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모비스가 과세당국과의 2100억원대의 세금 소송에서 일단 기선을 제압했다. 옛 계열사 현대오토넷과 흡수합병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송사다. 국세청이 즉각 항소해 장기전에 돌입한 상태지만 현대모비스로서는 치열한 법리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부장판사 윤경아)는 최근 현대모비스가 국세청을 상대로 제기한 법인세 부과처분 취소소송(가액 20억원)에서 현대모비스에 승소판결을 내렸다. 상장법인간의 합병시 합병대가와 승계자산의 차익을 감가상각이 되는 세법상 영업권으로 보고 과세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현대모비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 합병 뒤 날아온 2100억대 세금
현대모비스가 2000억원이 넘는 거액의 세금을 떠안게 된 것은 2009년 6월 자동차 전장부품 생산 계열사 현대오토넷을 흡수합병한 데서 비롯됐다.
당시 합병비율은 1대 0.42주(합병가액 액면 5000원당 각각 8만1591원·3만4330원)다. 현대오토넷 주주에게는 합병대가로 현대모비스 신주 975만2856주(1조518억원·합병기일 주식시세 주당 11만500원 기준·자기주식 259억원 차감)을 쥐어줬고, 현대모비스는 현대오토넷의 순자산 3980억원을 승계했다.
세금 이슈는 다음 단계에서 불거졌다. 즉, 현대모비스는 이 합병대가와 승계 순자산의 차액인 6538억원을 기업회계기준에 맞춰 영업권으로 회계처리했는데, 이 영업권이 문제가 됐다.
법인세법에서는 영업권을 자산으로 평가한다. 합병 첫 해에 세금을 낸 후 5년간 나눠 감가상각을 하고 추후 환급받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모비스는 회계처리만 영업권으로 했을 뿐 이익으로 잡아 법인세를 내지도 않고, 당연히 감가상각 처리도 하지 않았다.
국세청이 가만있지 않았다. 양사 합병 뒤 세무조사를 실시, 영업권으로 처리된 6538억원을 현대모비스의 이익으로 보고 2015년 3월 무려 2124억원에 달하는 법인세를 때렸다. 소송가액은 20억원이지만 실제 걸려 있는 세금이 2100억원대인 대형 송사다.
# “영업권 처리했지만, 영업권 아냐”
하루아침에 수천억원의 세금을 두들겨 맞게 된 현대모비스는 반발했다. 현대오토넷과의 합병차익은 세법에서 과세대상으로 정하는 영업권이 아니므로 부과된 법인세를 취소해야 한다고 맞섰다.
세법에서도 영업권은 가치평가를 통해 재산적 가치를 인정받아야만 과세대상이 될 수 있는데, 현대오토넷과의 합병차익은 단순하게 회계처리를 위해 자본시장법에 따라 합병비율을 산정하면서 발생한 대차차액을 회계상 영업권으로 조정한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이었다.
또 현대모비스는 애초부터 전장부품 및 부품서비스 사업에서 영업이익을 내고 있었던 반면 현대오토넷은 영업이익률이 감소 추세였고, 합병 직전인 2008년에는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에 동종업계의 통상수익보다 높은 초과수익을 창출할만한 사업상 가치가 있는 합병도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 “현대오토넷 인수로 이득 보지 않았냐”
국세청도 발끈했다. 현대오토넷을 흡수한 현대모비스가 충분한 합병가치를 누렸다는 주장이다.
현대오토넷은 2000년 2월 설립 이후 2007년까지 매출과 순익이 지속해서 증가했다. 합병직전인 2008년에는 512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지만 이는 환율급등과 국제금융위기의 영향을 받은 탓이다. 오히려 매출은 1조160억원으로 증가했다. 합병 직적 이익잉여금도 2303억원에 달했다.
국세청은 특히 2006년부터 시작한 현대오토넷의 공장신설 등 대규모 투자가 2008년말에 끝났고, 2008년말 금융불안에 대비해 합병직전인 2009년 2월에 CP 1000억원을 발행한 사실도 합병의 사업상 가치를 부여한다고 봤다.
국세청은 또 현대모비스가 공정거래법상 대기업집단인 현대자동차 소속 계열사이자 현대차와 상호 특수관계인에 해당하기 때문에 합병 이후 주주가치와 매출 및 이익증대 등 시장지배력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초과수익력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 “회계처리 문제일뿐 과세대상 아냐”
국세청의 과세 처분에 현대모비스는 먼저 감사원 심사청구를 했지만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감사원이 2017년 9월 기각 결정을 내리자 같은 해 12월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 본격적인 소송전에 돌입했다.
1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현대모비스는 기업의 회계준칙에 따라 회계장부에 영업권으로 계상했을 뿐 현대오토넷의 영업상 비밀 등 초과수익력이 있는 무형의 재산적 가치를 인정해서 대가를 지급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현대모비스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가액 산출 역시 당시 공정한 합병비율을 산정하기 위한 것일 뿐이어서 세법상 영업권의 자산인정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양사 합병이 당시 현대차그룹 계열사간 그룹 구조전환, 즉 통합에 따른 원가절감 등을 도모하기 위해 이뤄진 것으로 합병과정에서 지적재산권 등 영업권에 대한 평가가 이뤄지지 않아 세법상 과세대상인 자산으로도 인정하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