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만원 최고 응찰, 3000만원, 3000만원, 낙찰입니다. 땅"
'경매'하면 미술 작품 등을 놓고 경쟁하듯 가격을 높게 불러 구매하는 장면이 떠오를듯 합니다. 창작물이나 소비재 등뿐만 아니라 아파트 등의 부동산 또한 경매 거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데요.
아파트 경매는 가격이나 규제 등에서 상대적으로 문턱이 낮아 꾸준히 수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분위기가 좀 다른데요. 주택 매수 심리가 꺾이자 경매 시장까지 꽁꽁 얼어붙으며 수요자들의 '옥석 가리기'가 심화하는 모습입니다. 아파트 경매, 지금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매매시장 선행지표 '꽁꽁'
경매는 구매 희망자(입찰자)가 원하는 가격을 적어내면 그 중 최고가를 적은 입찰자에게 판매(낙찰)하는 방식인데요.
아파트 경매의 경우 주로 법원에서 압류한 채무자의 부동산이 물건으로 나옵니다. 최고가를 제시한 사람에게 해당 부동산을 판매하고 그 대금으로 채권자의 금전 채권을 충당하는 식인데요.
입찰 기일이 되면 법원이 매각 절차를 진행하는데, 이때 최고액을 적은 매수 신고인이 낙찰을 받은 뒤 잔금을 납부하고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치면 최종 취득이 완료됩니다.
경매로 취득한 물건은 전매제한이 없고 경우에 따라선 유찰 등으로 인해 낙찰가가 시세 대비 저렴해 꾸준히 수요가 있는데요.
특히 부동산 상승기에 인기가 많습니다.
경매 시장은 감정이 보통 입찰 8~12개월 전에 진행돼 부동산 시장의 '선행 지표'로 인식되는데요. 낙찰 시점에 부동산 시장 상승기면 향후 시세 차익 기대감으로 경매에 경쟁이 붙으면서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이 100%를 넘기곤 합니다.
반대로 부동산 하락기에선 감정가가 비싸다는 인식과 매수 심리 하락 등으로 낙찰가율, 낙착률(입찰 물건 중 낙찰자가 결정된 물건 수의 비율)이 모두 떨어집니다. 낙찰률 하락은 유찰에 따른 가격 하락을 기대하고 응찰하지 않는 이들이 많아진다는 의미이기도 한데요.
바로 지금이 그 시기입니다. 치솟는 금리에 집값 고점 인식, 대출 규제 등으로 주택 매수 심리가 꺾인 탓인데요.
법원경매 전문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경매 낙찰률은 26.6%로 전월(56.1%)보다 29.5%포인트나 떨어졌는데요. 이는 경매 4건 중 한 건만 주인을 찾았다는 뜻으로, 전 세계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12월(22.5%) 이후 13년7개월만에 가장 낮은 수치입니다.
7월 전국 아파트 평균 응찰자도 5.8명으로 올해 들어 가장 낮은 수치고요. 낙찰이 된다고 해도 감정가 대비 낙찰가가 떨어지는 추세입니다. 7월 전국 아파트 낙찰가율도 90.6%로 전월(93.8%)대비 3.2%포인트 하락, 지난 5월부터 3개월 연속 하락세입니다.
경매도 '옥석 가리기'…투자 괜찮을까
그런데 이 찬바람 속에서도 훈풍이 부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강남권인데요. 강남구 삼성동 '롯데캐슬 프리미어', 송파구 잠실동 '아시아선수촌아파트' 등은 이달 응찰자 수가 각각 10명이 넘었습니다. 지난달 서울 아파트 평균 응찰자 수가 3명(지지옥션 통계)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경쟁이 높은 수준인데요.
롯데캐슬 프리미어 전용면적 213㎡는 이달 시세와 비슷한 가격인 40억2899만9000원에 낙찰돼 낙찰가율 139%을 기록했습니다. 한 차례 유찰됐던 아시아선수촌아파트 전용 99㎡는 27억2000만원(낙찰가율 89.77%)으로 시세보다 6억원가까이 저렴합니다.
이들 물건은 토지거래허가구역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경쟁에 불을 지핀 것으로 분석됩니다.
삼성동과 잠실동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있어 일정 면적 이상의 부동산을 살 때 지자체에 허가를 받아야 하고 주택은 실거주용으로만 살 수 있는데요. 그러나 법원 경매 물건은 이런 규제를 적용받지 않아 주택을 낙찰받아 전월세로 놓을 수 있습니다.
지방에선 강원도 경매 시장이 뜨겁습니다.
지난달 강원도 아파트의 낙찰가율은 107.9%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낙찰가율 100%를 넘겼습니다. 전국 16개 광역시·도 중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규제와 가격 상승에 지친 수요자·투자자들이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하고 가격이 낮은 지역 중 서울과의 접근성이 높은 강원도로 눈을 돌린 영향인데요.
강원도의 아파트 매매가격도 상승 추세입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1월3일~8월15일)은 0.54%, 서울은 0.63% 각각 하락한 반면 강원도는 1.34% 올랐습니다.
시장의 '옥석 가리기'가 심화하는 모습인데요. 일각에선 부동산 하락기에 경매가가 떨어질 때 잡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합니다.
과거 금융위기 이후 2013년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 76㎡(감정가 8억5000만원)가 7년만에 처음으로 6억원대에 낙찰됐는데, 불과 2년만에 시세가 10억원대로 올랐고 5년 뒤엔 20억원대에 육박했거든요.
다만 저렴한 경매 물건일수록 유찰 이유 등을 정확히 파악하고 신중히 투자할 필요가 있다는 '신중론'도 있습니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경매는 저렴한 주택 구매가 가능해 내 집 마련 목적으로도 시도를 많이 한다"면서도 "하지만 저점 매수에만 집중하다가 권리분석에 소홀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유찰된 물건이라면 왜 유찰이 됐는지 등을 따져보고 입지 분석, 지역 부동산 시장 흐름 등을 잘 살펴보고 신중히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