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만 더 때리면 즉시 이혼하고, 여자 문제가 생기면 전 재산의 50%를 넘긴다."
결혼 30주년을 맞은 부부가 쓴 각서 내용입니다. 남편은 틈만 나면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바람도 자주 피웠는데요. 평생을 고통받은 아내는 각서를 통해 남편의 '개과천선'을 기대했고,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의 못된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폭력과 외도가 계속되자, 아내는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됩니다. 이미 공증까지 받은 각서를 토대로 법원에 이혼 소송을 낸 겁니다.
법원은 두 사람의 혼인 관계가 이미 파탄에 이르렀다고 판단, 남편의 재산 50억원을 아내에게 위약금으로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두 사람의 악연은 그렇게 정리되는 듯 보였습니다.
▲ 삽화: 김용민 기자/kym5380@ |
◇ 위자료 50억원 받고 별거
아내는 2014년 1월 법원 판결에 따라 남편으로부터 50억원을 받았습니다. 당장 이혼 수속도 밟고 싶었지만, 자녀가 결혼을 앞두고 있던 터라 이혼의 시기만 미뤄놓고 별거를 시작했습니다.
남편과는 이미 남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넘겨받은 재산에 대한 증여세 10억원도 고스란히 납부했습니다. 그런데 뒤늦게 세무사를 만나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혼인 파탄의 손해배상금과 위자료는 증여세 과세대상이 아니란 얘기를 들은 겁니다.
결국 아내는 국세청에 낸 세금을 돌려달라는 경정청구를 냈는데요. 기대와 달리 국세청은 아내의 주장을 묵살했고, 납세자 권리구제기관인 조세심판원에서도 국세청 과세에 문제가 없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 아직 이혼 안했으니까 '무효'
국세청과 조세심판원은 왜 아내의 얘기를 들어주지 않았을까요. 국세청은 아내가 받은 50억원이 일반적인 부부의 폭력이나 외도로 인한 위자료에 비해 너무 고액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위자료라기보단 재산을 통째로 넘겨준 것이니까, 증여세를 내란 얘깁니다.
더 결정적이었던 이유는 아직 이혼하지 않았다는 점인데요. 세법에서 이혼에 따른 위자료는 증여세가 없지만, 아내는 아무리 남편과 별거중이라도 법적으론 부부였기 때문에 증여세를 내야했습니다. 조세심판원에선 남편의 폭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액이 객관적으로 산정되지 않은 부분도 문제로 지적했습니다.
◇ 피할 수 있었던 세금
그냥 부부 사이에 재산이 오고갔을 뿐인데, 과연 세금을 내야만 했을까요. 만약 아내가 이혼 소송을 제기하지 않고, 부부끼리 조용히 합의해서 현금으로 받았다면 국세청이 모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법원에 소송을 내고 판결이 나오는 과정에서 국세청의 레이더망에 걸려버린 겁니다.
혼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남편의 신용카드를 마구 사용하거나, 재산을 흥청망청 써도 세금 문제는 생기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 문제를 알면서도 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던 건, 그만큼 남편이 보기 싫었던 것이겠죠. 실제로 아내는 현재 캐나다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증여세를 피할 방법은 또 하나 더 있었습니다. 법적으로 이혼 절차가 마무리된 후에 위자료를 받았다면 아내는 증여세를 내지 않았을 겁니다. 어차피 증여세는 물려받는 사람이 내는 세금이니까, 거액의 재산을 받을 땐 미리 세금 문제를 확인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부부 사이의 증여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