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으로 온 나라가 뒤숭숭하다. 마음 놓고 밖에 나가지도 못한다. 모여서 식사하는 것도 부담스럽다. 마치 중세 유럽 흑사병을 연상케한다. 그 탓에 그나마 회복 조짐을 보이던 경제가 다시 움츠러들고 있다. 특히 국민들의 생활과 직결된 유통산업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은 유통산업의 모습을 완전히 바꿔놓고 있다. 비즈니스워치는 코로나19 확산이 불러온 국내 유통산업의 변화를 각 부문별로 짚어보고 향후 산업 전체에 미칠 영향 등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편집자]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가장 큰 피해자는 대형마트다. 대형마트는 오프라인 유통업의 대명사다. 소비자들이 매장을 찾지 않으면 매출이 발생하지 않는 구조다. 대형마트의 위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온라인 쇼핑으로 소비자들을 빼앗긴 탓이다. 이 때문에 작년 국내 주요 대형마트들은 심각한 실적 부진에 시달렸다.
가뜩이나 어려운 마당에 또 다른 대형 악재가 터졌다. 코로나19다. 과거 국내 유통업계를 초토화시켰던 메르스보다 더 강력하다. 코로나19 탓에 대형마트를 찾는 소비자들이 더욱 줄었다. 엎친 데 덮쳤다. 문제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인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대형마트의 몰락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 고객이 떠나버린 대형마트
대형마트 업계는 지난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고객들이 매장을 찾기보다는 온라인 쇼핑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대형마트는 오랜 기간 국내 유통업계 핵심으로 자리 잡아왔다. 높은 구매력과 고도화된 유통시스템을 바탕으로 제품을 대량으로 공급, 가격적인 측면에서 경쟁력을 확보했다. 여기에 쾌적한 매장에서 다양한 상품을 한눈에 보고 직접 고를 수 있다는 점이 소비자들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 같았던 대형마트의 전성기는 생각보다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정부와 정치권의 규제가 그 시작이었다. 전통시장을 살리겠다는 명분하에 영업시간은 물론 월 2회 의무휴업이라는 족쇄를 차기 시작하면서 대형마트의 시련이 시작됐다. 대형마트 이용이 불편해진 소비자들은 온라인으로 눈을 돌렸다. 온라인 업체들은 대형마트들이 갖지 못한 약점들을 파고들며 시장의 파이를 키웠다.
그 결과 온라인 시장은 급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반면 오프라인의 대명사였던 대형마트는 크게 위축되면서 국내 유통산업의 중심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이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작년 대형마트의 매출은 전년대비 5.1% 감소했다. 반면 온라인 유통업체 매출은 전년대비 14.2% 증가했다.
소비자들의 온라인 쏠림 현상은 대형마트들의 실적 악화로 이어졌다. 이마트의 경우 작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분기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연간으로도 이마트의 작년 영업이익은 전년대비 67.4% 줄어든 1507억원에 그쳤다. 롯데마트도 마찬가지다. 롯데마트는 250억원의 영업손실을 입었다. 결국 롯데쇼핑은 구조조정에 돌입하기로 했다. 이마트도 비수익 사업 및 매장 정리를 결정했다.
◇ 안 그래도 어려운데
코너에 몰린 대형마트에게 최근 더 큰 악재가 닥쳤다. 코로나19 확산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소비자들은 더욱더 매장을 찾지 않고 있다. 사람들이 모이는 행사나 집회도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전염성이 강한 만큼 사람 간 접촉을 피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고객이 줄어 고민인 대형마트를 찾는 고객들은 더욱 줄어들고 있다. 대신 온라인 주문을 통한 장보기 비중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 확진자들의 동선 중 대형마트가 포함되면서 임시휴업에 돌입한 매장들도 늘고 있다. 업계에선 이마트 개별 매장의 하루 매출을 3억~5억원가량으로 추산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휴업으로 이마트만 따져도 한 달 만에 약 40억원의 매출 감소를 감내해야 한다. 롯데마트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업계에서는 평소와 비교해 매장 방문 고객이 30% 이상 감소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마저도 보수적인 수치다.
그나마 최근 생필품과 마스크 등을 사려는 고객들이 몰리면서 잠깐 매출이 늘긴 했지만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분석이 많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코로나 사태까지 겹치면서 내부적으로 비상이 걸린 상황"이라며 "생필품 등에 대한 수요로 잠시 매출이 증가했지만 대부분 온라인몰 배송을 통한 장 보기를 하고 있어 온라인 쪽으로 물량을 돌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문제는 코로나19 확산이 단기간 내에 진정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는 점이다. 실제로 현재 각 지역별로 확진자가 계속 늘고 있다. 이는 곧 대형마트들의 올해 1분기 실적에도 큰 타격을 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5년 메르스 발생 직후 대형마트의 매출은 전년대비 10% 하락했다. 이후 2~3개월간 6%가량 감소하다 간신히 회복세로 접어들었다. 사스 때도 6개월간 고전했었다.
◇ 안간힘은 써보지만
상황이 이렇자 대형마트들도 특단의 대책 마련에 나섰다. 우선 대형마트들의 가장 큰 장점인 가격 경쟁력을 앞세웠다. 대형마트들은 최근 생필품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할인행사에 돌입했다. 최대 40%가량 할인된 가격에 생필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온라인으로 발길을 돌린 소비자들을 매장으로 불러 모으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이 전략은 일정 부분 성공을 거두고 있다. 소비자들이 온라인으로 몰리면서 배송이 늦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대형마트에는 고객들의 발길이 끊어지면서 상대적으로 상품 구입에 여유가 있다. 이에 따라 일부 소비자들이 대형마트로 몰리면서 대형마트에서는 생필품 사재기로 물건이 동이 나는 경우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대형마트들의 이 전략은 '언 발에 오줌 누기'일뿐이라는 지적이 많다. 코로나19는 사람이 많은 곳에서 부지불식간에 전염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대형마트들의 생필품 할인 행사는 일시적으로 고객들을 불러 모을 수는 있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분석이 많다.
대형마트들도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다. 이에 따라 배송 인력 강화 등을 통해 이번 사태에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한계가 있다. 대형마트의 경우 현행법상 휴일에는 배송을 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일시적으로 대형마트에 대한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상황이 무척 좋지 않다"며 "사태가 장기화된다면 그 후폭풍을 감당할 수가 있을지 걱정"이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