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가격은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등 조세를 위한 평가목적도 있지만, 복지와 행정 등 60개 이상의 다양한 목적에 활용되는 중요한 기준이다.
공시가격이 오르면 보유세 등 세금과 함께 건강보험료 등 각종 부담금도 함께 늘어난다. 또한 공시가격이 인상되면 기초생활보장대상이나 기초연금, 장애인연금, 근로장려금지급 등 각종 복지적용 대상은 줄어든다.
뒤집어서 공시가격이 내리면 이런 결과는 반대로 나온다. 60여개의 국가제도가 공시가격에 연동되어 동시다발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껏 공시가격의 인상과 인하에 정부가 인위적인 영향을 주는 이유는 오로지 세금이었다.
보유세 부담을 올리기 위해 공시가격의 반영비율을 올렸고, 공시가격 '현실화'라는 명목으로 시세와 가깝도록 인상했다. 반대로 공시가격 반영비율과 시세반영율을 내린 것도 보유세 부담이 급증한다는 게 이유였다.
건강보험료 부담이 낮아서 공시가격을 올리거나 기초생활보장대상자를 확대하기 위해 공시가격 결정에 일부러 변화를 준 적은 없다. 공시가격의 다양한 정책 활용목적에 비해 정책 변화의 근거는 지극히 세금에 국한됐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서는 부동산 가격공시제도의 객관성과 정확성 목표와는 별개로, 보유세를 결정하는 과세표준은 분리해서 별도로 운영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수많은 인력과 자본을 투입해 보유재산의 가치를 조사하고 결정했지만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했고, 또 정부 스스로도 단지 세금을 이유로 수시로 뒤집는 것이 지금의 공시가격이기 때문이다.
해외에선 취득금액이나 임대가치로 보유세 매기기도
실제 밖으로 눈을 돌리면 우리와는 다른 기준으로 보유세 과세표준을 결정하는 나라들이 많다. 보유세제를 언급할 때 가장 많이 비교되는 미국을 보면 보유세 과세표준 평가에 있어 상당히 개방돼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 뉴욕주는 주변 유사부동산의 최근 판매가격을 중심으로 재산세 과세기준을 결정하면서도 우리처럼 해마다 재평가하지는 않고 있다. 선택적으로 재평가를 받는다.
특히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과세표준 자체를 공시가격처럼 평가한 금액이 아니라 주택을 취득할 때의 금액, 즉 취득가액으로 결정한다. 취득금액의 일정비율에 세율을 곱해서 보유세를 계산하는 것이다. 더구나 오래 보유하면 보유세는 더 낮아진다.
주택의 임대가치를 보유재산의 가치로 보는 나라들도 많다. 우리식으로 보면, 주택의 임대보증금 정도가 보유세 과세표준이 되는 셈이다.
프랑스는 국가가 결정한 연간 임대가치의 50%만 과세표준으로 해서 재산세를 부과하고, 싱가포르도 임대료와 크기, 위치,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임대료평가액을 재산세 과세표준으로 삼고 있다. 아울러 임대하지 않고 집주인이 직접 거주하는 경우 보유세를 더 깎아준다.
가치평가 자체를 장기간 하지 않는 국가도 많다. 프랑스는 임대가치를 3년마다 평가한다는 원칙은 있지만 1980년에 평가한 이후 평가한 적이 없다.
영국은 시장가치와 거주하는 성인의 수에 따라 과세표준을 결정하는데,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1991년 이후, 웨일즈는 2003년 이후 가격변동이 없다. 일관된 보유세 기준을 장기간 적용하는 것이다. 우리 세법과 가장 유사한 일본도 3년에 한 번 정도만 재산가치를 평가한다.
'현실화'라는 목표를 세워 어떻게든 매매가치에 근접한 보유세 과세표준을 만들고자 하는 우리와는 차이가 크다.
홍기용 한국납세자연합회 명예회장은(인천대 경영학부 교수) "다른 나라도 보유세 과세표준을 결정할 때, 가격을 반영하기는 하지만, 상당부분 조정된 가격을 적용한다. 우리나라는 공시가격을 수시로 변동하는 시세에 연동하면서 보유세 부담이 너무 과도하게 늘어나는 구조다.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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