연한 일입니다. 그 대상은 건설공사, 정보화사업, 국가연구개발사업과 사회복지, 보건, 교육, 노동, 문화 및 관광, 환경보호, 산업·중소기업분야 등 광범위한데요.

다만 사업성을 따지기에 앞서 정말정말 필요한 사업 혹은 시급한 사업도 있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정부는 예타를 면제할 수 있는 10가지 기준을 정했는데요. 이 가운데 정부가 최근에 발표한 예타면제 대상의 근거가 되는 조항은 국가재정법 2항 10호에 나옵니다.

지역 균형발전, 긴급한 경제·사회적 상황 대응 등을 위해 국가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한 사업으로 국무회의를 거쳐 예타를 면제할 수 있습니다.

이 면제요건은 이명박 정부시절인 2009년 3월 만들어졌는데요. 기존 예타요건 5가지를 10가지로 확대한 겁니다. 국가정책적으로 필요한 사업과 함께 재해예방 등의 요건이 포함됐는데요. 당시 이 두가지 요건이 추가된 배경에 4대강 사업이 있었다는 겁니다. 이후 4대강 살리기 턴키공사 공고(6월)가 있었고요.

어찌됐든 이명박 정부뿐 아니라 이번 정부에서도 이 면제요건을 톡톡히 활용한 셈입니다. 4대강 사업처럼 경기부양을 명분으로 대규모 SOC사업을 추진하는데 비판적이었던 정부라 더욱 아이러니할 수밖에 없습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 조차 토건사업으로 경기를 부양하려했던 이전 정부와 다를바 없다며 비판하고 있는데요.

물론 정부는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포장을 하는데 공을 들였습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관련 브리핑에서 "경기부양이 목적이 아니고 예타제도의 한계를 감안해 국가균형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1차적인 목적"이라고 설명했는데요. "물론 경제활력을 찾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도 덧붙였고요.

사실 국가균형발전이면 어떻고, 경기부양이면 또 어떻습니까. 엄밀하게 따져보면 이 두 가지를 따로 떼어놓기도 어렵습니다. 오히려 정부가 최근 몇년간 주요 지역산업 침체 등으로 경남(거제, 통영), 울산, 전북(군산), 전남(목포 등) 등의 고용·산업위기지역의 어려움을 감안한 점은 의미있어 보입니다. 해당 지역에선 지역경제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도 크고요.

다만 이번 면제대상 사업은 적지 않은 규모입니다. 기재부 국정감사 제출자료와 경실련 등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들어 예타면제 사업은 이번에 발표한 사업을 포함해 53조6900억원에 달합니다. 이는 이명박 정부 5년 재임기간에 있었던 60조3000억원에 근접한 수치인데요.

물론 문재인 정부들어서 18년까지는 아동수당 지급(17년 13조3611억원), 지역주도형 청년일자리사업 지원(18년 3조3607억원), 청년구직활동지원금(18년 1조3252억원), 다함께돌봄(18년 3455억원) 등 굵직한 복지 사업이 상당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앞선 정부와 차이는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번 24조원의 성격은 이전 것(17~18년)과는 확실히 다릅니다. 특히 24조원 가운데 SOC사업이 20조5000억원으로 85%나 차지하고 있으니까요. 대형 건설사 한 임원 조차 "실제로 발표된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돈은 더 들어갈 것"이라며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고 말하더군요.

과거 예타 면제 사업 가운데 4대강 사업을 비롯해 영암 포뮬러원(F1) 경주장 등 실패한 사례는 수두룩합니다. 의정부경전철, 용인경전철 등은 모두 예타를 통과했지만 수요예측에 실패하면서 지역경제에 오히려 큰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사업들은 적자가 누적되면서 파산을 하거나 적절한 활용방안을 못찾아 결국 세금으로 메워주게 됩니다.

지역경제를 살리려는 사업이 결국은 지역경제를 갉아먹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얘기인데요. 그런 면에서 예타는 최후의 보루입니다. 당장 예타에서 제외됐다고 무작정 반길 일도 혹은 반발할 일도 아니라는 겁니다. 꼼꼼한 사업성 검토 없이 진행된 사업은 독이 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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