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급 공무원 합격자의 지난해 평균연령은 27세다.
지난 2008년 공무원 시험 응시연령 상한선이 없어지면서 최하위 직급인 9급 공무원 시험에도 고령의 합격자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그 수가 많지는 않다. 특히 조직사회에서 나이 많은 말단 직원이 버텨내기란 녹록지 않다.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말단 공무원이 있다. 주인공은 1969년생으로 2016년 9급 공채시험(세무직)에 합격한 서경희 씨(50세).
올해 쉰살이 된 그는 현재 근무중인 영등포세무서 재산세과의 막내 직원이다. 직급은 막내지만 마음만큼은 세무서장 못지 않다고 자부하는 서씨를 만나기 위해 영등포 세무서를 찾아갔다. ※인터뷰는 세무서에서 하면 동료들의 업무에 방해가 된다는 서씨의 뜻에 따라 인근 카페에서 진행했다.
▲ 영등포세무서 재산세과 신고계 막내 직원 서경희(50세)씨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 늦게 공무원이 됐다. 사정이 있었나
▲ 미국에서 대학원 졸업 후 3주만에 결혼하고 계속 전업주부로 살았다. 당연히 일자리 가질 시간이 없었다. 남편은 아침에도 국이 있어야 밥을 먹는 사람이다. 10년 정도 박사공부를 했는데 내가 뒷바라지를 했다. 남편이 박사를 취득하고 한국으로 돌아 온 후에 공기업에 다니게 되면서 지방에 내려갔고, 그때부터 주말부부로 지내면서 공부할 시간이 좀 생겼다. 마침 공무원 나이제한도 없어져 시험을 보게 됐다.
- 왜 세무직을 택했나
▲ 대학에서 통계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는 MBA준비를 하면서 회계학도 접했다. 그러다보니 뭔가 손에 잡히는 실질적인 일을 하고 싶어졌다. 공부를 하면서 들은 얘기인데 일반 공무원은 나중에 결국 다 같아지는데 세무공무원은 연차가 쌓일수록 전문직처럼 전문분야를 확실하게 갖게 된다고 하더라. 9급 세무직은 세법과 회계학이 선택과목이지만 개인적으로 세무공무원은 세법과 회계학을 당연히 봐야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시험에서도 세법과 회계학을 선택했다. 대학원에서 회계를 접한 것이 도움이 많이 됐다.
- 시험공부는 얼마나 했나
▲ 1년 정도 했다.
- 합격 후 회계실무 자격증 시험도 봐야 한다던데
▲ 회계실무 2급을 따야 한다. 나 같은 경우에는 영등포 세무서에 임용된 후 3개월만에 치른 첫 시험에서 바로 합격했다. 신입 직원들의 회계실무 시험 합격률은 세무서별 조직평가(BSC)와도 연결돼 있는데, 실무시험을 빨리 패스해 조직 윗분들에게 좋은 인상을 준 것 같다.
- 현재 어떤 일을 하고 있나
▲ 재산세과 신고계에서 일한다. 서울 영등포구 관내에서 발생하는 양도와 상속, 증여관련 세금에 대한 신고처리를 담당한다. 영등포 세무서 전체로는 9급 직원이 제법 되는데 재산세과에는 9급 직원이 나 혼자다. 막내다. 재산세과는 너도 나도 오고 싶어하는 곳이어서 경쟁이 치열하다. 여기로 발령 받아 너무 감사했다. 내가 서장이나 과장이라면 젊고 일 잘하는 친구를 데려갈텐데 그냥 열심히 하겠다는 말만 믿고 뽑아 줬다.
- 일에 대한 만족도는
▲ 100% 만족한다. 남편 공부 뒷바라지를 10년 넘게 했는데 사실 그건 내 일이 아니었다. 국세청 직원이 되고 나니 이건 내가 노력해서 내가 얻어낸 것이라서 너무 좋았다. 일이 많기는 하지만 나같은 평범한 사람에게 중요한 일을 시켜주니까 자랑스럽다. 세무공무원은 직급에 관계 없이 하는 일이 같다. 누가 더 익숙한가, 더 잘 하는가의 차이 정도만 있다. 선배들한테 묻고 책도 찾아보고 하면서 일을 배우고 있는데 어디에 가서도 배울 수 없는 일들이다. 세무서 밖에서는 이 일을 배울 수 없다. 게다가 돈을 받으면서 일을 배우지 않는가. 국세청은 정말 공부를 많이 시킨다. 그것만 따라가도 실력이 부쩍부쩍 는다. 좋은 조직이고 좋은 일이다. 돈 받으면서도 매일매일 발전하니까.
- 밖에서 본 국세청과 안에서 본 국세청은
▲ 솔직히 밖에서는 국세청에 대해 생각할 일이 별로 없었다. 이 일을 하면서 느낀 것은 정말 세무서에서 하는 일이 많다는 거다. 등기부본이라는 자료를 1인당 월 150개에서 200개 정도 처리하고, 양도소득세 신고서도 1인당 100개 정도 담당한다. 증여나 상속은 때에 따라 좀 다른데 10개에서 20개 정도 맡는다. 이런 일들이 루틴하게 돌아가고 그 외 체납정리, 연부연납신청 등도 수시로 처리한다.
- 9급 공무원이라는 직급에 대한 생각은
▲ 동료들이 농담삼아 당신은 7급으로 은퇴하기도 쉽지 않다고 말한다. 그게 현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세무서에서 하는 일은 9급이나 7급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일을 배우고 싶고, 일을 배우는 데에는 직급이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호봉제라 월급 차이도 크지 않다.
- 가족들의 반응은 어떤가
▲ 시아버님이 해주신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버님은 평생 종묘상을 하셨는데 본인이 장사하면서 겪어보니 세무서가 가장 두렵고 어려운 곳이었다며 무조건 민원인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말씀을 주셨다. 안 된다고만 하지 말고 되는 방법을 잘 설명해주라고, 또 말 한마디라도 친절하게 하라고 하셨다. 사실 아버님은 여자들의 사회생활에 대해 부정적이셨다. 나에게도 진심으로 축하하는데 1년이 걸렸다고 하실 정도였는데 지금은 가장 좋아하신다. 9급이지만 세무공무원이라고 지인이나 친지분들이 이것 저것 물어보시는데 아직은 별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 일하며 아이도 돌봐야 할 거 같은데
▲올해 고3이 된 아들이 하나 있다. 확실히 아이의 공부 효율성 면에서는 그 전보다 못한 것이 사실이다. 공무원 시험준비를 하면서부터 내가 뒷바라지 해 주는 것이 부족해졌다. 하지만 긍정적인 점도 많다. 특히 아이의 자율성이 강해졌다. 전에는 아이가 아침에 혼자서 일어나는 것도 버거워했는데 이제는 알아서 거의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한다. 훨씬 어른스러워 졌다. 아이도 나와 함께 시행착오를 겪으며 발전한 것 같다. 항상 고맙다.
- 업무적으로 어려운 부분은
▲ 컴퓨터를 잘 못한다. 지금도 휴대폰은 폴더폰을 쓴다. 그 때문에 같이 일하는 분들이 많이 고생했는데 지금은 그래도 많이 늘었다.
- 앞으로 해보고 싶은 부서는
▲ 첫 발령은 세무서 민원실이었다. 거기서 1년 정도 있다가 여기로 왔다. 신입 직원들은 첫 4년 동안 순환 근무를 한다. 나도 내년에 부서가 바뀌게 될 텐데 다음에는 개인납세나 법인세과에서 일해보고 싶다.
- 나중에 세무사로 개업할 생각인가
▲ 공부를 할 때에는 당연히 나중에 세무사 자격을 따서 개업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세무서에서 일하면서 생각이 좀 바뀌었다. 세무서에 오는 세무사들을 보면 너무 힘들어 보인다. 경쟁도 치열하고 의뢰인들에게도 많이 시달린다. 지금은 어떤 게 좋을지 고민중이다.
- 납세자에게 팁이 될만한 세무서 활용법은
▲ 신고할 때에는 서류를 잘 갖춰야 한다. 그냥 서류만 내지 말고 사연을 담아서 보내면 더 좋다. 가끔씩 눈에 띄는 신고서가 들어오는데, 이런 저런 사정으로 동거봉양을 했고 그래서 1세대1주택 비과세를 신청했다는 내용이다. 그런 스토리가 있으면 세무공무원들이 납세자들의 사정을 더 이해하기 쉽다. 또 세무사를 통해 신고를 하면서도 세무사 이름과 전화번호를 빼먹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사무장을 통하거나 하는 경우일텐데 명확하게 기입돼 있는지 체크하고 신고해야 한다.
- 본인과 같은 늦깎이 도전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 사실 나이가 들면 만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드는데 직장생활을 하면서 동료도 만나고 민원인도 만나면서 그 안에서 맺는 인간관계의 즐거움이 있다. 특히 우리 나이의 사람들은 평생 가족만 생각하고 살았는데, 일을 하면서 가족이 아닌 나를 생각하며 열심히 사는 것이 결국 가족들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주변에서 인생의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고 하시는 분도 있던데, 기회가 된다면 꼭 도전해보시라는 말, 그리고 포기하지 말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 공무원 시험 잘 보는 팁이 있다면
▲ 나같은 경우 하루에 조금씩이라도 5과목을 다 공부했다. 학원에서 괜찮은 선생님을 선택해서 실제 강의를 듣고 나중에 그 선생님의 인터넷 강의(인강)를 들으면 귀에 쏙쏙 들어온다. 무엇보다 꾸준함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