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신고만 해주면 당신이 만나는 여자, 통화, 여행, 취미활동, 외박의 자유를 보장할게요." (아내가 남편에게)
남편은 방송에 자주 출연하던 유명 성형외과 의사였습니다. 결혼 전부터 서울 강남의 40평대 아파트를 비롯해 경기도 곳곳에 토지를 보유한 자산가였는데요. 한의사인 아내를 만나 두 아이를 낳고 남부럽지 않게 살았습니다.
부부는 결혼 10주년을 맞아 아이들과 함께 미국 여행을 떠났다가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리게 됩니다. 남편이 친척의 부탁으로 강박증 환자인 교포에게 최면 치료를 해준 게 발단이었는데요. 치료를 받은 환자는 병세가 더 나빠졌다며 남편을 협박하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가족과 함께 서둘러 귀국했고 재미교포 환자가 제기할 손해배상청구 소송에 대비했습니다. 입국 다음날 아내와 이혼 절차를 밟았고 자신이 소유한 아파트도 아내 명의로 돌려놨죠. 아내에게 준 아파트는 이혼에 대한 위자료 명목이니까 증여세를 낼 필요는 없었습니다.
▲ 그래픽/변혜준 기자 jjun009@ |
# 이혼→재결합→다시 이혼
부부는 법적으로 이혼한 상태였지만 주변에 알리지 않고 평소처럼 지냈습니다. 남편은 주민등록상 거주지도 옮기지 않고 처자식과 한집에서 살았습니다. 매년 여름과 겨울이면 외국으로 가족여행을 떠나기도 했죠. 손해배상 문제가 잠잠해지자 두 사람은 이혼한 지 3년 만에 재결합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혼인신고 과정에서 남편과 아내는 제각기 조건을 걸었습니다. 사실 두 사람은 오래 전부터 성격 차이와 남편의 여자 문제로 멀어진 상태였는데요. 남편은 원래 재결합 의사가 없었지만 아내가 아이들과 함께 이민을 가겠다는 조건으로 혼인신고를 요구하자 어쩔 수 없이 들어줬습니다.
대신 남편은 혼인신고 후 자신의 사생활을 보장받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아내에게 내밀었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요구를 받아들였고 법무법인을 통해 공증까지 받았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악화됐고 재결합한 지 6개월 만에 완전히 결별했습니다.
# 국세청의 양도세 통보
이혼한 지 7년이 지난 2009년 남편은 국세청으로부터 한 통의 세금 통지서를 받았습니다. 이혼 당시 아내 명의로 옮긴 아파트에 대해 양도소득세 1억원을 내라는 통보였는데요.
국세청은 남편이 결혼 전에 취득한 아파트를 이혼할 때 아내에게 준 것이므로 증여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부부가 공동으로 이룩한 재산이 아니니까 아파트 명의를 옮긴 것이 양도였다는 해석입니다.
남편은 국세청을 상대로 자신이 이혼을 두 번이나 하게 된 사정을 설명하면서 세금 부과 처분이 잘못됐다고 주장했습니다. 첫번째 이혼은 의료사고에 의한 손해배상 청구를 피하기 위해 위장이혼한 것이며 사실상 결혼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이혼 자체가 무효니까 세금 문제도 성립될 수 없다는 주장이었죠.
이혼을 인정하지 않는 남편의 주장은 터무니 없는 억지처럼 보였지만 두 번째 논리는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넘겨준 아파트는 엄연한 재산분할로 봐야 한다는 얘긴데요. 비록 결혼 전에 구입한 아파트지만 10년 넘게 결혼생활하면서 아내가 재산형성에 기여한 점은 인정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 재산분할 1/2, 위자료 1/2
조세심판원은 남편의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한의사인 아내가 남편의 재산형성에 기여한 사실이 명백하고 이혼에 대한 위자료 부분도 인정해야 한다는 게 심판원의 설명입니다.
결국 국세청의 양도소득세 과세 처분은 잘못된 것으로 판명났고 남편에게 추징한 세금도 모두 돌려주게 됐습니다. 심판원은 "아파트의 1/2은 재산분할조로, 나머지 1/2은 이혼위자료로 보고 양도소득세 과세대상에서 제외하는 게 맞다"고 밝혔습니다.
*재산분할 청구권
민법(제839조의2)에 따르면 부부가 합의해 협의 이혼한 경우 상대방에게 2년 이내에 재산분할을 청구할 수 있다. 재산분할에 합의하지 못한 경우에는 가정법원이 쌍방의 협력으로 이룩한 재산의 액수와 기타 사정을 참작해 분할의 액수와 방법을 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