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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스人워치]노래 만들고 소설 쓰는 세무사 '장보원'

  • 2018.06.08(금) 18:19

수습세무사 때 세무사시험 강의로 억대 연봉
중2때 시작한 기타, 정식 음반만 2장 발매
역외탈세 조사 대행 경험 바탕으로 소설 출간

▲ 장보원 세무사가 사무실에서 기타를 잡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업무시간이 끝나면 사무실은 나름 멋들어진 연주실로 바뀐다. 사진 : 이명근 기자/qwe123@
 
장보원 세무사를 처음 알게 된 건 1년 전인 2017년 6월 무렵이다. 업무차 활성화하고 있던 페이스북에서 아는 세무사들의 지인을 파도타기처럼 친구 추가를 하다가 페친이 됐다. 
 
당시 기자는 납세자들에게 '절세 꿀팁'을 전해줄만한 인터뷰이를 물색하고 있었는데 장 세무사는 적임자였다. 세무사들 중에서도 세법 지식에 특히 해박하다는 지인의 소개까지 들은 터였고 한국세무사고시회에서 '연구'부회장을 역임하고 있다는 타이틀도 맘에 들었다.
 
보통 이 바닥(?) 전문가들은 SNS활동을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눈팅만 하는 게 일반적인데 장 세무사의 담벼락에는 세금얘기뿐만 아니라 사적인 내용들도 적잖이 올라와 있었다. 대외 활동이 활발하다는 것 또한 인터뷰 대상으로 합격점이었다. 섭외요청을 했을 때 응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기자는 지인에게 연락처를 묻지도 않고 페메(페이스북 메신저)로 일단 들이댔고 그의 대답은 'OK'였다. 여기까지는 예상적중했다. 세부연락을 위해 휴대전화번호도 받았는데 뒷번호가 '9999'. 뭔가 더욱 스페셜한 느낌이 더해졌다.
 
그런데 인터뷰 당일 사무실에 들어선 순간 생소한 풍경에 살짝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무사 장보원'이라는 명패가 있는 책상 앞에 예쁘게 열맞춰 서 있는 일렉기타가 무려 5대나 보였고, 금방이라도 저기 보이는 기타들을 연결해 연주할 수 있을 것 같은 기타앰프도 한켠에 자리잡고 있었다. 게다가 사무실 내부는 온통 화초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날 인터뷰는 예상보다 담백했다. 절세꿀팁은 세금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를 알려줘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그가 여지없이 깨줬다. 장 세무사는 오로지 절세꿀팁을 강요하는 기자에게 "어떤 세법으로 얼마의 세금을 줄일 수 있다는 것보다는 왜 세무사를 활용해야 하는지, 세무공무원은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납세자들에게 알려주고 싶다"며 새로운 유형의 결과물을 만들어줬다. 관련기사 : [절세꿀팁]세금이 궁금할 땐 물어라
 
1년 뒤. 당시 꿀팁에 집중하는 바람에 스쳐보내야 했던 장 세무사 사무실의 독특한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일이 생겼다. 장 세무사가 소설을 출간했다는 소식이다. 역외탈세 실화를 바탕으로 한 실감나는 소설이다. 맙소사! 세금으로 소설을 쓰다니.
 
나는 망설임 없이 '9999'로 끝나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세무사님 인터뷰 한 번 더 하시죠"
 
# 작곡가가 된 교회 오빠
 
다시 찾은 장보원 세무사 사무실에서 얻은 가장 크고 독특한 수확(?)은 두장의 CD였다. '장보원 프로젝트 첫번째 이야기'와 '장보원 프로젝트 두번째 이야기'라는 타이틀이 새겨져 있는 싱글앨범이었다. 모두 장 세무사가 직접 작곡하고 기타연주까지 한 곡이다. 소설을 썼다기에 찾아왔는데 음반도 냈었다니. 책상 앞 5대의 일렉기타의 존재이유를 퍼뜩 눈치챘다.
 
장 세무사는 중학교 2학년때 교회를 다니면서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 전형적인 교회오빠였다.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중퇴한 후에는 본격적으로 기타실력을 키웠는데, 검정고시를 준비했기 때문에 학교 다니는 친구들보다 시간이 많았던 그는 당시 서울에서 기타 좀 친다는 사람들과 어울려 밴드활동을 했다. 
 
곡을 쓰기 시작한 것도 그 때부터다. 장 세무사가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만든 자작곡만 17곡(연주곡 3곡 포함)에 달할 정도. 장 세무사의 기타실력도 연주곡을 만들고 소화할만큼 수준급이다. 장보원 세무사가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창립 기념일에 연주하는 모습(YouTube영상)
 
'장보원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음반을 내기 시작한 것은 세무사 일을 시작한 이후의 일이다. 장보원 프로젝트1에 수록된 '소나기'는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했고, 에니메이션 작가가 만든 영상을 활용한 뮤직비디오도 만들었다. 
 
장 세무사는 프로젝트2의 'Save the 80th'라는 곡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장 세무사는 "2015년 메르스 전염병이 돌 때 80번째 환자의 죽음을 추모하며 만든 곡인데 당시 지인에게서 사연을 듣고 충격이 컸다. 혈액암을 앓고 있던 환자였는데 강제 격리수용되면서 암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사망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마지막 메르스환자의 사망보다 메르스의 종식에만 주목했다"고 작곡배경을 설명했다. 'Save the 80th' YouTube영상
 
▲ 장보원 세무사의 두번째 싱글앨범
 
# 억대 연봉의 '일타' 학원강사 
 
마치 본업처럼 수준 높은 음악실력을 갖추고 있지만, 장 세무사는 사실 동료 세무사들이 '천재 세무사'라고 소개할 정도로 세법지식의 수준이 높다. 
 
세무사 시험도 단기간에 합격했는데, 서울시립대 세무학과에 입학한 후 2년동안 학사경고까지 받아가며 베짱이처럼 놀았지만 군제대 후 공부를 시작해 3학년 때 1차시험 합격, 4학년 때 내리 2차시험까지 합격했다. 수습세무사 생활을 하면서 세무사 시험 유명강사의 책을 대필해 주다가 시작한 학원강사 일이 또 한 번 그의 인생을 흔들었다.
 
강의능력을 인정 받아 당시 인기 있는 세무사시험 학원들의 세법학 강의를 독점하다시피 한 것. 장 세무사는 강의를 시작한 첫 해에 세무사 최연소 합격자를 배출했고, 다음해에는 최연소 합격자와 수석 합격자를 동시에 배출하면서 수험생들 사이에서 '장보원 선생'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햇병아리 세무사였던 그는 학원강사로만 억대 연봉을 받았고, 수습세무사때 촬영한 동영상 강의는 국세청에서 직원 교육용으로 사용할 정도였다.
 
# 소설 '역외탈세'를 쓰다
 
잘 나가던 젊은 스타강사는 어느날 갑자기 모든 것을 던지고 나왔다. 세법 수강생을 싹쓸이 하다시피 하며 강사업계에서 미운털이 박힌 탓도 있지만 세무사로서 전문성을 더 높이고 싶은 욕구가 강했다. 그는 세무대학원에서 석사공부를 했고, 대학원 졸업 후 매출 1000억원 규모의 수출회사 내부감사직이라는 매력적인 일을 맡게 됐다. 
 
그런데 장 세무사가 합류한 후 이 회사에 문제가 생겼다. 국세청으로부터 역외탈세 혐의로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받고 결국 문을 닫기에 이른 것이다. 장 세무사는 감사업무에 이어 세무조사 조력, 회생절차까지 봐 주면서 맘고생을 많이 했는데 특이하게도 그는 시련의 시절을 소설로 풀어냈다. 지난 4월에 펴낸 소설 '역외탈세'는 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장태란 세무사'는 여성으로 표현돼 있지만 장 세무사 본인의 모습을 그린 셈이다. 
 
장 세무사는 이미 세무사 초년병 시절 '절세가 아름답다'라는 세무사들의 삶에 대한 에세이를 내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에 소설로 두번째 창작물을 써내면서 음반 저작권협회에 이어 문인협회에 가입할 수 있는 자격도 갖췄다. 각주가 달린 딱딱한 세법책를 내는 세무사들은 많지만 순수 창작물을 책으로 내는 세무사들은 드물다.
 
▲ 소설 역외탈세 표지
 
# 어쨋거나 결론은 '세무사'
 
다재다능하지만 인간 장보원이 가장 빛날 때는 '세무사'일 때다. 장 세무사는 특히 개인세무사로서는 흔치 않게 대기업 세무조정 업무까지 맡아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
 
일반적으로 대기업 세무조정은 회계법인이나 세무법인에서 주로 담당하고 기업 재무팀에서도 개인세무사를 애초에 용역 발주대상에서 배제하기 때문에 개인세무사가 대기업 세무조정을 담당하기는 쉽지 않다.
 
장 세무사는 "처음 수습세무사 시절에 세무법인에 취업해서 대기업 세무조정만 배웠었는데 운 좋게 좋은 회사를 다니면서 잘 배운 것이 지금까지 자산으로 남아 있는 것 같다"며 겸손을 표시했지만, 사실 현재 장 세무사가 세무조정업무를 해주고 있는 모 대기업의 경우 처음 장 세무사를 추천받고는 재무팀 임원들이 모두 참여하는 압박면접까지 진행한 뒤에야 일을 맡겼다.
 
장 세무사는 궁극적으로는 납세자가 세금에 대해 쉽게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 세무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장 세무사는 "세무사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아직도 좋지는 않다. 하지만 18년 일해 오면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은 느낀다. 의뢰인들이 세무사를 그냥 주치의처럼 큰 비용 들이지 않고 내 재산을 지켜주는 사람 정도로만 인식해도 세무사 업계가 좋아질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 세금 문제를 쉽게 전달해 주는 책도 계속해서 쓰겠다는 각오도 다졌다.
 
장보원 프로젝트 세번째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도 남겼다. 장 세무사는 "메르스 사고로 돌아가신 분처럼 뭔가 감정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겪을 때 창작에 대한 욕구가 생긴다. 엄청나게 기쁜 일은 잘 생기지 않으니 아마도 슬픈 일일텐데 그런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기도 하다. 물론 그런일이 있다면 또 기타를 들고 악보를 찍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사진 : 이명근 기자/qwe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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