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의 '사법부' 역할을 담당하는 조세심판원은 과세당국과 납세자 사이에서 중립성을 지키는 일이 최우선 덕목이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과 동시에 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 산하 국세심판원에서 국무총리 소속기관으로 바꾼 것도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인사 문제에서는 독립적이지 못했다. 세금 문제를 심판할 수 있는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인물을 스스로 양성하기엔 한계가 있었고, 기재부나 국세청과의 인사 교류는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조직의 리더인 조세심판원장 역시 기재부 국장이나 국세청 출신이 거쳐가는 자리였다. 최근 심판원 사정을 잘 아는 내부 인사들도 원장에 오르면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 1순위는 기재부…내부출신 '약진'
2000년대 들어 심판원장을 거쳐간 인물(현직 포함)은 13명이며, 평균 임기는 13.3개월로 세금 분야의 4대 리더(국세청장, 관세청장, 세제실장, 조세심판원장) 가운데 가장 짧다. 승진이나 자진 사퇴, 조직 차원의 쇄신 등 다양한 변수들이 심판원장의 임기를 단축시켰다.
기재부 출신 이용섭·최경수·이희수·백운찬·김낙회 전(前) 원장은 나란히 세제실장으로 승진했고, 중부지방국세청장에서 부임한 전형수 전(前) 원장은 퇴임 후 서울지방국세청장에 오르기도 했다.
반면 '9급 신화'를 창조했던 이종규 전(前) 원장은 8개월 만에 개인 사정으로 사의를 표명했고, 올해 초 그만둔 박종성 원장은 국무총리실의 1급 고위직 일괄 사표의 희생양이 됐다. 가장 오래 근무한 허종구 전(前) 원장도 2010년 돌연 사표를 내던지며 25개월의 임기를 서둘러 마무리했다.
심판원장에 임명되는 1순위는 기재부 조세정책관(세제총괄심의관·조세정책국장에서 명칭 변경)이 꼽힌다. 조세정책관 출신 심판원장은 13명 가운데 5명(38%)이었고, 세제실장(이종규)과 재산소비세정책관(백운찬)까지 포함하면 기재부 출신 심판원장이 7명(54%)으로 절반을 넘는다. 반면 내부 상임심판관에서 원장으로 승진한 경우는 4명(31%)이었고, 이들 가운데 허종구 전(前) 원장은 상임심판관 직전 국세청에서 전입한 케이스였다.
최근에는 내부 출신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심판원에서 오랜 기간 근무한 박종성 전(前) 원장에 이어, 올해 초 부임한 김형돈 원장도 심판원에서 조사관과 행정실장, 상임심판관 등 경험이 풍부한 편이다.
◇ 후임 원장 '혼전'…"줄을 서시오"
김형돈 심판원장(행시 26회) 체제를 갖춘지 4개월이 흐른 시점에서 차기 원장을 논하기엔 다소 이른 감이 있지만, 기재부와 심판원의 전통적인 경쟁 구도는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심판원장 확률이 가장 높은 문창용 기재부 조세정책관(행시 28회)은 세제실장 후보로도 유력하게 거론된다. 문 국장이 세제실장에 오르면 당분간 심판원장도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세제실장에 김형돈 원장이 임명될 경우, 문 국장은 심판원장에 오르는 수순이 뒤따른다.
세제실 국장 'No.2'인 최영록 기재부 재산소비세정책관(행시 30회)은 문 국장의 조세정책관 자리를 채우면서 자연스럽게 차기 심판원장 후보로 떠오를 수도 있다.
조세심판원 내부에서는 엄선근 상임심판관(행시 32회)이 후보군으로 떠오른다. 엄 국장은 심판원에서 조사관과 행정실장을 지내며 풍부한 경험을 갖췄기 때문에 내부 출신의 명맥을 이어갈 적임자로 꼽힌다.
행시 동기인 안택순 상임심판관은 기재부에서 조세정책과장, 재산세제과장, 소득세제과장 등으로 오랜 기간 근무했고, 국장급 연쇄 인사가 발생하면 세제실로 복귀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