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청소기를 만드는 모뉴엘이 무역보험공사와 시중 은행들을 상대로 초대형 사기극을 벌인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수출 물품의 가격을 부풀려 수천억원의 대출을 받고, 회사는 법정관리를 신청해 '뒤통수'를 친 모양새다. "대동강 물도 팔았다"는 봉이 김선달이 울고 갈 정도로 치밀해 은행들도 '사고'가 터지고서야 정황을 파악, 사태 수습에 비상이 걸렸다.
23일 관계당국에 따르면 모뉴엘은 홍콩과 미국 등지로 수출하는 물품의 가격을 부풀려 금융사로부터 대출을 받는 수법으로 자금을 융통해왔다. 무역보험공사로부터 3000억원을 보증 받았고, 시중은행에서 빌린 여신은 6000억원을 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지난 20일 돌연 법정관리를 신청하며 은행들을 곤경에 빠뜨렸다.
▲ 박홍석 모뉴엘 대표 |
모뉴엘의 사기는 대범하면서도 치밀하게 진행됐다. 가격 가치가 없는 물품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 똑같은 물품을 홍콩과 미국 등에 '뺑뺑이' 돌리는 수법을 써서 100원짜리 물품을 1000원으로 부풀렸다. 지난해 모뉴엘은 은행들을 상대로 1조원이 넘는 매출채권을 양도하고 현금을 챙긴 것으로 확인됐다.
대출 심사 과정에서는 어느 한 곳도 모뉴엘의 신용을 의심하지 않았다. 모뉴엘은 2012년 한국수출입은행으로부터 첫 '히든챔피언' 인증을 받을 정도로 기대를 모았던 곳이다. 지난해 매출은 1조원을 넘었고, 영업현금창출력(EBITDA)은 1000억원, 이자보상비율은 500%를 넘는 우량 기업이었다.
관세청은 모뉴엘의 수출가격 조작 혐의를 잡아 박홍석 모뉴엘 대표를 검찰에 고발할 방침이다. 금융당국도 모뉴엘을 포함해 자회사인 잘만테크에 대해서도 분식회계가 있었는지 여부를 주시하고 있다. 무역보험공사를 비롯한 시중은행들도 모뉴엘의 사기로 인한 피해 규모를 따져보는 중이다.
모뉴엘뿐만 아니라 수출채권을 이용한 사기가 더 있는지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수출채권으로 대출을 받을 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격을 조작할 수 있는 문제가 드러난 것"이라며 "구조적 허점을 이용해 사기 행각을 벌인 기업이 추가로 있는지 들여다 볼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