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 추진 단지들이 공사비 갈등에 홍역을 앓고 있다. 자재비·인건비 등이 전반적으로 오르면서 시공사는 '더 줘!'를 외치는 반면 조합은 '과하다'고 맞서면서다. 이같은 분쟁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가 표준공사계약서를 마련했다.
그동안 시공사가 조합에게 공사비 총액만 뭉뚱그려 제시한 것과 달리 앞으로는 세부 산출내역까지 제출토록 했다. 설계 변경 때도 '단순 협의'를 거쳐 공사비를 조정했다면, 추가되는 자재가 기존 품목인지 신규 품목인지 등에 따라 단가 산정 방법을 제시하게 했다.
국토교통부는 정비조합과 시공사가 공사계약을 체결할 때 활용하는 '정비사업 표준계약서'를 지제차와 관련 협회 등에 배포한다고 23일 밝혔다. 앞서 1·10대책의 후속 조치로 조합과 시공사 간 공사비 분쟁을 최소화하고 신속한 사업추진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했다.
정비사업 표준공사계약서는 공사비 산출 근거를 명확화했다. 현재 대부분의 정비사업에서는 공사비 총액만으로 계약을 체결하고 공사비 세부 구성내역은 없다. 향후 설계변경 등으로 시공사가 증액을 요구할 때 조합은 해당 금액의 적정성을 판단하기 어려워 분쟁의 원인이 됐다.
가령 총액 계약을 한 뒤 조합이 A등급의 자재를 요구할 경우, 시공사는 당초 총액공사비는 B등급 자재를 기준으로 산정했다는 이유로 자체적으로 산정한 증액 비용을 요구하는 식이었다. 증액 적정성 판단이 곤란했다.
앞으로는 시공사가 제안하는 공사비 총액을 바탕으로 시공사를 선정하되, 선정 후 계약 체결 전까지 시공사가 세부 산출내역서를 제출토록 하고 이를 첨부해 계약을 체결토록해 공사비 근거를 명확히 한다.
다만 조합이 기본설계 도면을 제공해야 시공사의 산출내역서 제출이 가능하므로, 조합이 도면을 제공하기 어려운 경우엔 시공사가 입찰 제안 시 품질사양서를 제출토록 하고 이를 바탕으로 계약한다. 품질사양서엔 시공사가 임찰 참여 당시 조합에 제안하는 마감재·설비 등의 명확한 사양을 명시한다.
설계 변경 시 '단순 협의'를 거쳐 공사비를 조정했던 것도 바꾼다. 설계변경 사유나 신규로 추가되는 자재인지 등에 따라 공사비 조정기준(단가 산정 방법 등)을 세부적으로 포함해 원활한 공사비 조정을 유도한다.
추가되는 품목이 △기존 품목의 단순 증감인 경우 △기존 품목이나 규격 등이 상이한 경우 △신규 품목이 추가되는 경우 등에 따라서다. 조합의 요구 등 시공사 귀책이 없는 경우는 신규 품목이 추가되는 경우에 준해 공사비를 조정한다.
물가 변동에 따른 공사비 조정 기준도 합리화한다. 기존엔 공사비에 소비자물가지수 변동률을 적용해 왔는데, 소비자물가지수는 음식이나 의류 등 국민이 많이 소비하는 품목의 물가를 나타내는 지수로 건설공사 물가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점도 있었다.
앞으로는 국가계약법에 따른 지수조정률 방식 등을 활용해 물가 변동을 반영토록 한다. 총공사비를 노무비·경비·재료비 등 비목군으로 나누고 비목군별로 별도의 물가 지수를 적용해 공사비에 물가 상승을 반영하는 방식이다.
당사자 간 합의 시 예외적으로 건설공사비지수 변동률을 활용할 수도 있다. 이 경우 공사비에서 간접공사비·관리비·이윤을 제외한 직접 공사비에 대해서만 적용해야 한다. 또 착공 이후에도 특정 자재 가격이 급등하면 물가를 일부 반영할 수 있도록 했다.
그 외에도 증액 소요가 큰 굴착공사(지반을 파는 공사) 시 지질 상태가 당초 지질조사서와 달라 시공사가 증액을 요청하는 경우, 증빙서류를 감리에게 검증받은 후 증액할 수 있도록 규정해 과도한 증액 요구를 방지토록 했다.
박용선 국토부 주택정비과장은 "'정비사업 표준공사계약서'가 마련돼 그동안 내용이 모호하거나 일방에 다소 불리해 분쟁이 많았던 계약사항들로 인한 분쟁이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실제 분쟁이 발생하고 있는 사업장에 대해서는 지자체와 함께 밀착관리 해나가면서, 신속한 분쟁 해결을 위해 분쟁조정위원회에 재판상 화해 효력을 부여하는 방안도 추진(법개정 필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