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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세금 잘 걷히는 불편한 이유

  • 2016.08.12(금) 17:00

소득세 : 주택 거래 확 늘어
부가세 : 수출 감소로 환급액 줄어
법인세 : 비용 줄이자 영업익 늘어


우리나라가 세금걷기 올림픽에라도 출전한 걸까요? 경기는 불황인데 세금은 더 빠르게, 더 많이 걷힌다고 합니다.

12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국세청과 관세청이 올해 걷은 세금은 6월말까지 125조6000억원에 달합니다. 지난해 6월말 106조6000억원보다 무려 19조원이나 더 많이 걷혔습니다.

세금이 걷히는 속도도 지난해보다 빠른데요. 정부가 걷힐 것이라고 예상한 세입 예산안 대비 실적인 세수입 진도율은 6월말 기준 56.3%에 달하는데요. 1년 전 6월에 세수진도율이 49.4%였으니 세금 걷히는 속도가 7%포인트 가까이 빨라진 거죠. 1년의 절반인 6월말 기준으로 50%를 넘겼으니 목표 초과달성입니다.
 
# 어디서 얼마나 더 걷혔나
 

세금이 얼마나 잘 걷혔으면 국세청은 하반기에 속도조절까지 들어간 모습입니다. 세무조사보다 무섭다는 사후검증(신고가 잘됐는지를 검증하는 조사)을 지난해보다 30%나 줄이겠다고 밝혔습니다.

 

2012~2013년 유럽 재정위기 이후 수년 째 불황 속에 살고 있는 국민들 입장에선 상식적으로는 납득이 안가는 일이죠. 돈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는 것이라 기업이든 개인이든 수익이 줄면 낸 세금도 줄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왜 세금은 더 빨리 더 많이 걷히고 있는 걸까요?

 

더구나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세금이 안 걷힌다고 난리였거든요. 세입예산 대비 세수입은 2012년 이후 2013년, 2014년, 2015년까지 4년 연속 예산보다 부족해서 '세수 펑크'가 났습니다. 


정부에서 2015년에는 2조2000억원이 더 걷힌 것으로 홍보하고 있지만, 사실 이 금액은 2015년 7월 추가경정예산안(추경) 편성으로 걷겠다는 세금을 무려 5조6000억이나 깎은 후의 결과입니다. 정확하게 계산하면 2015년에도 세금은 3조4000억원이 부족했던 거죠.

 

그렇다면 2016년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일단 세금이 어디서 얼마나 더 걷혔는지를 좀 살펴보겠습니다. 6월말까지 더 걷힌 세금은 19조원인데,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의 3대 세목에서 모두 골고루 더 걷혔습니다. 

 
소득세는 4조9000억원이 더 걷혔고, 법인세는 그보다 1조원 더 많은 5조9000억원이 더 걷혔습니다. 부가가치세도 5조8000억원이 초과징수됐고요. 그밖에 교통에너지환경세 8000억원, 관세 1000억원, 기타 1조4000억원이 예산보다 많이 걷혔습니다.
 
 
# 빚내서 집사라..세금 더 걷게  
 
표면적으로 소득세에서는 양도소득세수 확대가 세수증가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올해부터 주택담보대출 심사요건이 까다로워지고, 비사업용토지의 양도차익에 세금을 중과하는 중과세제도가 부활하면서 지난해 연말에 아파트 등 부동산거래가 크게 늘었거든요. 양도소득세는 신고납부기한이 2개월이라 연말에 거래된 부동산의 양도소득세가 올 초에 집중적으로 들어왔죠.
 
1~2월 잠잠했던 거래량은 금리인하 및 동결 등의 영향으로 다시 증가하고 있고 7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역대 최대로 불어난 상황이라 하반기에도 양도소득세 수입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밖에 지난해 말에 실시한 코리아그랜드 세일과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가 소비를 일시적으로 늘려서 부가가치세 수입을 끌어올린 효과도 있었던 것으로 분석됩니다.

# 불황이라서 '국세청만' 좋아요 

부가가치세수는 아이러니하게도 불경기라서 더 걷힌 세금으로 봐야하는데요.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더 걷혔다기 보다 덜 돌려줬다는 표현이 맞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가가치세는 소비할 때 내는 세금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부가가치세 세수입의 대부분은 수입할 때 걷히는데요. 수입물품에도 부가가치세 10%가 붙는데, 이렇게 수입물품에 붙은 부가가치세가 전체 부가가치세수의 68%(2015년 기준 68.8%)나 차지합니다.

그런데 수입물품을 이용해서 제품을 만든 다음 수출을 하면 수입할 때 냈던 부가가치세를 돌려준다는 게 세수입 변화의 핵심입니다. 예를 들어 밀을 수입해서 밀가루를 만들어 수출하는 기업이라면 밀 수입 때 냈던 부가가치세를 밀가루 수출할 때 돌려받는 거죠.

문제는 글로벌 경제가 불안해지면서 수출이 크게 줄었다는 점입니다. 수출이 줄어들면서 부가가치세 환급액도 줄고, 그래서 역으로 부가가치세수입은 늘어나는 묘한 현상이 발생하는 거죠.
 
수출에 대한 부가가치세 환급은 분기마다 이뤄지는데요. 1~3월 수출분 환급을 4월에 4~6월 수출분 환급을 7월에 하는 식입니다. 상반기 세수에 포함되는 2015년 4분기와 2016년 1분기 수출실적을 보면 2015년 4분기에 1300억1694만달러이던 수출액이 올해 1분기에는 1155억8555만달러로 쪼그라든 걸 알수 있습니다.

법인세도 불경기가 세수를 늘린 역설적인 측면이 있는데요. 지난해에도 기업들은 어렵다는 소리를 달고 살았는데, 국내 상장사들의 영업이익을 보면 2014년에 91조원대에서 2015년에는 102조원대로 오히려 증가했습니다. 

비밀은 매출이 아닌 영업이익에 있는데요. 장사가 잘 되진 않았지만 국제유가가 하락하는 등의 이유로 기업의 비용이 줄어든 것이 영업이익 증가로 이어진 것이죠. 세금을 내는 기준은 매출이 아닌 이익이기 때문에 법인세도 불황 속에서 더 걷히는 기현상을 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박근혜식 몰래 증세..담뱃값 인상

불황 속 세수호황의 또 다른 이유는 박근혜 정부가 절대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증세를 실행한 효과가 발생한 것인데요.

대표적인 것이 담뱃세 인상입니다. 정부는 2015년부터 담뱃값을 2000원 올렸는데요. 그러면서 국세 수입도 크게 늘었습니다. 담뱃값에는 담배소비세와 지방교육세 등 지방자치단체 소관인 지방세도 포함돼 있지만 부가가치세와 지난해부터 담뱃값에 붙기 시작한 개별소비세처럼 국세도 있거든요.
 
실제로 가격인상 이후 첫해인 지난해 소비감소에도 불구하고 전년대비 3조5608억원의 세금이 더 걷혔는데 이중 2조2000억원이 국세수입이었습니다. 올 상반기에는 담배판매량이 가격인상 이전까지 회복된 상황이라 세수입은 더 늘었을텐데요. 기타세목에서 1조4000억원이 더 걷힌 것이 대부분 담배에 붙은 개별소비세수라고 보면 됩니다.
 
# 당신의 세금은 00원입니다..친절한 압박

국세청의 세정활동이 강화된 것도 보이지 않는 증세효과를 냈는데요. 국세청이 지난해부터 강화한 사전신고안내와 사후검증은 세무조사보다 더 확실한 세수입 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사전안내는 신고납부기간이 되면 국세청에서 납세자가 납부할 세금에 대해 미리 주의할 점을 알려주는, 외형상 친절하게 보이는 제도인데요. 사실은 납세자에게 당신은 이런 점 때문에 이만큼 세금이 나올 것이니 알아서 잘 신고하시라, 그렇지 않고 사후검증을 통해 밝혀지면 더 무거운 세금이 추징될거다라고 압박을 가하는 역할도 합니다. 
 
실제로 국세청이 사전안내를 강화하면서부터 자진신고로 걷은 세수입이 10%포인트 정도 늘어난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알아서 잘하라는 압박이 먹힌거죠.
 
# 그러나, 정책효과 사라지면...
 
4년 연속 펑크에서 급반전하고 있는 세수입이 반짝하는 일시적인 것일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늘어난 세수입에는 양도소득세처럼 대출심사 강화 등의 정책 효과 때문에 발생한 세수입이 적지 않거든요. 국민 개개인이나 기업들이 소득이나 매출이 증가해서 더 걷힌 게 아니라 집을 팔고 세일기간에 소비를 많이 해서 걷히거나 수출이 줄어드는 등 불황의 여파로 걷힌 세금들이 많다는 것은 당장의 또다른 정책적 이슈가 없다면 금새 쪼그라들 수 있거든요.

정부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까지 세수입이 호조를 보이는 틈을 이용해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하기로 한 점도 걱정입니다. 
 
이번 추경은 올해 세금이 당초 예산안보다 이정도 더 들어올 것 같으니 그만큼을 더 쓰겠다는 얘기로, 가정(假定)을 토대로 빚을 내는 것이거든요. 어떤 이유든 세수입이 정부 예상보다 덜 들어오면 올해 역시 본의아니게 세수입 펑크가 나는 상황이 생기는 거죠. 지금까지 정부 예측이 제대로 맞은 적이 없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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