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부터 가상화폐 실명제가 시행되면서 가상화폐 과세에도 한 발짝 더 다가서게 됐습니다. 물론 실명제만으로는 가상화폐 과세가 어렵고 법과 제도적인 준비가 더 필요합니다. 가상화폐 과세까지 풀어야할 숙제를 살펴봤습니다.
▲ 그래픽/ 김용민 기자 kym5380@ |
가상화폐 과세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가상화폐가 국경을 넘나들기 때문입니다. 한 국가 내에서 이동하는 가상화폐들은 과세당국이 비교적 추적하기 쉽지만 나라와 나라를 넘나드는 가상화폐를 추적하는 건 현재로선 불가능합니다.
예컨대 A씨가 미국 거래소에서 60만원에 사들인 비트코인을 한국 거래소에 지갑을 가지고 있는 B씨에게 전송했습니다. 과세당국은 이에 대해 증여세를 매길 수 있을까요. 만약 B씨가 가상화폐를 2000만원에 팔았다면 과세당국은 양도소득세를 매길 수 있을까요.
과세당국이 세금을 매기려면 먼저 B씨의 코인 매입가격과 매도가격, 가상화폐 지갑의 주인 등 과세정보를 알아야 합니다.
현재 국내 거래소에서 거래된 정보는 과세당국이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지만 해외 거래소에서 넘어온 코인 정보를 파악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개인 간 거래를 통제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죠. 그래서 가상화폐에 과세하려면 국제 공조가 필요합니다.
국회 입법조사처 관계자는 “거래소를 거치지 않은 개인 간 거래는 누구도 통제하기 어렵지만 가상화폐 현금화는 거래소에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거래소를 통하면 과세자료를 상당 부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 때문에 (각국 거래소의 과세자료를 제공 받기 위한) 국제 공조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거래소 통해 과세자료 확보
가상화폐 거래에 대한 국제 공조를 단기간 내에 이뤄내긴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국내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가상화폐부터 과세하자는 얘기가 나옵니다.
전문가들은 익명성을 전제로 하는 가상화폐의 특성상 거래소를 매개로 해야 과세자료를 확보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김진화 블록체인협회 공동대표는 거래소는 기존 경제 시스템과 암호화폐 시스템간 매개체라고 설명하면서 “암호화폐에 세금을 매기려면 본인확인 자료가 필요한데 이는 거래소를 통해 확보할 수 있다. 거래소를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지난 26일 열린 한국조세정책학회 주최로 열린 ‘가상통화 과세문제’ 토론회에서 발표를 맡은 장재형 법무법인 율촌 세제팀장은 “가상화폐는 익명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과세하려면 실명 자료를 과세당국에 제공할 수 있는 가상화폐 거래소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견해를 내놨습니다.
◇ 거래소 과세자료 제출 의무화
거래소들이 보유한 거래자들의 계좌정보가 실명이어야 과세자료가 될 수 있는데 가상화폐 거래 실명제가 정착되면 이런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될 겁니다.
하태형 전 현대경제연구원장은 “실명으로 거래가 이뤄져야 과세당국이 개인별로 가상화폐 취득액과 매매차익 등을 파악할 수 있다”며 “정부가 계좌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되면 계좌의 자금세탁과 테러자금 보유 여부도 알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현재는 가상화폐 거래소가 과세당국에 과세자료를 제출하도록 강제할 법률이 없습니다. 지난해 가상화폐 거래소 인가제 도입을 골자로 한 가상화폐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을 제출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가상화폐 거래소가 과세자료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법으로 정해야 한다”며 “'과세자료 제출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는 과세자료를 제출해야 하는 기관을 명시하고 있는데, 현재 가상통화 거래소는 통신판매업자로 돼 있어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안연환 세무사(전 세무사고시회장)도 "가상화폐에 과세하려면 가장 먼저 거래소가 과세자료를 실명으로 제출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 법적성격·평가방법 마련해야
가상화폐에 세금을 매기려면 세법을 비롯한 과세 관련 법 전반을 손봐야하는데요. 우선 가상화폐를 재화로 볼 것인지 통화로 볼 것인지 등에 따라 과세 가능한 세목도 달라지므로 가상화폐를 법적으로 정의해야 합니다.
가상화폐의 법적 개념은 세법이 정의할 수도 있겠지만 전자금융거래법 등 가상화폐 근거법에서 규정하는 게 자연스러울 겁니다.
전규안 숭실대 회계학과 교수는 “가상화폐 과세문제의 출발점은 가상화폐를 무엇으로 봐야하는지 정하는 것”이라며 “예를 들어 부가가치세의 경우 가상화폐를 금융상품, 유가증권, 상품 등 재화로 본다면 과세할 수 있지만 통화로 본다면 과세할 수 없다. 현금을 주고받았다고 해서 부가세를 과세할 수 없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과세를 위해서는 가상화폐의 자산평가 방법이 마련돼야 합니다.
김병일 강남대 교수는 “상속증여세의 경우 가상화폐는 경제적 가치를 가진 재산이므로 현행 세법으로도 상속증여세를 과세할 수 있다”면서도 “구체적 자산평가방법에 대해서는 관련규정을 보완해야 한다. 국세청이 세법에 따라 과세하려면 먼저 가상화폐의 가치를 공정하게 평가하는 기준이 필요한데 아직 세부규정이 마련돼있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 그래픽 : 변혜준 기자/jjun0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