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이 창사 이래 처음으로 '조 단위' 적자를 냈다. 연간 기준으로도, 분기 기준으로도 그렇다. 연결 종속법인인 현대엔지니어링이 해외 현장에서 발생한 일회성 비용을 일거에 반영한 결과다. 단일 건설사 기준으로도 분기 최대 규모다.
시장에서는 '어닝 쇼크(예상외의 급격한 실적 악화)'로도 보고 있지만, 경영진 교체 후 '빅 배스(Big Bath, 잠재부실 손실인식)가 이뤄졌다고 받아들이는 모습이 당장은 우세했다. 22일 유가증권시장에서 현대건설 주가는 전날 종가 대비 9.0% 급등한 2만8450원에 거래를 마쳤다.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 역시 잠재적 부실을 선제적으로 정리하고 빠르게 수익성을 개선하겠다는 올해 목표를 내놨다.
'분기 1.7조, 연간 1.2조' 사상 최악 적자
이날 오후 현대건설은 지난해 연간 연결재무제표 기준 실적을 잠정 집계한 결과, 매출과 영업손실이 각각 32조6944억원, 1조2209억원을 기록했다고 22일 밝혔다. 당기순손실은 7364억원이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4분기에만 1조7334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직전 분기까지 누적 영업이익이 5125억원이었으나 4분기에 발생한 대규모 영업손실로 창사 이래 연간 최대 적자를 기록하게 됐다.
현대건설의 이 같은 영업손실은 자회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의 해외 주요 프로젝트에서 발생한 일시적 비용 탓이다. 문제 현장은 현대엔지니어링이 2019년에 4조원 규모로 수주한 인도네시아 발릭파판 정유공장이었다.
현대건설도 별도 기준으로는 1722억원의 연간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현대엔지니어링과 공동으로 진행한 사우디아라비아 자푸라 가스 플랜트 등에서도 일회성 비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다만 기타 연결법인 등에서 1914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현대엔지니어링과 공동으로 시공한 현장에서도 발생한 일회성 비용을 반영했다"면서 "프로세스를 재점검하고 공정 관리를 강화해 수익 정상화에 박차를 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높은 원가율도 수익성을 훼손했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원가율이 100.6%에 달했다. 전년(94.3%) 대비 6.3%포인트(p) 증가한 수준이다.
현대건설의 연간 단위 영업손실은 지난 2001년 이후 23년 만이다. 현대건설은 당시에 3800억원의 적자를 냈다. 현대건설은 그해에 유동성 위기로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실시했다. 직전해에는 2조9805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내기도 했다.
매출 목표 초과…외형 성장 '유효'
현대건설은 대규모 적자가 났으나 지난해 매출은 목표치를 넘겼다. 현대건설 지난해 매출 목표로 29조7000억원을 제시했으나 32조6944억원의 매출로 이를 110.1% 초과 달성했다.
이라크 바스라 정유공장과 샤힌 프로젝트 등 국내외 대형 현장의 공정이 순조로운 영향이다. 이와 더불어 올림픽파크포레온 등 주택 부분의 실적도 매출에 기여했다.
수주도 목표치 이상이다. 현대건설의 지난해 연간 수주액은 30조5281억원이다. 이는 연간 수주 목표 29조원의 105.3% 수준이다. 국내에서는 대전 도안2-2지구 공동주택 신축공사와 부산 괴정5구역 재개발이 주효했다. 해외에서도 불가리아 코즐로두이 대형원전 설계 등을 따냈다. 수주잔고는 89조9316억원이다.
다만 재무구조는 나빠졌다. 현대건설의 지난해 말 부채비율은 178.8%로 전년 말 대비 52.0%포인트 상승했다. 반면 유동비율은 35.0%포인트 낮아진 144.7%를 기록했다. 자기자본 비율도 44.1%에서 35.9%로 8.2%포인트 하락했다.
부실 털고 "올해 1조 흑자"
현대건설은 잠재적 부실을 털어낸 만큼 1년 만에 대대적인 실적 개선을 목표로 내세웠다.
현대건설은 올해 매출 목표로 30조3873억원, 영업이익으로는 1조1828억원을 제시했다. 지난해 기록한 적자를 1년 만에 상쇄하겠다는 의지다. 주요 원전프로젝트와 대규모 복합개발사업 등 수익성 중심의 사업 구조를 구축하겠다는 게 현대건설의 목표다.
특히 현대건설은 올해 에너지 밸류체인(가치사슬) 확대와 혁신 기술 및 상품개발, 저경쟁·고부가가치 해외사업 추진에 집중할 예정이다. 주택 부문에서도 브랜드 경쟁력과 견고한 재무 건전성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수익 확보을 꾀한다. 근본적 체질 개선으로 건설업 불황에 따른 위기 극복에 매진하겠다는 거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글로벌 경쟁력을 보유한 대형원전을 포함해 소형모듈원전(SMR), 해상풍력·태양광·수소사업 등 청정에너지 사업을 확대해 기후 변화와 폭발적인 에너지 소비 확대에 대응하고 신개념 주거상품 개발과 생산기술 혁신에 더욱 힘쓸 예정"이라면서 "수익성 개선을 최우선 과제로 지속 가능한 미래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