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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세금 한푼 안 낸다고?

  • 2016.09.08(목) 14:17

국민개세주의 유래는 귀족도 세금 내라는 얘기
재분배기능 낮은 한국, 소득세제부터 고쳐야

 

근로소득세 면세자 비율이 절반에 육박했다(2014년 기준 48%)는 소식에 국민개세주의(國民皆稅主義) 원칙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헌법에서 정한 납세의 의무대로 모든 국민이 조금씩이라도 세금을 내도록 해야 한다는 거죠.

 
면세자는 소득이 있어도 내는 세금보다 각종 공제 등으로 환급 받거나 과세소득이 줄어 결과적으로 세금을 안 낸 쪽에 포함되는 사람들인데요.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마치 근로소득자 절반은 세금 한 푼 안내며 복지혜택만 요구하는 파렴치한으로까지 몰리는 상황입니다.
 
최근에는 법인세 인상론을 막으려는 쪽에서 근로소득세 면세자비율에 대한 언급이 특히 잦아지고 있는데요. 법인세를 올리는 것보다는 세금 안내는 사람들한테서 조금씩 더 내도록 하는게 중요하다는 논리의 근거로 제시되는 거죠. 그런데 여기에는 몇가지 중요한 오해가 있습니다.   

 

# 오해1 : 국민개세주의는 헌법에 있는 내용?

 
첫번째는 국민개세주의가 우리나라 헌법에서 밝히고 있는 납세의 의무를 말한다는 오해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국민의 의무 중 납세의 의무를 명시하고 있는데요. 헌법 제38조에서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납세의 의무를 진다"라고 적시돼 있고,
헌법 제59조는 "조세의 종목과 세율은 법률로 정한다"고 돼 있습니다. 세금 관련 내용은 딱 이 두줄 뿐입니다.

모든 국민은 법률에서 정한 바에 의해서 납세의 의무를 진다는 건데요. 핵심은 법에서 정한만큼 져야 한다는 거죠. 이것은 국민개세주의 원칙이 아니라 조세법률주의 원칙과 조세평등주의 원칙을 설명한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조세법률주의는 세금부담을 정부나 누군가가 임의대로 결정하지 못하도록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법으로 정해야 한다는 것이고요. 조세평등주의는 조세부담이 공평해야 한다는 겁니다. 여기서 공평은 소득과 재산이 같으면 세금부담도 같아야 한다는 '수평적 공평'과 함께 소득과 재산이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세금부담을 지우는 '수직적 공평'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세금의 목적 자체가 부의 재분배이기 때문이죠. 부를 재분배해서 모든 국민이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헌법 전문에서 밝히고 있는 국가의 책임인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이루는 방법이니까요. .

그렇다면 국민개세주의라는 말은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사실 국민개세주의는 프랑스혁명 때 시민들이 내세운 구호에서 출발했습니다. 당시 세금을 내지 않는 귀족들도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 개세주의였죠. 봉건적인 신분사회에서 시민사회로 넘어가기 위해 소득과 재산이 많으면서도 세금을 내지 않는 귀족들에게도 공평한 세금부담을 지워야 한다는 논립니다.
 
그런데 멀리 서양의 구호가 우리나라로 넘어오면서는 내용이 엉뚱하게 해석되고 있습니다. 돈 있는 귀족도 국민이니 세금을 내게 해야 한다는 논리가, 돈 없는 사람도 국민이니 한 푼이라도 세금을 내야 한다는 논리로 바뀐거죠.
 
# 오해2 : 세금 안 내는 국민이 너무 많다?
 
다른 오해는 근로소득세 면세자를 세금을 한 푼도 안 내는 사람으로 보게 한다는 건데요. 우리나라 근로소득세 면세자는 법에서 정한만큼 세금을 부담했지만 법에서 정한 각종 비과세감면 등의 적용을 받아 결과적으로 소득세를 납부하지 않는 계층이 포함돼 있습니다. 

46%의 면세 근로자들은 근로소득세를 내지 않게 된 것이지, 나라에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 사람이 아닙니다. 근로소득세에 대해서만 그렇다는 것이죠. 
 
이들도 물건을 구매하거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등 각종 소비생활을 할 때에는 10%의 부가가치세를 비롯해서 개별소비세나 교통에너지환경세, 주세, 관세 등을 부담하고 있고요. 여기에 부가되는 교육세와 농어촌특별세도 납부하고 있습니다. 근로소득은 없지만 다른 소득이 있어서 종합소득세를 낼 수도 있고요. 집을 사고팔 때 취득세와 양도소득세 등도 부담합니다. 세대주이거나 집이 있는 사람은 지방세인 주민세나 재산세도 내죠.
 
근로소득세 면세자 비율을 다른 선진국과 단순 비교하는 것도 오해를 부릅니다.

우리나라 근로소득세 면세자 비율은 일본(15.8%), 캐나다(22.6%), 독일(19.8%), 오스트레일리아(23.1%) 등 선진국들과 비교해 크게 높은데요. 하지만 우리나라 소득세의 소득재분배 기능(소득세 세전·세후 지니계수 변화) 역시 OECD 회원국 31개국 중 30위로 최하위라는 점을 함께 봐야 합니다. 
우리나라 소득재분배 기능은 독일의 1/7, 일본의 1/5 수준입니다. 
 
조세, 즉 세금의 가장 큰 기능은 부의 재분배입니다. 소득재분배를 위해 소득이 더 많은 사람일수록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하는데, 분배도 안되면서 당장 면세자 비율부터 줄이자는 것은 소득재분배 기능을 더 떨어뜨릴 뿐이죠.
 
면세자 비율을 줄이는 것은 궁극적으로 옳은 방향입니다. 하지만 일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어떤 처지에 있는지부터 잘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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