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의 난'으로 롯데그룹이 소용돌이 속에 휘말린 가운데 논란의 핵심 주인공인 신격호 총괄회장, 신동주 롯데홀딩스 전 부회장, 신영자 롯데재단 이사장의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주변인들은 행여나 불붙은 논란이 퍼질까봐 쉬쉬하며 피했다.
29일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위치한 신동주 전 부회장의 집 앞은 한산했다. 신 전 부회장의 집은 주한 남아공 대사관저, 필리핀 대사관저와 5분 거리의 고급주택가에 위치해 있다. 성북동 동네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노른자 터다. 이 집은 신 전 부회장이 1997년 사들인 것으로 한때 누나인 신영자 이사장이 머물렀던 곳으로 알려져있다.
옆집을 사이에 두고 높은 벽이 가로막고 있어 자택 내부는 밖에서 볼 수 없었다. 대문에는 신동주 전 부회장의 명패도 달려있지 않았다. 초인종을 여러차례 눌렀지만 인터폰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흘러 나오지 않았다. 신 전 부회장은 이날 일본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동주 전 부회장 명의로 돼있는 서울 성북구 성북동 소재 한 주택. |
집 앞에 세워진 차량은 한동안 세차를 하지 않은 듯 흙먼지와 빗물이 엉겨붙어 있었다. 다만 음식 쓰레기가 담긴 1리터짜리 쓰레기 봉투와 생선냄새가 밴 아이스박스가 대문 앞에 놓여 있어 최근 집 안에 사람이 머물렀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마침 파, 생수, 과자 등 식료품을 배달하기 위해 이 집을 찾은 인근 슈퍼마켓 직원은 초인종을 눌러도 대답이 없자 오토바이를 타고 되돌아갔다. 그는 "평소에는 여기서 일하는 아주머니가 슈퍼마켓으로 직접 물건을 사 가는데 오늘 아침엔 배달 주문이 들어와 의아했다"고 말했다.
이날 주택 인근에서 만난 동네주민들과 이 지역 일대를 30분마다 순찰하는 경찰들도 신 전 부회장의 거취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답했다.기자가 머문 2시간여 동안 집 앞을 지나간 행인은 경찰을 포함해 아홉 명에 불과했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집무실이 있는 서울 중구 을지로 롯데호텔도 하루종일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직원들은 신격호라는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도 꺼렸다. 롯데호텔에서 마주친 한 직원은 "롯데그룹에 대해 말들이 많은 상황에서 우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며 자리를 피했다.
신 총괄회장의 이름으로 돼있는 서울 종로구 평창동 L아파트로 향했다. 이 곳에 근무하는 경비원은 "여기에 그 분(신 총괄회장)이 사신다고 돼있지만 드나드는 걸 본 적이 없다"며 "얼마 전부터 그 집에 새로운 입주자가 리모델링을 하고 들어와 살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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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총괄회장의 장녀 신영자 롯데재단 이사장도 두문불출하기는 마찬가지. 신 이사장은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 C아파트에 거주한다. 바로 앞에 위치한 한강 물줄기가 가장 잘 보이는 로열층에 있다. 아파트 로비에는 신 이사장의 재산세 고지서가 납입기한이 불과 이틀 남은 채 그대로 놓여 있었다.
이 곳 경비업체 직원은 "이 아파트 단지에서 인터폰 연결을 끊은 집이 두세곳 정도 있다"며 "상주하는 직원들도 (신 이사장을) 1년에 한두번 정도 볼 뿐이다"라고 전했다.
현재 신 이사장의 자택은 외부와 인터폰 연결을 차단해 놓은 상태다.
아파트 인근의 한 상인은 "신 이사장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며 "아마 이곳은 거주지로 등록만 해 놓고 실제로 사는 데는 따로 있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이어 "동네에서는 뵌 적이 없는 분이라 아는 것도 없지만, 이렇게 난리가 났는데 알고 있어도 말할 사람이 있겠느냐"며 손사래를 쳤다.
롯데재단 측은 "신 이사장은 평소 이메일로 업무를 전달받고 있다"며 "신 이사장이 사무실에 출근했는지 알 수 있는 직원은 없다"고 말했다.
롯데그룹의 지배구조가 격랑 속으로 빠져들었지만 그 주인공들은 외부와 접촉을 꺼린 채 하루종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