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신라가 새로운 영역에 도전한다. 아이템은 '화장품'이다. 호텔신라가 직접 화장품을 제조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 글로벌 화장품 업체인 로레알과 손을 잡았다. 자금은 사모펀드(PEF) 앵커에퀴티파트너스가 담당한다. 호텔신라는 유통을 맡았다. 호텔신라는 이들과 함께 화장품이라는 새로운 영역에서 가능성을 엿볼 생각이다. 다만 업계의 시선은 엇갈린다.
호텔신라는 지난 6월 로레알, 앵커에쿼티파트너스와 함께 합작법인 '로시안(LOSHIAN)'을 설립했다. 이후 제품 개발 과정을 거쳐 첫 뷰티 브랜드인 ‘시효(SHIHYO)’를 론칭했다. 시효는 ‘시간의 지혜’라는 의미를 담았다. 동양의 24절기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설명이다. 호텔신라는 시효를 통해 허브 사이언스에 기반한, 자연으로부터 얻은 건강한 에너지를 선사한다는 계획이다.
시효는 각 계절의 적기에 수확된 24가지 자연 원료를 담고 있다. 과학적 연구와 혁신을 통해 입증된 효능을 결합해 제품을 선보인다. 모든 제품에는 쌀뜨물과 인삼수를 24가지 자연 원료와 배합해 특허를 받은 핵심 성분 ‘시효24(Shihyo24)'가 함유돼있다. 24가지 자연 원료가 함유된 24개 앰플을 비롯해 클렌저, 에센스, 크림 등의 스킨케어 라인과 샴푸, 컨디셔너 등의 헤어케어 라인을 선보인다.
호텔신라와 로레알, 앵커에쿼티의 로시안 지분율은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업계에서는 세 업체의 지분율이 비슷할 것으로 보고 있다. 로시안은 호텔신라와 로레알, 앵커에쿼티가 각자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합쳐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목적이다. 특히 호텔신라의 경우 면세점에 치중된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이 필요했다. 화장품 사업은 처음이다. 그런 만큼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지난 3분기 기준 호텔신라의 전체 매출액 중 면세점 비중은 88.1%에 달한다. 하지만 실적은 좋지 않다. 호텔신라 면세 사업부문의 지난 3분기 매출액은 전년 대비 40% 증가한 1조1977억원을 기록했다. 반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97% 감소한 6억원에 그쳤다. 전기 대비로도 96% 줄어들었다.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직격탄을 맞았다. 특히 중국인 단체 관광객과 따이공(代工·중국인 보따리상)의 감소가 컸다.
호텔신라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사업 모델이 필요했다. 면세점에만 의존하는 사업 구조로는 코로나19와 같은 심각한 경영 환경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때 눈에 들어온 것이 화장품이다. 특히 고급 화장품의 경우 코로나19 확산 속에서도 꾸준히 시장이 확대됐다. 고급 화장품 브랜드인 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와 LG생활건강의 '후'가 대표적이다.
이에 따라 호텔신라도 화장품 사업 진출을 모색했다. 다만 직접 진출하는 것은 리스크가 크다. 이에 따라 함께 할 곳을 모색했다. 처음 진출하는 시장인 만큼 신중하게 접근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글로벌 화장품 업체인 로레알이 제조를, 앵커에퀴티가 경영 노하우와 자금을, 호텔신라가 유통을 담당하는 구조로 합작사를 설립했다. 호텔신라의 입장에서는 일종의 실험인 셈이다.
업계에서는 호텔신라의 화장품 사업 본격화에 대해 다소 엇갈린 반응을 내놓고 있다. 그동안 호텔신라가 보여줬던 '고급' 이미지를 이번에 새롭게 시작하는 화장품에도 이식한다면 상당한 파급력이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업계 관계자는 "호텔신라와 로레알, 앵커에쿼티 모두 각자가 가진 장점들을 합치는 것인 만큼 어떤 결과를 내놓을지 궁금하다"며 "시너지를 낸다면 빠른 시간 내에 안착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우려스럽다는 시각도 있다. 국내 화장품 시장은 롯데와 신세계 등 유통 대기업들도 이미 쓴맛을 본 시장이다. 호텔신라가 비록 유통만을 담당한다고는 하지만 전체적인 판매와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는 이미지는 호텔신라의 이미지인 만큼 상당한 부담도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시장에 이미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존재하는데다, 소비자들의 니즈도 세분화하고 있어 공략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국내 화장품 시장은 이미 상당 부분 시장 재편이 완료된 상태"라면서 "수입 명품 화장품과 가성비를 앞세운 H&B 제품이 각각의 시장을 공고히 지키고 있어 신제품이 들어올 틈새가 크지 않다. 아무리 호텔신라의 고급 이미지를 내세운다고 해도 공략하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