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세 이상 노인인구가 700만명을 향하고 있다. 더이상 일자리 문제는 청년들만의 고민이 아니다. 시니어도 일자리 없이는 안락한 노후를 꿈꾸기 힘든 시대다. 비즈니스워치는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시니어들의 현재 모습과 시니어 잡(Job)에 대한 해법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살펴본다. [편집자]
동작구 어르신행복주식회사는 국내 최초로 지방자치단체가 100% 출자해 만든 영리법인으로 동작구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만 61세~만 73세 이하의 노인들만 고용한다. 남들은 인력 자르기가 한창이라는 건물 청소용역이 주된 사업인데 올해 신규 채용 인원만 98명에 달한다.
채용을 많이 할 수 있는 이유는 분명했다. 어르신행복주식회사의 시간당 보수는 올해 최저임금 7530원보다 1681원 많은 9211원으로 월 평균 130만원, 최고 월 240만원(주40시간 근무+수당) 수준의 급여를 보장한다.
4대보험은 물론 연차휴가도 있고, 근무시간도 본인이 원하는 만큼만 일할 수 있다. 내가 하루에 4시간만 일할 수 있다면 4시간만 일하는 조건으로 입사할 수 있다. 동작구 어르신들 사이에서 어르신행복주식회사가 '꿈의 일자리'로 불리는 이유다.
▲ 2018년 5월29일 동작구 어르신행복주식회사 사무실에서 박은하 대표이사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이명근 기자/qwe123@ |
지난 29일 서울 동작구 행복지원센터에서 만난 박은하 어르신행복주식회사 대표 역시 급여와 복지부분을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같은 청소용역 업계에선 어르신들이 하루 7시간 일하면서 120만원도 못 받는 경우가 많다. 저희는 최저임금이 아니라 생활임금을 보장해주자는 취지에서 동작구 생활임금인 시간당 9211원을 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생활임금은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기준인 최저임금과 달리 실질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자체가 개별적으로 도입하는 임금 체계다. 해외에서는 오래된 제도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서울시가 광역시로는 처음으로 2015년에 도입했고, 이에 앞서 기초자치단체별로 서울 성북구와 노원구가 2013년에, 경기 부천시가 2014년에 각각 도입했다.
최저임금보다 훨씬 높은 생활임금은 재정부담이 뒤따른다. 주로 공공기관에서만 적용하고 있는 이유인데, 어르신행복주식회사는 창립 이후 이 수준을 계속 보장하고 있다.
그 비결이 뭘까. 박 대표는 지자체가 출자한 법인으로는 최초 '영리법인'이라는 점에 그 해답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내용상으로는 사회적 기업이지만 형식은 상법상 주식회사다. 사회적 기업은 비영리모델이 많은데 우리는 영리모델"이라며 "창립할 때 동작구청이 자본금 2억9000만원을 출자했고 한국노인인력개발원에서 노인 일자리기업 보조금을 3억원 받았다. 하지만 이것은 영속성을 주지 못한다. 결론은 수익사업에서 찾아야 하는데 지금 청소용역은 물론 아이돌봄서비스, 수공예품 제작판매사업 등도 하면서 수익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어르신주식회사의 클리닝서비스는 동작구 지역 체육관과 문화센터, 도서관 등 공공기관 17곳의 청소용역을 도맡아 하고 있고, 최근에는 민간빌딩 청소용역도 수주하면서 어르신행복주식회사 수익사업을 견인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싼타맘'으로 브랜드를 론칭한 아이돌봄서비스는 짧은 기간 내 74명의 싼타맘을 배출하면서 매칭 건수가 30건을 넘겼다. 어르신들이 직접 제작하는 수공예품 브랜드 '할美꽃'은 일부 제품을 글로벌 온라인쇼핑몰 아마존에 판매하는 등 수출길도 열어 둔 상태다.
박 대표는 "물론 일반적인 용역업체보다는 임금 수준이 높아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다. 실제 첫해에는 적자가 났다. 하지만 지난해 2900만원 정도 흑자를 낼 정도로 수익사업이 점차 활성화되고 있다"며 "어르신들 인건비를 최우선으로 드리고 사무실 운영비 등 경상비는 최대한 긴축재정으로 운영한다. 4~5년은 이익을 낸다기보다는 투자의 시간으로 보고 계속 연구 중"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창립 초기에는 용역 수주가 쉽지 않았다. 생활임금을 보장해주다 보니 기본 용역단가가 높을 수밖에 없고 건물주들은 이왕이면 싼 곳을 찾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초기에 일부 동작구에서 운영하는 공공건물에만 사업 수주가 국한됐던 이유다.
▲ 어르신행복주식회사 박은하 대표. 사진: 이명근 기자/qwe123@ |
박 대표는 복지가 업무의 성과로 이어지는 선순환에 그 답이 있다고 봤다. 임금과 복지를 보장받은 인력들이 소속감과 함께 일에 대한 열정을 가지면서 서비스의 질이 높아졌고, 그러면서 새로운 사업을 따내는 성과로 이어져 다시 높은 수준의 복지를 보장해줄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박 대표는 "급여 외에 어르신들이 만족감을 표시하시는 것이 바로 소속감이다. 보통 청소용역회사들은 일만 하고 끝나는데 저희는 어르신들의 동향이나 건강을 체크하는 등 어르신들을 지속적으로 관리한다. 지자체가 출자한 만큼 금방 없어질 회사가 아니라는 점도 안정감을 많이 느끼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구성원들이 일자리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박 대표는 "돈도 돈이지만 60~70대에도 일을 하고 싶어 오신 분들이다. 어떤 분은 난 머리를 평생 썼으니 이제는 편하게 몸 쓰면서 일하고 싶다고 온 분도 있다"며 "청소용역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대기업 임원이나 공직에 있었던 분들도 지원하는 등 지원자가 다양해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탄탄한 교육시스템도 서비스 질을 뒷받침한다. 청소용역이나 아이돌봄서비스 등 직무교육이 필요한 분야는 외부에서 인증받은 전문가를 직접 초빙해 교육하고 있다. 아울러 성희롱예방교육과 안전보건교육 등 법정 의무교육까지 모두 이수해야만 어르신행복주식회사의 일원이 될 수 있다.
동작구에서 어르신행복주식회사가 지역 노인들의 재취업 성공 사례로 입소문을 타면서 이를 벤치마킹하려는 다른 지자체나 기관도 늘고 있다. 성동구는 지난해 성동미래일자리라는 법인을 설립했고, 내년에는 금천구도 비슷한 형태의 지자체 출자법인 출범을 예고하고 있다.
박 대표는 노인들이 잘 할 수 있는 사업을 계속 발굴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우리도 처음에는 사업 아이템을 11가지나 구상했다. 실버택배, 제빵, 목공, 교구제작 등 다양한 아이템을 시도했고 지금도 시도하고 있다. 그때는 성공하지 못할 것 같던 사업이 나중에는 상황이 맞아 좋은 사업으로 자리 잡을 수도 있다. 끊임없이 사업거리를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물론 걸림돌도 있다. 노인에 대한 편향된 인식이다.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넘어간다고 하는데 노인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꼰대 혹은 생산력 떨어지는 잉여인력이라는 평가로 채워져 있다. 이는 곧 노인이기 때문에 노인이 하는 일에는 돈을 적게 줘도 된다는 인식으로 이어진다.
박 대표는 "만나보면 70대 노인도 건강한 분들이 많다. 나이보다는 어떻게 자기관리를 하고 있는가를 봐야 한다"며 "첫해 한 건물주를 만났는데 5층짜리 건물에서 2명이 24시간을 교대근무하는데 월 80만원을 받고 있다더라. 그분들이 얼마나 열악하게 일하는지를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회적으로 인식 전환이 되도록 캠페인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 어르신주식회사 취업정보
거주요건 : 서울시 동작구에 2년 이상 거주한 동작구민
연령요건 : 만 61세 이상~만 73세 이하
채용기간 : 공채(매년 11월말 채용공고) 및 수시채용 병행
채용분야 : 건물 클리닝서비스, 아이돌보미, 천연염색 수공예 등
근무여건 : 생활임금 시간당 9211원, 근무시간 선택 가능, 4대보험, 연차휴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