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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①집단지성을 혁신아이콘으로

  • 2015.05.19(화) 09:01

비즈니스워치 창간 2주년 특별기획 <좋은 기업> [함께가자!]
롯데 유통망 앞세워 혁신기업 지원, 지역사회 손잡고 세계로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주력산업의 경쟁력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와 주요 대기업들이 새로운 시도에 나서고 있다. 주요 대기업들은 지역별로 나서 창업은 물론 기존 산업의 활성화를 위한 파트너 역할을 하고 있다. 대기업 들이 가진 노하우 등을 접목, 새로운 '혁신'을 통해 성장기반을 만들자는 생각에서다. 새로운 길을 가고 있는 전국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찾아 현재 현황과 계획 등을 들어본다. [편집자]

 

둥그런 탁자를 사이에 두고 청바지와 라운드티 차림의 30대 초중반 남녀 5명이 모여 앉았다. 한쪽 벽면엔 이들이 구상 중인 제품의 프레젠테이션 화면이 떠있다.

등을 뒤로 살짝 기댄 채 다리를 꼬고 앉은 남성이 몸을 일으키자 주위의 시선이 모아졌다. 그와 동시에 잠시 느슨해졌던 회의 분위기에도 긴장감이 흘렀다. 한쪽 손에 펜을 든 그는 무언가를 설명했고, 양손을 깍지 낀 채 턱을 괴고 골똘히 생각에 잠긴 한 참석자는 간혹 고개를 들어 상대방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말을 쏟아낼 때는 저절로 목소리가 커졌다. 참석자 모두 영어로 대화를 나눴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회의장면을 떠오르게 한 이들은 부산의 신생기업인 '루이' 멤버들이다. 부산 해운대구 우동의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이하 부산혁신센터)에 자리잡고 있다.

 

▲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에 입주한 루이의 사무실. 루이는 신발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대중들의 평가를 거쳐 상품화하고 있다.


◇ 부산의 실리콘밸리 꿈꾸는 이들

"웹사이트 개편시기라 웹개발과 기획 관련 미팅이 많습니다."

강희승(35) 대표는 1시간 넘게 진행된 회의에서 "어떻게 하면 새로운 유저들을 많이 유치할지 고민했다"고 전했다. 루이는 사양길을 걷는 부산지역 신발산업에 부흥의 꿈을 불어넣고 있는 신생기업이다. 거대한 디자이너 풀(Pool)을 구축한 뒤 여기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신발제조업체와 연결시키는 역할을 한다. 미국 유학을 다녀온 부산 출신의 강 대표가 3년전 창업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1일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 축사에서 "이런 게 혁신 기법"이라며 소개한 회사가 루이다.

예를 들어 루이가 탤런트 '송승헌'이라는 특정 주제를 던지면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생각이 담긴 디자인을 루이 홈페이지에 올리고, 디자이너와 소비자들이 참여하는 투표를 통해 상품화에 적합한 모델을 선정한다. 이 과정을 거쳐 신발이 생산되면 순매출의 10%를 디자이너가 가져간다. 집단지성을 활용해 혁신상품을 내놓는 것이다.

 

해외에선 이러한 작업을 '크라우드소싱(Crowdsourcing)'이라고 한다. 대중들의 직접 참여로 상품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국내 신발업계에선 루이가 처음 도입했다. 부속품처럼 특정기업에 속해있던 디자이너는 상업화의 압박에서 벗어나 자신의 독특한 디자인을 외부에 선보일 수 있고, 신발제조업체는 그때그때 유행하는 디자인을 공급받으면서도 생산에 주력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강 대표는 "크라우드소싱을 활용하면 특정 콘셉트의 신발에 어떤 디자인을 입히면 시장 반응이 좋다는 것을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다"며 "이 때문에 나이키와 아디다스에선 상품기획부터 생산까지 최소 18개월이 걸리는 일도 우리는 6개월이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 법률·금융지원부터 판로확대까지  

루이는 올해 3월 부산혁신센터에 둥지를 틀었다. 혁신기업 지원대상을 물색하던 롯데그룹이 루이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입주를 제안했다.  

부산시와 롯데그룹이 설립한 부산혁신센터는 현재 센텀그린타워 3~4층에서 루이와 비슷한 혁신기업 11개사의 인큐베이팅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에 입주하면 6개월간 무상으로 사무공간을 사용할 수 있고, 법률·금융·특허 등 신생기업에 필요한 여러 지원혜택을 받을 수 있다. 혁신센터 입주기업이라는 후광효과는 덤이다.

무엇보다 큰 장점은 판로확대가 쉽다는 점이다. 부산혁신센터는 내부에 방송 스튜디오를 꾸며 롯데홈쇼핑을 통한 실시간 판매가 가능토록 했다. 3월 첫 방송에선 부산지역 식품회사인 덕화푸드의 '장석준 명란'을 판매해 3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지난달 초에는 지역 특산물인 '대저 토마토'를 45분간 방송해 4억3000만원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루이가 만든 신발도 롯데아이몰 등 롯데그룹의 유통망을 통해 전국에 판매 중이다. 오는 9월 출시 예정인 SBS의 '런닝맨' 신발은 100만 켤레, 약 500억원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고 혁신센터 관계자는 귀띔했다.

조홍근 부산혁신센터장은 "아무리 제조분야가 강해도 유통채널에 싣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라며 "롯데의 유통망과 노하우를 활용하면 국내는 물론 해외까지 뻗어나갈 수 있다는 게 우리 센터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 부산혁신센터는 입주기업들의 근거지가 될 수 있는 사무공간뿐 아니라 법률·금융지원, 판매까지 가능하도록 내부 공간을 꾸몄다.


◇ 부산 혁신기업의 모태역할

부산혁신센터에는 제품개발과 판로확대, 법률상담 등을 위해 이곳을 찾은 외부방문객도 눈에 띄었다. 최명환 부산혁신센터 기획총괄팀장은 "지금은 하루 평균 20여명이 찾고 있지만, 올해 안에 일방문객 100여명에 달하는 부산지역의 혁신거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혁신센터는 부산지역 신진디자이너 10여명이 모인 패션협동조합과 손잡고 크라우드소싱 방식의 사업모델을 추진하는 등 지역사회와 협업을 강화하고 있다. 오는 6월 3D프린터, CNC(Computer Numerical Control·컴퓨터를 이용한 공작기계) 등의 장비를 갖춘 시제품 개발공간인 '펩-카페(Fab-Cafe)'도 연다. 입주기업뿐 아니라 외부인에게도 열려있는 공간이다. 젊은 영화인을 위한 영상편집실과 희귀 예술영화 2000여편을 제공하는 별도의 공간도 갖추고 있다.

이 곳에서 만난 대학생 윤 모(27)씨는 "혼잡스러운 학교 작업실 대신해 선배가 있는 이곳을 종종 찾는다"며 "필요한 도구도 있고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라 마음에 든다"고 했다.

부산혁신센터는 5년간 총 2300억원을 조성해 부산지역 벤처중소기업, 영상·영화산업 진흥 등에 사용할 예정이다. 전국 10개 혁신센터 가운데 가장 큰 지원금액이다. 조 센터장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중소기업이 스타 기업으로 발전하는데 도움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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