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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 세금]시한부 남편의 마지막 배려

  • 2016.06.22(수) 15:18

사망 앞두고 이별 통보 후 위자료 지급
아내에 증여세 추징..심판원 '취소' 결정

"난 이제 얼마 못 살아요. 추한 모습 보이기 전에 이쯤에서 헤어집시다."

 

"제가 떠나면 돌볼 사람도 없잖아요. 끝까지 당신 곁을 지키겠어요."

 

그들의 운명 같은 사랑이 시작된 건 8년 전이었습니다.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지내던 여자는 자신과 말이 잘 통하는 한 남자를 만났는데요. 처음엔 말동무나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남자의 따뜻한 인품과 배려에 빠져들었습니다.

 

두 사람은 1년 넘게 교제하다가 여자의 집에서 함께 지내기 시작했습니다. 따로 결혼식은 올리지 않았지만 서로 믿고 의지하면서 여느 부부 못지않은 애정을 과시했죠. 가족들의 대소사에도 함께 다닐 정도로 다정한 모습이었습니다.

 

여자는 30년 넘게 운영하던 의상실도 접고 새 남편의 내조에만 집중했는데요. 남자도 꼬박꼬박 생활비를 갖다주면서 남편의 역할에 충실했습니다. 그렇게 여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했지만 그들의 소소한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 그래픽: 김용민 기자 kym5380@

 

◇ 중병에 걸린 남편

 

부부생활을 시작한 지 2년이 지났을 무렵, 갑자기 몸에 이상을 느낀 남편은 병원을 찾아갔는데요. 의사가 내린 진단은 간암이었습니다. 소식을 전해들은 아내는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지만 남편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 간호에 나섰습니다.

 

아내의 극진한 간호에도 좀처럼 병세가 호전되지 않자 남편은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됩니다. 간호를 멈추고 부부의 연도 끝내자고 한 겁니다. 무엇보다도 아내에게 남편을 두 번이나 잃는 상처를 안겨주긴 싫었습니다. 처음엔 말을 듣지 않았던 아내는 남편의 거듭된 설득을 받아들여 고향집으로 내려갔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곧 남편 곁으로 돌아왔는데요. 남편이 홀로 힘들게 병원 생활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선 도저히 모른 척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아내는 남편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1년 넘게 병실을 지켰습니다.

 

◇ 아내를 찾아온 세금

 

남편을 하늘로 보내고 다시 혼자가 된 아내는 지난해 12월 한 통의 우편물을 받았는데요. 국세청에서 날아온 세금 통지서였습니다. 남편이 사망하기 직전에 아내에게 챙겨준 노후자금에 대해 증여세를 내라는 얘기였죠.

 

아내 입장에선 억울한 면이 있었습니다. 애초부터 남편의 경제력에는 관심도 없었기 때문에 재산 상속도 스스로 포기했는데요. 그래도 세상에 혼자 남겨질 아내를 걱정했던 남편이 자녀들의 동의를 얻어 돈을 건넨 겁니다.

 

아내가 유일한 생계 수단인 의상실을 정리한 것도 남편의 권유 때문이었고, 이로 인해 손해를 본 것도 사실입니다. 냉정히 따져보면 남편이 아내에게 위자료를 준 것이나 다름없었죠. 부부 사이의 위자료에는 증여세가 붙지 않으니까 아내도 당연히 세금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 국세청 내부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헤어지지 못한 죄

 

세금 추징에 나선 국세청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습니다. 국세청 내부 시스템으로 조회해보니 아내가 의상실 사업자등록을 한 적이 없고, 세금도 내지 않았다는 겁니다. 아내는 의상실이 워낙 영세한 규모라서 신고를 못했다며 재봉틀 사진까지 제출해봤지만 국세청은 아내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헤어지지 않은 점도 문제가 됐는데요. 위자료가 성립되려면 사실혼 관계를 해소했다는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남편이 사망하기 직전까지도 아내가 극진히 간호한 게 화근(?)이었습니다. 끝까지 부부 관계가 유지됐다고 판단한 국세청은 아내가 받은 돈을 위자료로 인정하지 않았죠.

 

억울함을 풀지 못한 아내는 지난 2월 납세자 권리구제기관인 조세심판원을 찾아갔습니다. 자신의 동생과 남편의 며느리가 써준 확인서도 제출했는데, 여기엔 부부의 가슴아픈 사연이 담겨 있었죠. 비록 국세청에선 통하지 않았지만 조세심판원은 아내의 진정성을 받아들였습니다.

 

심판원은 "이미 남편의 투병생활과 사망 우려에 대해 아내가 받은 정신적 손해는 상당하다"며 "사실혼 관계 청산에 따른 물질적 보상이 맞는 만큼 국세청이 증여세를 부과한 처분은 잘못"이라고 밝혔는데요. 결국 아내는 국세청에 추징 당한 세금을 돌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혼 위자료의 증여세

이혼에 따라 정신적 또는 재산상 손해배상 차원에서 받는 위자료는 증여세를 내지 않는다. 사실혼 관계에서 이혼한 경우도 마찬가지로 증여세 과세 대상이 아니다. 다만 혼인 상태에서 부부 사이에 주고 받는 재산에 대해서는 증여세가 부과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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