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정몽규 HDC그룹이 면세점에 이어 항공업에 띄운 또 한번의 승부수가 통했다. 12일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이 아시아나항공 인수 우선협상자로 선정되면서다.
정 회장은 이날 오후 3시 용산HDC현대산업개발 사옥에서 기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웃음을 머금은 채 상기된 듯 했지만 책임감 또한 그에 못지 않은 듯 보였다. 기자간담회 내내 책임감을 여러차례 언급했다.
투자금액만 2조원을 넘는 데다 2위 국적항공사를 살려야 한다는 부담감도 못지 않았을 터. 정 회장은 "항공업계 최고 수준의 재무건전성을 확보하게 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아시아나항공이 새 주인을 맞아 탄탄한 재무구조와 경쟁력을 확보하고, HDC그룹과 HDC현대산업개발은 주택사업 위축 국면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얻게 될지 관심이 쏠린다.
◇ 아시아나항공, 탄탄한 재무구조로 거듭
HDC그룹은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아시아나항공의 재무건전성을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6월 말 기준 HDC그룹의 총 자산은 7조4000억원이고 부채비율과 차입금의존도는 각각 119.7%, 25.4%에 불과하다. HDC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HDC현대산업개발은 3분기말 기준 현금성 자산이 약 1조4000억원에 달하고 부채비율은 109.6%로 낮은 수준이다.
HDC그룹은 아시아나항공의 신주를 2조원 이상 인수해 회사의 경쟁력과 안정성을 높이겠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신주를 2조원 이상 증자하면 아시아나 항공의 부채비율이 300% 미만으로 내려간다"며 "국내에서 상당히 경쟁력이 올라가고 , 그동안 악순환이 이어졌는데 선순환으로 전환시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의 6월 말 기준 총 부채는 9조5989억원, 부채비율은 659.5%에 달한다.
정 회장은 또 "인수 후에도 신형 항공기와 서비스 분야에 지속적인 투자가 이뤄져 초우량 항공사로서 경쟁력과 기업가치가 모두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만 자체 엔진 정비사업 등 투자 계획을 묻자 "몸집이 가벼워서 경쟁력이 저해될 수 있지만 이로 인해 더 빨리 변화하는 경영환경에 적응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답했다.
◇ 못다 이룬 꿈 "모빌리티그룹으로 도약"
HDC현대산업개발은 그동안 주택 브랜드 '아이파크'로 이름을 알리며 주택사업에 주력해 왔다. 최근들어선 고부가가치의 개발사업을 통해 '디벨로퍼'의 입지도 공고히 다져왔다.
지난 2015년엔 호텔신라와 손잡고 면세점 사업에 진출하는가하면 올해 오크밸리(현 HDC리조트)를 인수하는 등 면세점 호텔 레저 등 꾸준히 사업다각화에 힘쓰고 있다.
이번 아시아나항공 인수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정몽규 회장은 "경제가 앞으로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하지만 이런 때가 기업을 인수하기 가장 좋은 때라고 생각한다"면서 "현대산업개발도 앞으로 3~4년간 상당히 좋은 이익구조를 가져갈 수 있어 계속 연구해왔다"고 밝혔다. 이어 "능력이 되면 계속 할 것"이라고 언급해 사업다각화를 위한 추가 M&A 가능성도 열어놨다.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통한 그룹 시너지 확대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정 회장은 "항공사들이 기내 면세사업을 하고 있고, 면세사업 물류 구매에서도 시너지가 생길 수 있다"면서 "인수 이후 심도 있게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이 이처럼 사업다각화에 공을 들이는 데는 주력인 주택사업이 위축 국면에 있는 점도 무시하기 어렵다.
HDC현대산업개발은 다른 건설사들과 달리 해외사업이 사실상 전무하고 국내 주택사업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주택 경기가 꺾이며 주택사업과 회사가 입을 타격도 적지 않다. 그동안 고부가가치의 개발사업과 종합부동산인프라그룹이라는 비전을 강조해왔던 점 역시 같은 이유다.
실제 HDC현대산업개발의 올해 3분기 실적은 이런 주택경기 위축의 직격탄을 맞았다. 영업이익은 1000억원을 밑돌았고 매출과 수주 모두 전년보다 못했다. 이 때문에 항공과의 시너지를 모색하고 건설업과 함께 또다른 성장 축으로 삼을 수 있다는 기대가 실려 있다.
'모빌리티 사업'에 대한 '못다한 꿈' 역시 이번 인수의 계기로 작용하지 않았겠느냐는 얘기도 나온다. 정 회장은 "HDC그룹은 항공산업뿐 아니라 모빌리티 그룹으로 한걸음 도약하는 계기가 될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회장의 선친은 '포니정'으로 불렸던 고 정세영 회장이다. 정몽규 회장은 현대자동차에서 경영수업을 받았지만 이후 정몽구 회장으로의 승계가 결정되면서 선친과 함께 현대산업개발로 자리를 옮겼다.
정 회장은 "HDC에서 항만사업도 하고, 육상·해상·항공사업을 함께 하는 방안을 연구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