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여파로 국내 수산물 도매가격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소비 위축에다 수출 판로마저 막히면서 공급과잉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최근에는 국민 횟감으로 인기가 높은 광어 가격이 폭락했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에 따르면 지난달 제주산 광어의 평균 산지 가격은 1㎏당 7766원으로 2008년 12월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정작 횟집에선 광어회 가격이 그대로입니다. 그렇다면 횟집이 싼값에 횟감을 가져와 계속 기존 가격으로 팔면서 폭리를 취하고 있는 것일까요? 물론 바가지를 썼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 횟집은 그렇지 않습니다. 코로나19로 손님의 발길이 뜸한 상황에서 어설픈 장삿속으로 단골을 놓칠 순 없는 일입니다.
이런 오해는 복잡한 수산물 유통과정에서 비롯됩니다. 실제로 횟감의 산지 출하가격은 횟집의 최종 소매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습니다.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이 워낙 크기 때문입니다.
수산물은 생산자에서 산지 위판장을 거쳐 소비지 도매시장(중도매인)→도매상→소매상→소비자로 이어지는 다단계의 유통 경로를 거칩니다. 이런 6단계 유통 경로를 통해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구조를 '계통출하'라고 부릅니다.
계통출하 구조에선 각 단계마다 마진 즉 수수료가 붙습니다. 수산물은 신선도를 유지가 중요한 만큼 수수료도 높은 편입니다. 특히 생물의 경우 수조와 전용 트럭, 산소 공급장치 등 각종 장비에 비용이 들어갑니다. 냉장이나 냉동 유통 역시 관련 장비를 운용하기 위한 비용이 들죠.
지난 2018년 해양수산부가 4개 대중성 품목의 최종 소비자가격에서 유통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을 조사했는데 명태는 66.3%, 고등어는 56.7%, 갈치는 44.7%, 오징어는 45.9%에 달했습니다. 평균 51.8%인데 소비자가격의 절반 이상이 유통 과정에서 붙는 수수료인 셈입니다.
가령 소비자가격이 1만원짜리인 수산물을 소비할 경우 유통 비용이 5180원이나 됩니다. 단계별로 살펴보면 산지에서 830원, 도매 단계에서 1400원, 소매 단계에서 2950원의 유통 비용이 발생합니다. 소매 단계 즉 횟집에서 유통 비용이 가장 높은 이유는 수조와 냉장장치 등 수산물의 신선도 유지를 위한 비용을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광어처럼 활어 상태로 유통되는 수산물은 유통 비용이 더 들어갑니다. 수산물업계에 따르면 광어의 유통비 비중은 최소 60%를 웃돈다고 합니다. 게다가 최근처럼 수요가 적어 공급 과잉 상태가 되면 물류에 대한 가성비는 더 떨어집니다. 그러다 보니 산지에서 출하가격이 떨어지더라도 최종적인 소비 단계에서 가격 하락 폭은 그보다는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산지 가격이 소비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불만은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많았습니다. 유통 단계를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산물 전문가들은 유통 단계를 축소하면 경쟁이 줄면서 오히려 가격에 더 많은 거품이 낄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기존 유통 단계가 바다에서 소비자의 식탁에 이르는 그나마 합리적인 조합이라는 설명입니다.
실제로 생산자의 바로 다음 단계인 산지위판장은 수산물 생산자단체와 생산자가 수산물을 도매로 판매하기 위해 수산업협동조합법 제10조에 따라 개설된 법정단계입니다. 경매를 통해 수산물 도매가격을 정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다음 단계인 소비지 도매시장의 중도매인들은 수산물의 소유권을 넘겨받은 뒤 전국 각지 도매시장으로 이동시키는 기능을 합니다. 노량진 수산시장과 같은 대형 도매시장이 소비지 도매시장입니다.
여기서 경매를 통해 도매상에 수산물을 공급합니다. 이 단계에서 곧바로 수산물을 매입하는 소매상도 있지만 어지간한 대규모 소매상이 아니면 경매에 끼기 힘듭니다. 이어 도매상이 각 소매상에 품목별·물량별로 수산물을 나눠 공급하는 구조입니다.
수산물 전문가들은 이러한 6단계의 계통출하 방식을 통해 각 단계에서 경매를 통해 최저가 탐색 기능이 작동되고, 덕분에 같은 품목이라도 다양한 소비자가격이 형성되면서 유통 효율이 올라간다고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대형마트 등에서 이벤트 등을 통해 판매하는 저가 수산물은 어떻게 유통되는 것일까요? 최근 이마트는 살아있는 러시아산 대게를 특판으로 판매해 단기간에 모두 완판시킨 바 있습니다. 이마트의 연간 평균 대게 판매량은 25톤 수준인데 이보다 많은 30톤의 대게가 순식간에 동이 났습니다.
영덕과 울진, 구룡포 등에서 열렸던 대게 축제들이 코로나19로 취소되면서 수입 대게 물량이 쌓였는데 이마트가 한 번에 팔아치운 겁니다. 보통 대형마트들은 소비지 도매시장 단계에서 물건을 매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특판의 경우 산지위판인 단계에서 곧바로 수산물을 대거 매입하는 방법을 씁니다.
이마트와 같은 대형소매상이기에 가능한 방법으로 일상적으로 작동하는 유통 구조는 아닌 셈입니다. 대형마트의 특판 가격을 내세워 횟집에 더 싼 가격을 요구하긴 어려운 구조라는 겁니다.
한 수산물 유통업계 관계자는 "수산물은 유통 과정에 들어가는 비용이 큰 편이지만 신선도를 유지하려면 함부로 줄이기는 어렵다"면서 "수산물의 유통 구조를 바꾸는 건 수많은 종사자들의 일자리도 걸려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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