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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 남몰래 쓴 돈의 무게

  • 2017.07.06(목) 08:01

[세무칼럼]김경조 삼정회계법인 조세본부 부장

영화 '버킷 리스트(2007년, 미국)'는 죽음을 앞에 둔 영화 속 두 주인공이 한 병실을 쓰게 되면서 자신들에게 남은 시간 동안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리스트를 만들고, 이를 하나씩 실행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사람은 각자의 살아온 환경에 따라 자신만의 고유한 '버킷 리스트'가 있기 마련인데, 이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때로는 상당한 자금이 필요하기도 하다. 자금이 충분하지 않다면, 대출을 받거나 보유 재산을 처분하는 방법 등으로 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 이러한 자금을 기반으로 버킷 리스트를 하나 둘 실행에 옮기면서 여생을 마무리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자녀들은 고인의 삶을 존중하기에 죽음을 앞두고 했던 일과 사용했던 자금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 필요는 없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상속세를 생각하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후회 없는 삶을 살아내려 했던 고인의 행적을 왜 상속인이 알아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이 생기겠지만, 적어도 세법은 이러한 경우 자금의 사용내역을 알아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리고 그 내역을 알 수 없다면, 상속인이 자금을 받은 것으로 추정해 버린다. 이를 '상속재산의 추정 규정'이라고 한다. 

다소 억울한 상황이 발생할 수는 있지만, 사실 이 규정은 피상속인이 사망하기 전 상속재산을 처분하면서 그 처분금액을 현금으로 몰래 상속하여, 상속세를 부당하게 회피하는 사례를 차단하기 위해 고안됐다. 

헌법재판소도 본 규정이 상속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합헌으로 답했다(헌재2010헌바342, 2012.3.29.). 과세관청이 현금 또는 현물이 상속된 사실을 완벽하게 입증하기 거의 불가능한 현실에서, 피상속인의 처분재산에 대한 입증책임을 상속인에게 지게 한 것은 불가피한 조치라는 판단이다. 

따라서 실제 상속받은 사실이 없는 경우에 대해서까지 상속으로 추정되는 상황은 피할 수 있도록, 본 규정의 기본 골격은 알아 둘 필요가 있다.

먼저 피상속인이 재산을 인출 또는 처분하는 경우에는 처분가액이 상속개시일 전 1년 이내에 2억 원 이상이거나 상속개시일 전 2년 이내에 5억원 이상이면 상속재산으로 추정한다. 여기서 처분가액 등은 재산의 종류별로 계산하며, 재산의 종류는 현금·예금·유가증권, 부동산·부동산에 관한 권리, 기타재산 세 가지 형태로 분류한다.

금융회사 등으로부터 채무를 부담하는 경우에는 피상속인이 부담한 채무의 합계액이 상속개시일 전 1년 이내에 2억원 이상이거나 상속개시일 2년 이내에 5억원 이상이면 상속재산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도 처분가액 등이나 채무부담액(소명대상금액)의 사용내역를 80% 이상만 입증할 수 있으면 상속재산으로 추정하지 않는다. 상속인의 입장에서 피상속인이 했던 모든 경제활동을 파악하고 그에 대한 증빙을 준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80% 넘게 입증하더라도 입증하지 못한 금액이 2억원 이상인 경우에는 상속재산으로 추정한다. 이 때 소명하지 못한 금액에서 소명대상금액의 20%나 2억원 중 적은 금액을 뺀 것을 상속재산으로 추정한다.

죽음을 앞둔 어른을 모시는 가정에게 이런 입증 책임을 부여한다는 것, 그리고 상속인이 이를 이행한다는 것은 난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서글프고 어렵지만, 그래도 피상속인의 사망이 예견 될 즈음부터는 그 사용처를 소명할 수 있도록 증빙을 갖춰야 한다. 입증책임의 무게를 감당해야만 상속의 추정으로 발생되는 상속세 부담을 최소화 할 수 있다. 

이 규정의 합헌결정 당시 반대의견을 낸 재판관 3인의 의견을 끝으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이 사건 법률조항은 오늘날과 같이 금융실명제가 정착되고 과세관청이 방대한 소득자료 등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 이상 그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 입증을 하지 못한 경우에는 상속인이 상속받은 사실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상속세를 부담하는 경우가 생기게 되는데, 이러한 경우 상속인의 재산권 침해의 정도가 심히 가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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