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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 세금]"새엄마랑 살라고요. 차라리 독립할게요"

  • 2017.04.13(목) 17:28

아내 사망 후 8개월 만에 재혼..딸은 집 사서 독립
심판원 "자녀가 최저생계비 이상 벌면 독립세대 인정"

"인사드려라. 이제부터 너희들과 함께 지낼 새엄마다."
 
"엄마 돌아가신 지 1년도 안됐잖아요. 우린 같이 못 살아요."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에 살던 부부는 금슬이 좋았습니다. 두 자녀를 대학에 보낸 후 함께 손잡고 여행 다니는 게 유일한 낙이었죠. 부부가 함께 노후를 보내기 위해 서울 근교에 전원주택도 알아보고 있었는데요. 
 
평온한 나날을 보내던 부부에게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건강했던 아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겁니다. 남편은 아내를 잃고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요. 일도 그만두고 술만 마시면서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보냈습니다. 
 
▲ 삽화/변혜준 기자 jjun009@
 
# 대학생 딸의 독립선언
 
실의에 빠져있던 그에게 친구가 찾아와서는 "좋은 사람이 있으니 한번 만나보라"고 권했습니다. 그는 한사코 거절했지만 친구의 거듭된 요청이 귀찮아서 한번 만나보기로 했습니다. 소개로 만난 그 여자는 자신의 처지를 이해해주고 편안하게 기댈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몇 번 더 만나보니 두 아이에게도 좋은 새엄마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는데요. 그는 여자와 재혼을 결심하고 딸과 아들에게 소개했습니다. 
 
여자는 새 가족과 친해지기 위해 자주 드나들었지만 자녀들은 냉담했습니다. 친엄마가 사망한 지 불과 8개월 만에 만난 새엄마를 받아들이긴 무리였죠. 결국 딸과 아들은 독립을 선언했는데요. 대학에 다니던 자녀들은 이미 성인이었고 친엄마가 물려준 예금과 주식 등 상속재산도 좀 있었기 때문에 독립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딸과 아들은 각각 학교 근처 오피스텔을 전세로 얻었습니다.
 
딸은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바쁘게 지냈는데요. 과외와 각종 아르바이트를 꾸준히 했고 애니메이션 소품을 제작해 판매하는 인터넷 쇼핑몰도 운영하면서 돈을 벌었습니다. 이후 대학 졸업과 동시에 회사에 취업해 완전한 독립 생활을 꾸릴 수 있었습니다. 
 
# 집 산 딸, 집 판 아빠
 
딸은 대학 졸업을 앞둔 2011년 8월 자신이 모은 돈과 전세보증금을 합쳐 다세대주택 한 가구를 매입했습니다. 아빠와는 세대를 분리해 본인이 직접 세대주로 등록했죠. 이때 아빠도 마침 강남의 아파트를 팔려고 내놓은 상태였는데요. 딸이 집을 샀다는 사실을 몰랐던 아빠는 한 달 후 아파트를 처분했습니다. 당시 1세대 1주택자였던 아빠는 아파트 가격 중 9억원 초과 부분에 대해서만 양도소득세를 냈습니다.
 
그런데 국세청은 이듬해 아빠를 상대로 양도세를 추징했습니다. 아빠가 집을 팔 당시 1세대 2주택자였다는 이유로 장기보유특별공제를 적용하지 않고 아파트 가격 중 9억원 이하 부분에 대한 양도세도 더 내라는 통보였죠. 국세청은 아빠와 딸이 주소는 달랐지만 집을 1채씩 소유한 '동일 세대'로 본 겁니다. 예상치 못한 양도세를 내게 된 아빠는 국세청을 상대로 이의신청을 거쳐 조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제기했습니다. 
 
# 국세청 직원의 거짓말
 
국세청은 딸이 주소만 옮겨놓고 실제로는 아빠와 같이 살고 있는 것으로 의심했습니다. 그래서 국세청 직원이 딸의 집주소로 찾아가 이웃 주민들에게 물어봤더니 "남자 청년이 살고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국세청은 아빠와 딸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고 두 사람을 한 세대로 보고 1세대 2주택에 해당하는 양도세를 내라고 종용했습니다. 
 
아빠와 딸은 억울했습니다. 딸이 실제로 해당 주소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국세청이 전혀 다른 진술을 받아냈기 때문입니다. 다시 확인해보니 딸이 거주하는 주택의 관리사무소장은 국세청 직원에게 "그 집에 누가 사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국세청 직원이 양도세를 물리기 위해 사실과 다르게 진술서를 작성한 겁니다. 
 
실제로 아빠가 살고 있던 강남 아파트에는 새엄마가 데려온 아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은 아들의 교통카드 사용내역서에서 확인됐는데요. 딸이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새엄마의 아들과 한 집에서 살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조세심판원의 해석입니다. 
 
심판원은 "딸은 부동산을 양도하기 이전부터 아빠와 다른 거주지에서 살았고 자체 조달한 생활비도 최저생계비 수준을 넘는다는 걸 감안하면 별도 세대를 구성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며 "국세청이 별도세대로 인정하지 않고 양도세를 과세한 처분에는 잘못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자녀가 독립세대로 인정받으려면
생계를 같이 하는 가족과 함께 구성하는 1세대가 주택 1채를 2년 이상 보유한 경우 9억원 미만에 대해서는 양도소득세를 과세하지 않는다. 자녀의 연령이 30세 미만이라도 최저생계비 수준 이상의 소득이 있으면 독립된 1세대로 본다. 딸이 과외와 아르바이트를 통해 최저생계비 이상의 생활비를 벌어들였기 때문에 독립된 세대로 인정 받았고 1주택에 대한 양도세 비과세 혜택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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