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가 3~4월 서울 주택 거래 신고분에 대한 이상거래 기획조사를 벌인 결과 특수관계인과의 위법 의심 거래 사례를 234건 적발했다고 최근 밝혔습니다. 서울시에 따르면 이 기간 2만3747건의 주택 매매가 있었는데 위법 의심 사례가 전체 거래의 1% 비율 정도로 있는 셈이죠.
국토부가 특수관계인과의 주택 매매 중 대표적인 위법 의심 사례로 꼽은 건 '편법 증여' 입니다. 국토부는 부모가 자식에게 40억원 보유한 아파트를 판 뒤, 다시 전세 보증금으로 25억원을 내고 세입자가 된 걸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습니다. 이를 다룬 기사에도 폭발적인 반응이 몰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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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 의심?
그런데 부모가 살던 집을 자식에게 팔고, 전세로 그 집에 들어가서 사는 게 법, 특히나 세법을 어기는 행위일까요? 국토부는 왜 이 같은 거래를 위법 의심 사례라고 콕 집은 걸까요.
김명준 국토부 부동산소비자보호기획단 단장은 "부모가 자식에게 주택을 팔고 다시 세입자로 들어오는 건 대표적인 편법 증여 의심 사례"라면서 "전세 계약 만기 시점에 돈을 돌려주지 않거나 전세보증금을 시세보다 과도하게 책정했거나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주택 가격과 무관하게 조사 대상 지역 내에 특수관계인 간의 이 같은 거래는 일단 국세청에 통보해 따지도록 한다"고도 덧붙였고요.
부모와 자식 간의 부동산 거래는 이처럼 국세청에서 깐깐하게 자금 흐름을 들여다보게 돼 있답니다. 이처럼 탈세 혐의를 받을 수 있음에도 왜 고가 아파트를 보유한 부모가 자식에게 증여 대신 양도(매매)를 택하는 것일까요.
우선 세 부담 차이가 극명하기 때문입니다.
증여세 세율은 과세표준에 따라 차등 적용됩니다. 과세표준 1억원 이하는 10%, 5억원 이하 20%, 10억원 이하 30%, 30억원 이하 40%, 30억원 초과는 50%입니다. 증여자가 직계존속인 경우에는 5000만원까지 공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만약 자식에게 40억원의 주택을 증여한다면 5000만원의 공제 한도를 적용한 39억5000만원이 과세표준입니다. 50%의 세율을 적용하고 누진공제 4억6000만원을 빼면 자식이 내야 할 증여세는 14억6955만원입니다. 수증한 자식이 아니라 부모가 증여세를 대납할 경우엔 추가 증여로 간주해 낼 돈이 28억5350만원까지 늘어납니다.
반면 자식에게 매매하는 형태라면 부담이 확 줍니다. 만약 1주택자인 부모가 조정대상지역 내 주택을 10년 전 20억원에 취득하고 쭉 거주하다 자식에게 40억원에 팔았다면 부모가 낼 양도세는 9406만원에 불과합니다. '장기보유특별공제'가 적용되기 때문이죠.
아울러 취득세까지 더해지면 증여와 양도의 세 부담 차이는 더 벌어집니다. 증여 시 취득세의 본 세율은 3.5%이며 지방교육세와 농어촌특별세 등이 더해져 최종적으로 4%가량의 세율이 적용됩니다. 반면 매매에 따른 취득세는 가격 별로 1~3%의 세율을 차등 적용하고 지방교육세·농어촌특별세 등을 더해도 최대 3.5% 수준입니다.
만약 자녀가 집을 한 채 가진 상태로 조정대상지역 내 주택을 증여로 취득했고 종전 주택을 3년 내 처분하지 않았다면 취득세 본 세율은 12%에 달합니다. 이는 양도를 통해 3주택자 이상이 됐을 때 적용하는 취득세 세율과 동일합니다.
절세일 수도?
부모가 자녀의 증여세를 대납하는 경우까지 고려하면 자식에게 주택을 물려주기 위해 매매 형태를 띠는 게 훨씬 더 경제적인 선택인 거죠. 절세 전략에 따라 증여세를 회피하려는 것이죠. 자식이 40억원의 매매대금을 마련하기 어려우니 부모를 임차인으로 하고 전세 보증금 형태의 지원을 받는 거래도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부모 자식 간이라도 매매가격과 전세 보증금을 시세에 맞춰 거래하고, 또 나중에 전세금을 제대로 상환하는 등 절차적 합법성을 갖췄다면요? 이것만으로는 '탈세를 위한 편법 거래'라 잘라 말하긴 어렵습니다. 국토부 장관·차관 등의 고위 관료라면 '국민의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고 요구받고 있지만요.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줄 집을 이런 식으로라도 미리 파는 건 서울의 집값이 더 오를 것이라는 예상도 전제로 깔려있습니다. 지금 증여하지 않는다면 추후 자녀가 내야할 상속세도 늘어날 것이고 양도건 증여건 늦으면 늦을수록 집값 상승에 따른 세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유독 서울에서 편법 증여가 많이 적발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다시 말해 '지금도 똘똘하고 앞으로 더 똘똘할 한 채'를 물려주려는 과정에서 세금을 아끼려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상 거래로 위장한 편법 증여는 부동산 시장 왜곡까지 부를 수 있습니다.
우병탁 신한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전문위원은 "조세당국은 자식이 부모를 임차인으로 해 전세 보증금을 받고 부모의 주택을 구매하는 형태를 정상적인 거래로 보지 않는다"면서 "이를 폭넓게 허용한다면 극단적으로는 부모가 가진 100억원짜리 압구정 아파트를 아들은 99억원의 전세 보증금을 받고 살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소득과 관련해 이미 세금을 다 냈는데 왜 자식에게 물려줄 때 또 세금을 물리냐"와 같은 여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증여세가 과도해 개인이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향이 열려있다면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관련기사: [똘똘한 한 채 대해부]④자산 대물림의 '아성'(8월1일)
증여성 거래 '뒷문' 닫으려면
증여세 취지는 부의 대물림 완화입니다. 무상으로 물려받은 자산에 대한 세금이 없다면 '집 금수저'들은 상속 또는 증여를 지렛대 삼아 대를 이어 부를 불릴 수 있는 사회구조가 되겠죠. 증여세 완화를 골자로 한 개편안 논의가 나오면 '부자 감세'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내야 할 세금을 내지 않은 것은 위법이 분명하나 세금이 합리적인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자녀에 대한 증여세 공제액(성인 5000만원, 미성년자 2000만원)은 2014년부터 그대로입니다. 2014년 서울의 아파트 매매 중위가격은 전용면적 84㎡ 기준 4억3000만원 정도였으나 10년이 흐른 지금 12억원 안팎까지 뛰었습니다. 증여세의 세율을 높이거나 공제액을 가만히 놔두더라도 집값 상승이 증세로 이어집니다.
부의 대물림을 완화하는 취지는 좋으나 합리적인 세제 개편 방안을 마련해 편법 증여를 자연스럽게 줄이는 쪽이 어떨까 싶습니다. 시장 왜곡 가능성도 차단하고요.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지 말라고 다그치는 것보다는 쓰레기통을 하나 가져다 놓는 게 거리 청결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 훨씬 효과적인 것처럼 말입니다.
세율 자체를 건드리는 건 앞서 말한 것처럼 '부자 감세'라는 비판이 강하겠죠. 세율 조정에 대한 부담이 크다면 혼인과 출산에 따른 증여세 공제를 확대하고 육아 및 교육과 관련한 공제도 다양하게 신설하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고령화 사회 대응이라는 명분도 챙기고 주택 시장 정상화의 취지를 실현하는 데에도 더 맞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