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에에에엥." 사이렌이 울리고, 거대한 크레인이 전용면적 21제곱미터(㎡) 모듈을 천천히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모듈이 마침내 4층 높이에 이르자 작업자들이 균형을 맞춰 정해진 위치에 안착시켰다. 양중(짐을 싣고 내리는 일체의 운반 활동) 10여 분 만에 아파트 한 가구의 조립이 뚝딱 끝났다.
모듈러주택 건설은 마치 레고 블록 놀이의 확장판 같다. 철근을 올리고 시멘트를 붓는 기존의 건설 방식과 달리 다 만들어진 가구를 조립하기만 하면 집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모듈러주택의 강점인 '공기(공사 기간) 단축'이 가능한 이유다.
하지만 갈 길은 멀다. 규제가 많고 규모의 경제성이 확보되지 않아 아직까지 비용 부담이 크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민간과 함께 기술을 개발하고 시범사업에 나서며 '모듈러주택 시대'를 앞장서 맞이하고 있다.
가구 하나당 30분만에 조립 완료?
지난 4일 방문한 세종 행정복합중심도시 6-3 생활권 내 모듈러 단지 건설 현장은 일반 아파트 건설 현장과는 확연히 달랐다. 공사 현장에서 흔하게 보이는 레미콘 트럭을 찾아 볼 수 없었다. 흙과 벽돌 더미 등으로 인한 분진도 없었다. 작업 인력도 많지 않았다.
이건진 계룡건설 현장소장은 "트레일러를 이용해 모듈을 운송하고, 도착한 모듈은 크레인과 밸런스빔을 사용해 모듈러 변형을 막고 안정성을 확보한 가운데 설치한다"며 "하루에 10~12개 설치 공정으로 작업중"이라고 말했다.
모듈러 공법은 탈현장화(OSC) 건축 공법이다. 현장 보다 공장에서 대부분의 작업이 이뤄진다. 외벽체와 창호, 배관 등을 포함한 개별 주거공간을 박스 형태로 공장에서 먼저 제작하고 이를 현장으로 운송 후 설치하는 방식이다. 전체 공정의 80% 이상이 공장에서 이뤄진다.
이날 단지 앞에 선 트레일러에도 사전 제작된 전용 21㎡의 주거 공간이 실려 있었다. 모듈은 폭 3.3m, 길이 11.3m로 무게는 무려 23톤에 달했다.
상부엔 구조체의 변형을 막고 균형을 유지하는 하늘색 '밸런스빔'이 구조물을 감싸고 있었다. 모듈에 밸런스빔을 체결하는 데는 약 10분 걸린다.
이윽고 양중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렸다. 작업자들이 모듈러 구조물의 결합 부위에 대해 최종 점검을 마치자 크레인이 모듈을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4층 높이에 이르자 작업자들이 모듈과 연결된 끈을 이리저리 잡아당기며 제자리를 찾게 했다.
모듈을 안착시키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약 10분. 양중 후 설치해 밸런스빔을 하차하는데 약 10분 더 소요된다. 총 30분이면 모듈 하나를 장착하는 모든 과정이 끝나는 셈이다.
이 단지는 지하 4층~지상 7층, 2개 블록, 4개 동, 416가구(전용 21~44㎡)로 조성된다. LH가 통합공공임대로 공급하며 계룡건설산업 컨소시엄이 시공한다. 모듈러주택 제조사는 포스코 A&C다.
지하는 주차장, 1~2층은 상가 및 주민 공동시설, 3~7층이 모듈러 주택이다. 층별로 모듈러 유니트가 30~33개로, 전체 575개의 유니트로 이뤄져 있다. 모듈러주택으로 국내 최대 규모의 가구 수를 자랑한다.
전용 21㎡ 모듈은 붙박이 가구, 유리, 화장실 등까지 공장에서 제작된다. 이날 현장에 전시된 전용 37㎡(17평형) 유니트는 모듈러 두 개를 결합해 조성됐으나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내부도 일반 아파트와 동일해 모듈러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공장에서 제작된 집일수록 시공 품질이 높다는 설명이다. 노태극 LH 스마트하우징사업팀장은 "일반 아파트는 모델하우스와 실제가 차이가 많이 나지만, 모듈러주택은 공장 생산 제품이라 입주민에게 균등한 품질을 제공할 수 있다"고 했다.
기후 변화로 인한 공기 지연, 현장 안전사고 및 건설 폐기물 발생 절감도 장점이다. 기존 철근 콘크리트 공법 대비 약 30% 공기 단축이 가능해 공기 지연에 따른 추가 비용 발생도 줄일 수 있다.
노 팀장은 "건설근로자 노령화, 외국인 노동자 증가로 건설 현장 품질이 계속 저하하고, 기후 변화로 인한 국지성 폭우 등으로 안전 위험성도 커지고 있다"며 "노동집약적 건설산업을 공장 제조로 전환해 OSC를 통해 건설산업 패러다임 변화 필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다 좋은데…'모듈러 시대' 언제쯤?
이제 집도 공장에서 만드는 시대가 성큼 다가온 셈이다. 국내 모듈러 시장은 지난 2003년 서울 양천구 신기초등학교를 시작으로 주로 학교, 군막사 등을 건립하는 데 활용됐다.
그러다 최근엔 공동주택까지도 적용되며 2003년 8억원에 불과했던 시장이 지난해 8055억원(수주액 기준)까지 커졌다. 점점 더 많은 물량, 높은 층수로 건립을 추진 중이다.
오주헌 LH 공공주택본부장은 "건설 산업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건설 생산 체계를 현장 중심에서 공장 생산으로 전환하는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지금까지는 국내 모듈러주택의 기술 수준과 경제성을 감안해 7층 이하의 중저층 선도사업을 해왔지만 올해는 20층 고층 사업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LH 경기 의왕 초평에서 20층짜리 고층 모듈러주택(381가구)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고층화는 기술력을 판단할 수 있는 지표이기도 하다. 외국에선 50층 이상의 초고층 모듈러주택도 건립을 추진 중이지만 아직 국내에선 지난해 6월 용인 영덕에서 준공한 13층짜리 주택이 가장 높다.
각종 규제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내화 규제다. 건축법에 따라 13층 이상 건물은 3시간 이상의 내화(화재 발생 시 버틸 수 있는 시간) 기준을 적용받고 있다. 철골 구조 기반의 모듈러 건물은 보와 기둥에 내화재를 덧칠하거나 방화석고보드를 덧붙여야만 한다.
노 팀장은 "내화 기준을 충족하려면 석고보드를 세 장 투입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경제성이 나오지 않는다"며 "모듈러주택은 철골 라멘구조라 건축 가산비가 높고 감리 등에서 간접비도 많이 들기 때문에 아직까지 비용이 높다"고 설명했다.
해외에선 건축기준 완화와 건축 인허가 간소화, 인센티브 제공 등을 통해 모듈러 등 OSC 활성화가 이뤄지고 있다. 그 결과 미국·영국·싱가포르 등에선 30~50층 안팎의 고층 모듈러 건물이 속속 건립되고 있다. 해외와의 격차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층수를 높이고 가구 수를 늘려야 '규모의 경제성'을 이룰 수 있다는 설명이다. 모듈러주택은 철근콘크리트(RC) 구조에 비해 공사 기간이 짧지만 발주 물량이 많지 않아 생산 단가가 높은 상황이다.
이에 LH는 로드맵을 세워 연간 발주 물량을 지속적으로 확보해 주고, 민간과 함께 기술 개발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LH는 장기적으로 공기를 50% 줄이고 철근콘크리트 수준으로 공사비를 절감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노 팀장은 "2030년 이후엔 연 5000가구의 주택에 OSC를 적용할 계획"이라며 "LH가 매년 공급 물량의 10%는 모듈러 공법과 PC 공법(공장에서 생산한 벽·판넬 등을 현장에서 사용)으로 주택을 시장에 내놔, 모듈러 및 PC 제조사들이 안정적으로 설비 투자와 자동화에 힘쓸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기술 개발에도 나선다. 모듈러 공법의 문제점인 접합부 방수, 층간 소음 등에 대해 민간과 함께 기술을 개발하고 상품화한다는 방침이다. LH는 그 일환으로 입주 1~2년 된 모듈러주택을 대상으로 입주자 만족도 조사(POE)를 진행해 이를 바탕으로 향후 보완 추진할 예정이다.
이한준 LH 사장은 "모듈러는 장점이 많지만 대량생산 시스템 구축이 안 돼 단가가 높아서 선뜻 활용하기 어렵다"며 "미래 건설산업을 선도하는 책임감을 갖고 모듈러, PC, BIM(건설정보모델링) 등 스마트건설기술 실증사업을 확대하고 기술 개발과 민간협력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현재 건설 현장에서 노동자 구하기가 굉장히 어렵기 때문에 모듈러주택이 반드시 필요하게 될 것"이라며 "LH가 공공주택을 중심으로 일정한 물량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모듈러주택의 규모의 경제를 키우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