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데다 국내 주택 시장이 빠르게 식어가면서 건설사들의 행보도 달라지고 있다. 지난 수년간 시장 활황 속에서 '묻지 마' 수주 경쟁을 벌였다면, 이제는 사업장의 시장성을 꼼꼼하게 따지며 몸을 사리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실제 원자잿값 상승으로 건설사의 시공 수익이 제로에 가까워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부 사업장의 경우 공사비 산정 등의 문제로 시공사 선정에 어려움을 겪는 등 현장 분위기도 확연하게 달려졌다. 그간 이어져온 건설사들의 수주 실적 쌓기 경쟁도 점차 사그라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적자 위험"…수익성 따져 발 빼는 건설사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하 건산연)이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건설투자 디플레이터' 성장률은 10.4%를 기록했다. 지난 1년간 평균 성장률은 9.8%가량이다. 건설투자 디플레이터는 외부요인을 제거한 실질 건설 물가 상승률을 의미하는 것으로, 상승률이 5%를 넘어서면 건설사의 시공 수익이 제로에 가까워진다는 설명이다.
박철한 건산연 연구위원은 "인건비를 제외하고 단순히 투입 경비만 고려하면 1년간 평균 5.5% 정도의 수익이 감소한 상태"라며 "단가 보상 없이 1년 동안 공사를 진행한 업체의 경우 적자 공사 위험에 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건설사들은 이미 수주한 사업장의 경우 공사비를 재협상하고, 협상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계약을 해지하는 등 사업 재정비에 나서는 모습도 포착된다. 이른바 '알짜' 사업장 수주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으면 발을 빼는 등 현장의 분위기도 급변하고 있다.
삼성물산과 GS건설은 지난달 30일 성남 분당 매화마을2단지 리모델링 조합으로부터 우선협상대상자 지위 해지 내용을 담은 공문을 받았다. 양측은 공사비를 조정하는 협상을 했지만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결국 결별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앞서 공공재개발 사업의 최대어로 꼽혔던 경기도 성남시 '수진1구역' 사업장의 경우 치열한 경쟁이 예상됐지만, 공사비를 낮게 책정하면서 건설사들이 입찰에 아무도 참여하지 않아 결국 유찰된 바 있다. 이후 이 사업장은 공사비를 높여 두 번째 입찰 절차에 돌입했다.
"건설사, 수익성 악화…보수적 사업 운영 필요"
이런 분위기 속에서 건설사들의 '수주 실적 쌓기' 경쟁도 사그라들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 활황 속에서 이어왔던 '묻지 마 수주'가 앞으로는 되레 부메랑이 돼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관련기사: [인사이드 스토리]건설사, 주택 '수주 파티' 속 불편함 왜?(7월6일)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올해 5월까지 국내 건설 누적 수주액은 92조 261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9% 증가했다. 반면 5월 누적 착공 실적의 경우 전년보다 34.3% 감소해 엇갈린 흐름을 보였다. 건설사들이 수주를 따냈다고 해서 무작정 착공에 나서지는 않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수주를 했다고 무조건 공사를 시작하는 분위기는 아니다"며 "당장은 먹거리 확보 차원에서 수주에 나서고는 있지만, 공사비를 협상한 뒤 잘 안되면 계약을 해지하는 곳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건설사들도 최근 들어서는 보수적으로 시장성 등을 평가해서 신중하게 수주에 나서는 분위기"라며 "기존에 수주했던 곳들의 경우에도 사업 진척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비용 절감 차원에서 발을 빼는 사례들이 확산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기에 더해 한국은행의 '빅스텝' 등 금리 인상이 가속화하면서 건설사들의 자금조달 비용도 늘어나 부담이 더욱 커지는 분위기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우량 건설사 자금조달 기준이 되는 3년 만기 회사채(AA-) 금리는 지난해 말 2.4%대에서 이달 4.1%대까지 올랐다.
당분간 건설 경기가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늘면서 건설사들이 더욱 보수적으로 경영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철한 연구위원은 "건설물가 상승률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정상적으로는 수익 확보가 어렵기 때문에 건설업체들은 최대한 보수적인 사업 운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신용평가사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올해 하반기에도 자재 가격 강세가 지속되고 인건비 부담도 늘어나면서 이익 창출 규모는 당분간 저하된 모습을 나타낼 전망"이라며 "기존 진행사업장에서 자재가 상승을 반영한 도급액 증액 여부와 신규 수주 물량의 채산성 확보 수준을 우선적으로 확인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