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지방이전 기업에 대한 세금 감면을 묵살하고, 무리한 세금을 추징했다가 돌려준 일이 발생했다. 사실 확인도 없이 추정과 의심을 근거로 세금을 매겼다가 뒤늦게 무리한 과세였다는 판정을 받은 것이다.
22일 조세심판원에 따르면 국세청은 지난해 8월 동훈그룹을 상대로 법인세 13억원을 추징했다. 세금 감면 혜택이 주어지는 지방이전 기업 요건에 어긋난다는 이유였다.
국세청의 기본 입장은 기업이 본사를 지방으로 이전했으면 기업의 대표도 지방에서 근무를 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데서 출발한다. 그런데 동훈은 지방 이전후 세금감면 혜택이 끝나자 다시 본사를 서울로 옮겼고, 대표들의 행적도 지방 근무는 흉내만 내는 식으로 처리한 부분이 적지 않아 세금혜택을 줄 수 없다는 게 국세청의 입장이었다. 동훈 측에서는 대표의 신용카드 사용내역과 KTX 승차권 등 증거를 제시했지만, 국세청은 의심의 눈초리를 쉽사리 거두지 않았다.
▲ 그래픽= 유상연 기자/prtsy201@ |
◇ 세금 깎으려고 지방 이전
동훈은 서울 강남의 오피스 빌딩(동훈타워)을 통한 임대사업과 아파트 분양, 경남 창녕의 골프장(힐마루 컨트리클럽) 등에서 수익을 내는 그룹 지배회사로 창업주인 김점동 회장과 장녀 김남연 대표가 공동 대표이사를 맡고 있었다.
김 회장은 2001년 서울 본사를 충남 천안으로 이전하는 결단을 내렸다. 지방이전 기업에게는 10년간 법인세 감면 혜택(5년간은 100%, 이후 5년은 50%)이 주어진다는 점이 본사 이전의 주된 이유였다. 동훈은 실제로 세금 감면 효력이 끝난 2012년에는 천안에서 서울로 다시 본사를 옮겼다.
세금을 걷는 국세청은 이같은 절세전략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정부가 세금을 깎아주는 이유는 수도권에 몰린 인구와 산업을 지방으로 분산해 균형발전을 유도하려는 취지인데, 동훈 측이 오로지 세금 혜택을 받기 위해 지방 이전한 것으로 의심했다. 국세청은 결국 세무조사를 통해 과세 근거를 수집했다.
◇ 택시·대포폰에 의심 증폭
세무조사를 끝낸 국세청은 동훈의 공동 대표들이 2011년 당시 서울 사무소에서 근무한 것으로 판단했다. 동훈의 공사 현장이 주로 서울과 경기 지역에 있기 때문에 본사를 천안으로 이전한 것은 세금감면 혜택을 누리기 위한 방편일 뿐 경제적 합리성이 없다고 봤다.
김 회장의 수상한 행적은 국세청의 의심을 부풀렸다. 국세청이 동훈측과 세금 공방을 벌이면서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김회장은 회장 소유의 고급 자동차와 기사까지 있음에도 일부러 택시를 2대씩 불러서 이동하거나, 대포폰 3대를 타인 명의로 개설해 사용한 정황이 나온다. 그가 "신분을 숨기는데 이상할 정도로 민감한 사람"이라는 얘기도 등장한다.
동훈 측이 지방에서 사용한 신용카드 내역도 제시했지만, 국세청은 믿지 않았다. 김 회장은 천안 본사에서 대부분 소액의점심값 정도만 결제했는데, 이는 기업 대표로서의 일상적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출근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카드사용 기록만 남기려고 한 변칙 행위로 의심했다.
▲ 경남 창녕에 위치한 동훈 힐마루 컨트리클럽(출처: 동훈 홈페이지) |
◇ "회장이 서울에만 있었을까"
느닷없이 세금을 추징당한 동훈도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회장 전용 차량의 하이패스 기록과 법인신용카드 사용내역, 천안 본사 결재서류 등을 조세심판원에 제출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지난 1월에는 동훈의 세무대리인이 조세심판관 회의에 출석해 의견 진술에 나서기도 했다.
실제 김 회장은 2011년 법정근무일 249일 중 천안 본사에 124일, 창녕 지점에 182일을 출근했고, 장녀 김 대표도 171일을 천안과 창녕에 출근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이 서울 자택에서 출발해 천안과 창녕 등지를 다니면서 계열사와 공사현장을 관리해왔다는 사실이 증명이 된 것이다.
조세심판원은 이를 근거로 국세청의 과세가 무리수였다는 점을 인정했다. 심판원은 "그룹 회장이 혼자 서울 사무소에 근무하면서 본사 업무를 수행했다는 것은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없다"며 "국세청이 회사 공동대표를 수도권 근무 인원으로 보고 법인세를 추징한 것은 잘못"이라고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