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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산' 사과·수박은 왜 없나 했더니…이유 있었네

  • 2025.06.15(일) 13:00

[생활의 발견]수입 과일 검역의 세계
8단계 수입 허가에 평균 8년 소요
식물 검역은 식량 주권과 밀접

그래픽=비즈워치

[생활의 발견]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소재들을 다룹니다. 먹고 입고 거주하는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우리 곁에 늘 있지만 우리가 잘 몰랐던 사실들에 대해 그 뒷이야기들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보려 합니다. [생활의 발견]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여러분들은 어느새 인싸가 돼 있으실 겁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편집자]

과일 좋아하시나요? 무더위가 시작되는 이맘때가 되면 달콤하고 시원한 과일이 당기곤 합니다. 하지만 기후변화 탓에 최근 몇년 사이 과일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습니다. 국산 과일이 참 맛있긴 하지만 가격 탓에 마트에서 쉽게 손이 가지는 않죠. 이럴 때면 차라리 해외에서 과일을 들여와 가격을 떨어뜨리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우리가 즐겨먹는 과일 종류 대부분은 현재 수입되지 않고 있습니다. 사과, 배, 복숭아, 수박 같은 인기 과일들은 모두 국산으로만 먹을 수 있습니다. 정부가 아직 이들 과일의 수입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과일이 수입되려면 까다로운 '검역'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병해충 막아라

검역은 해외에서 전염병이나 해충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거치는 검사, 조사 과정을 말합니다. 식물검역은 19세기 독일에서 미국 포도 묘목 수입을 막은 것이 시초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와인을 즐기는 분이라면 잘 아는 이야기일텐데요. 당시 프랑스는 포도 사이에서 '흰가루병'이 유행하자 이 병에 강한 새로운 품종을 육종하려고 미국에서 포도 묘목을 들여왔습니다.

그런데 이 미국산 포도 묘목을 통해 '필록세라'라는 해충이 같이 들어오면서 프랑스는 물론 유럽의 포도밭까지 막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결국 프랑스 이웃 국가인 독일은 '포도해충 예방령'을 공포하고 미국의 번식용 포도 묘목 수입을 금지했는데요. 이것이 세계 최초의 식물검역이었다고 합니다.

이마트 푸드마켓 고덕점의 수입 과일 코너. / 사진=정혜인 기자 hij@

우리나라 식물검역 역사도 꽤 긴 편입니다. 일제 강점기인 1910년대 초 일본산 과수 수입이 크게 늘었는데요. 이 때 조선총독부가 검사, 소독을 실시한 과수만 수입하도록 한 데서 식물검역이 시작했다고 합니다. 해방 이후에는 한국전쟁 등으로 식물검역이 이뤄지기 어려웠지만 1960년대부터 식물검역이 조금씩 다시 시작됐고요. 1978년에는 농수산부 국립식물검역소가 발족하면서 본격적인 식물검역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현재의 식물검역 시스템이 도입된 건 1995년입니다. 그해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하면서 동식물 위생·검역 조치 협정(SPS)이 함께 발효됐는데요. 이에 맞춰 우리나라도 그 해 말 식물방역법을 전면 개정해 공포했습니다. 이전까지는 법령을 통해 수입 '금지' 식물을 정했는데요.

반면 식물방역법 개정 이후에는 식물방역법에서 우선 식물을 종류별로 나눠 모두 수입을 막고, 일부 수입이 허용된 품목만 수입이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현행 식물방역법에 따르면 과일, 즉 '생과실'로 분류된 종류는 덜익은 바나나와 코코넛, 그리고 수입 허용 지역의 특정 과일을 제외하고는 식물방역법상 원칙적으로 수입이 불가능합니다. 이전과 달리 이제는 법령에 수입 '가능'한 과일이 명시된 겁니다.

망고는 고온에, 오렌지는 저온에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수입 이력이 없는 모든 국가와 식물은 수입이 금지돼 있습니다. 식물방역법 시행규칙(2024년 11월 기준)에서 수입 가능한 품목으로 지정돼 있는 과일은 태국 두리안, 일본 양벚과 딸기, 뉴질랜드 멜론 등이 있습니다.

국내에서 소비가 많은 사과·배·감귤·복숭아·포도·단감 등 이른바 '6대 과일' 중 일부도 시행규칙 내 수입 가능 품목으로 명시돼 있습니다. 감귤은 하와이주와 텍사스주, 플로리다주를 제외한 미국과 규슈, 류큐열도와 시코쿠 지역을 제외한 일본, 뉴질랜드에서 수입되고 있습니다. 단감은 일본과 뉴질랜드에서, 포도는 텍사스주와 하와이주를 제외한 미국, 일본, 뉴질랜드에서의 수입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과, 배, 복숭아는 여전히 시행규칙에서 수입을 허용하지 않은 품목입니다.

물론 식물방역법 시행규칙에 없다고 해서 수입이 완전히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 상대 국가에서 공식 수입 허용 요청이 있을 경우 수입 허가 절차를 거쳐 과일이 수입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진=아이클릭아트

농림축산식품부는 과학적 증거를 기반으로 한 수입위험분석 절차(Import Risk Analysis)를 통해 외국산 농산물의 수입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수입 허가 절차는 수출국의 공식적 수입 허용 요청이 있을 경우 △접수 △절차 착수 △예비위험 평가 △개별 병해충 위험 평가 △병해충 위험 관리 방안 작성 △수입 허용 요건 초안 작성 △행정 예고 △고시 및 수입 허가의 8단계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렇게 수입 허가를 받은 후에도 일부 과일들은 수입 조건이 따라붙습니다. 대표적으로 망고의 경우 대만, 필리핀, 태국, 호주 등이 수입 허가를 받았는데요. 국가별로 조금씩 온도, 시간이 다르긴 하지만 증열 처리를 거쳐 망고를 들여와야 합니다. 증열은 해충이 사멸할 수 있도록 고온의 증기로 과일을 찌는 과정을 말합니다. 고온에서 살균 처리하는 셈이죠.

반대로 저온에서 살균 처리를 하는 과일도 있습니다. 자몽, 오렌지, 레몬과 같은 수입 과일들은 0~1℃ 저온에 10~20일 가량 등록된 시설에서 저온 처리를 해야 합니다. 이외에 양벚은 생산지에서 가스로 훈증으로 살균한 후 수입됩니다.

너무 까다롭다?

최근 수입 과일이 늘어나고 있다보니 수입 허가 절차를 통과하는 게 쉬워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8단계의 수입 허가 과정을 거치는 데 평균 8년 가량이 소요된다고 하네요. 상대 국가가 수입을 요청한다고 해도 병해충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허가가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사과, 배, 복숭아, 수박과 같은 과일은 여전히 수입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과의 경우 현재 11개국에서 우리나라에 수입 허가를 요청한 상황인데요. 1992년 사과 수입을 요청한 일본은 아직도 5단계인 관리 방안 평가에 머물러 있습니다. 일본이 5단계에 진입한 게 2011년이라고 하니 얼마나 절차가 오래 걸리는지 알 수 있죠. 독일은 4단계인 개별 병해충 위험 평가, 뉴질랜드는 3단계 예비위험 평가, 미국은 2단계인 절차 착수 과정에 있습니다. 나머지 7개국은 아직도 1단계인 접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박은 그간 우리나라에 수입 요청을 한 국가가 없었는데요. 최근 미얀마가 수입 허가를 요청해 1단계인 접수 상태에 들어갔습니다. 복숭아는 5개국이 수입 요청을 했는데 4단계에 들어선 뉴질랜드를 제외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스페인, 우즈베키스탄, 호주는 모두 1단계에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니 수박과 복숭아 역시 당분간 수입산을 보기 어려울 가능성이 큽니다.

신세계 강남점의 신세계 마켓. / 사진=정혜인 기자 hij@

그나마 배의 경우 서양배 수입을 요청한 벨기에와 포르투갈이 5단계를 거치고 있고 미국과 일본도 3단계를 진행 중입니다. 하지만 모든 절차를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고려한다면 배 역시 당분간 수입될 가능성이 높진 않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농식품부가 식물검역을 까다롭게 하는 것은 식량 주권 때문입니다. 자칫 외래 병해충이 잘못 유입됐다가는 19세기 프랑스의 '필록세라'와 같이 우리 농가가 초토화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외래 병해충은 우리 과일이 해외로 수출되는 것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2015년 미국에서 불법으로 들여온 사과 묘목 때문에 국내에 과수화상병이 유입된 적이 있는데요. 이후 일본은 2015년 6월부터 우리 사과, 배 등의 수입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식물검역은 자유무역을 추구하는 세계기구인 WTO도 SPS 협정을 통해 인정한 주권입니다. UN 역시 식물병해충 확산 방지를 위한 국제식물보호협약(IPPC)을 산하기구로 두고 있습니다. 그만큼 식물검역은 전 세계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이번 주말, 마트에서 수입 과일을 사신다면 식량 주권을 위해 얼마나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들어왔는지 생각해보신다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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