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부실시공이 감리 탓?…지자체가 정하면 달라질까

  • 2025.02.20(목) 06:36

검단 사고로 '공사 감리자' 책임론 대두
'비주택 감리 지자체 지정방식' 법개정 추진
건설업계 "체계적인 건설사업관리가 중요"

건설공사 감리는 1962년 건축법 제정으로 시작된 이래 대형 사고를 계기로 발전돼 왔다. 1986년 독립기념관 화재 이후 '시공감리제'가 도입됐고 1992년 신행주대교 붕괴 이후 '책임감리제'가 신설됐다. 제도는 이어 1993년 우암아파트 붕괴 이후 '주택감리제'로, 1994년 성수대교 및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이후 '건설사업관리제'로 진화했다.

그리고 2022년 광주 화정 및 2023년 인천 검단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붕괴 사고가 벌어지면서 감리 제도에 또다시 변화가 예고됐다. 지난 2016년 일부 도입된 '허가권자 지정 감리' 제도를 확대 적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내용의 건축법 개정안이 최근 국회 문턱 앞에 놓이자 건설업계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서울의 한 복합문화시설 공사 현장 /사진=서울시 건설알림이

건축주 눈치보는 감리…"국가가 인증"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권영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건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민간의 대규모 건축물에 대한 감리 강화를 위해 허가권자 지정 감리 대상을 확대하는 게 골자다. 국토교통부가 2023년 말 발표한 건설 카르텔 혁파 방안의 후속 조치다.

당시 정부는 인천 검단 사고로 설계·시공·감리 전반에 걸쳐 부실이 노출됐다고 진단했다. 건축주와 시공사가 부실 공사를 발견해도 감리자에게 묵인 및 협조를 요구하고, 추가 용역을 수주해야 하는 감리업체는 이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감리 선정 제도 개선방안 /자료=국토부

이에 '허가권자 지정감리'와 '국가인증 감리자' 제도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현재 공동주택에 적용 중인 허가권자(지자체) 지정감리를 다중 이용 건축물(5000㎡ 이상 문화·집회·판매시설 또는 16층 이상 건축물)로 확대하는 내용이다. 감리자가 시공사에 공사 중지를 요청하면 건축주와 인허가청에 동시 보고토록 해 공사 중지권의 실효성도 확보하도록 했다.

또 전문 분야 경력, 무사고 이력 등을 보유한 감리원에 대해 국가가 인증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분야별 전문가를 보유하고 감리 업무만 전담하는 감리 전문법인도 도입하기로 했다. 이러한 내용은 2025년 주요 업무 추진 계획에 담겼다. 국토부는 올해 하반기 중 국가인증 감리자 400명을 선발할 계획이다.

이번에 개정안을 발의한 의원들은 "건축주가 직접 감리자를 지정하는 감리는 건축주에게 예속돼 부실 공사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며 "최근 인천 검단 지하 주차장 붕괴 사고와 같이 부실 시공·감리로 인한 대형 사고가 반복된 바 있어 허가권자 지정 감리 대상을 확대하고자 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건설카르텔 혁파방안 주요 개선사항 /자료=국토부

건설업계 "감리만 정해주면 무슨 의미"

이러한 취지에도 불구하고 건설업계에선 "오히려 부실시공과 안전사고가 증가할 위험이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형식적인 의무화가 오히려 감리 품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과 함께다.

국토안전관리원이 집계한 건축공사 안전사고 발생 현황(2022~2024년)을 보면 지자체가 감리자를 지정하는 건축물의 안전사고 발생 비율은 발주자가 직접 선정하는 경우에 비해 24.6%포인트 높았다. 허가권자 지정감리만이 능사는 아닌 것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광주 화정과 인천 검단 아파트 역시 공공기관이나 지자체가 감리를 선정한 현장이었다.

지정감리가 발주자에게 비용 부담을 가중하고 더 나아가 건설엔지니어링 업계의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거란 우려도 제기된다.

현행 허가권자 지정감리 제도가 전문적이고 능력이 뛰어난 감리자를 선정하기보다는 최소 자격 기준에 부합하는 다수의 감리자 중 사실상 '뽑기' 방식으로 선정해 사업을 할당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절차적 정당성을 우선시하는 공공 발주 방식을 민간에까지 적용하면 감리 우수업체의 경쟁력이 무시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와 함께 허가권자 지정감리가 체계적인 건설사업관리(PM) 강화라는 시장 흐름에 역행한다는 지적도 있다. 단순 감리를 넘어 '기획·설계·발주·시공·운영' 등 공사 전 단계에 걸쳐 통합 관리하는 PM이 감리건설안전 확보에 더 효과적이지만 지정 감리가 의무화하면 PM 차원의 개입이 쉽지 않아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법적으로 의무화된 감리 업무에 PM 서비스를 추가하는 형태로 계약되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감리만 허가권자가 선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면 발주자는 감리만 선택하게 될 것"이라며 "필요한 사업관리가 이뤄지지 못하거나 별도의 사업관리자를 고용할 수밖에 없어 발주자에게 추가적인 비용 부담을 강제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만큼 현행 제도 강화보다 감리의 패러다임 변화가 시급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대한건축사협회 관계자는 "건설 현장은 아직도 종이 도면을 보고 감리하고, 공종별 체크리스트를 말로 정리하고 나중에 형식적인 서류 작업을 하는 관행이 있다"며 "모든 감리를 디지털화해 업무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naver daum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