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食스토리]는 평소 우리가 먹고 마시는 다양한 음식들과 제품, 약(藥) 등의 뒷이야기들을 들려드리는 코너입니다. 음식과 제품이 탄생하게된 배경부터 모르고 지나쳤던 먹는 것과 관련된 모든 스토리들을 풀어냅니다. 읽다보면 어느 새 음식과 식품 스토리텔러가 돼있으실 겁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편집자]
여름이면 한 번쯤 아이스크림을 먹고 식중독에 걸렸다는 뉴스를 보게 됩니다. 저도 고등학교 시절 아이스크림을 한 번 잘못 먹었다가 호되게 당한 적이 있는데요. 기억을 더듬어 보면 상한 우유를 먹었을 때와 비슷한 증상이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배가 꾸룩거렸고, 화장실을 'PC방 다니듯' 드나들었습니다. 비처럼 흐르는 식은 땀은 덤이었죠.
당시 저는 유통기한이 지난 아이스크림을 먹어서 배가 아팠다고 생각했습니다. 배가 나은 후에는 아이스크림의 유통기한을 찾으려 애썼고요. 하지만 어떤 아이스크림에도 유통기한이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선명하게 인쇄된 제조일자만이 저를 반겼죠. 결국 저는 한동안 아이스크림을 믿고 먹지 못했고 한참 후에야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15년 가까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요. 아직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아이스크림은 여전히 유통기한이 없는 식품입니다. 보관 과정에서 철저하게 냉동 상태만 유지된다면, 100년이 지난 제품을 먹어도 됩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해 "품질·안전 검사 결과 안전에 문제가 없어 유통기한을 설정할 필요가 없다"며 "냉동식품은 보관 온도를 준수한다면 부패하지 않는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이론'입니다. 폴라포와 같은 빙과류를 제외하면 아이스크림은 대부분 우유로 만듭니다. 제조 과정에 살균을 거치기는 하지만, 유익균까지 모두 제거하는 멸균을 하지 않는 제품이 많습니다. 얼려 두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미생물이 번식할 수 있는 환경입니다. 따라서 녹은 아이스크림이 방치된다면 상한 우유와 똑같은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각국 정부가 아이스크림 유통기한을 정하는 방식도 사뭇 다릅니다. 미국과 EU는 아이스크림에 1년 내외의 유통기한을 정합니다. 소규모 업자가 제조하는 수제 아이스크림 유통기한은 최대 8개월 수준으로 더 빡빡하죠. 국내에서도 비슷한 논쟁이 종종 벌어집니다. 19대, 20대 국회에서 아이스크림에 유통기한을 정하자는 법안이 발의된 바 있습니다.
무엇이 옳은 주장일까요. 빙과업계에서는 국내 한정으로 유통기한을 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타국에 비해 냉동 유통망이 잘 갖춰져 있어서입니다. 개별 포장 제품이 다수라 품질 관리도 수월하고요. 다만 소비자의 심적 장벽을 고려해 '실질적 유통기한'은 두고 있습니다. 생산량을 조절해 대부분 제품이 1년 내 소비되도록 유도하고 있죠.
그렇다면 잠시 동안 녹아 있던 아이스크림을 다시 얼려 먹어도 될까요. 빙과업계에서는 먹어도 큰 문제는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절대 권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합니다. 일단 녹아 있던 시간을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게다가 맛과 식감까지 완전히 망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독자 분들도 녹았던 아이스크림을 베어물었다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맛을 느끼신 분이 있으실 겁니다.
왜 이런걸까요. '오버런(Over run)'이라는 아이스크림 제조 공정 때문입니다. 오버런은 아이스크림의 원재료 대비 공기의 비율입니다. 오버런이 100이라면, 원재료와 공기의 비율이 1:1이라는 뜻이죠. 어떻게 보면 '질소 과자'같은 느낌이지만, 아이스크림에게 공기는 필수 재료입니다. 공기가 많이 들어갈수록 식감이 부드러워지니까요. 다만 맛과 향이 공기 양에 반비례해 밸런스를 찾아야 합니다.
이를 감안한 국내 아이스크림의 오버런 수치는 100~140 정도입니다. 원재료 대비 최대 1.4배의 공기가 투입된다는 이야기죠. 그럼 아이스크림이 한 번 녹았다고 생각해 볼까요. 얼음 속에 갇혀 있던 공기가 빠져나옵니다. 다시 얼리더라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공기를 염두에 두고 만든 만큼, 맛과 향은 여전히 모자라고요. 결국 아이스크림은 '맛없는 얼음'이 됩니다. 이것이 녹았던 아이스크림이 맛이 없는 이유입니다.
한 번 녹았던 아이스크림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일단 오랫동안 녹아있던 아이스크림은 손으로 만져보기만 해도 쉽게 알아챌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성에'를 살펴봐야 합니다. 한 번 녹았던 아이스크림 봉지 안에는 공기가 정상보다 많습니다. 이 공기의 온도는 냉동고 안 공기보다 높죠. 자연스럽게 다시 얼어붙는 동안 성에를 발생시킵니다. 이 두 가지만 기억한다면 변질된 아이스크림을 만날 일은 거의 없다고 보셔도 됩니다.
올해는 3년 만에 '진짜 여름'이 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습니다. 오미크론 변이의 유행이 정점을 찍고 내려온다면, 마음 편히 바깥에 나갈 수 있을 테니까요. 그만큼 아이스크림도 더 많이 먹게 되겠죠. 변질된 제품을 고르게 될 확률도 높아질 겁니다. 익숙함에 속아 무심코 잘못된 선택을 하시는 일이 없길 바랍니다. 더위를 달래려다가 배탈을 얻는다면 그만큼 억울한 일도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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