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간장 논란 재점화
넷플릭스 오리지널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 2'에서 우승자만큼이나 화제를 모은 출연자가 있습니다. 바로 '사찰음식의 대모'라 불리는 선재스님입니다. 사찰음식 명장 1호이자 한식진흥원 이사장까지 역임한 그는 치열한 경연장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온화한 모습으로 출연해 최종 톱6에 올랐는데요. 그가 요리 예능에 출연하게 된 특별한 배경이 뒤늦게 알려지며 큰 감동을 줬습니다.
과거 선재스님은 불규칙한 식사와 과로 탓에 간경화 판정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의사로부터 "1년을 넘기기 힘들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을 만큼 상태가 위중했는데요. 스님은 그때부터 모든 가공식품을 끊고 제철 식재료와 직접 담근 장으로 식단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놀랍게도 그 후 건강을 회복한 스님은 "음식이 나를 살렸다"는 깨달음을 얻었고 지난 30여 년간 사찰음식 대중화에 앞장서 왔습니다.
선재스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과거 한 방송에서 언급한 '진간장 발언'도 다시금 조명받고 있습니다. 당시 스님은 "시중에서 파는 진간장은 화학물질이 너무 많아 다 버렸다"고 말해 화제가 됐는데요. 이후 스님은 "당시 간경화 말기 환자였기에 몸이 미세한 성분조차 받아내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했던 개인적인 상황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결코 식품업계를 비난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음을 밝힌 셈입니다.
간장의 세계
간장은 제조 방식에 따라 크게 '한식간장', '양조간장', '산분해 간장', '혼합간장'으로 나뉩니다. 한식간장(조선간장)은 우리 전통 방식으로 만드는 간장입니다. 콩으로 만든 메주를 소금물에 담가 자연 발효시키면 고형물은 된장이 되고 액체는 간장이 됩니다. 발효와 숙성에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리는 '기다림의 미학'이 담긴 간장입니다.
양조간장은 대두나 탈지대두에 쌀, 보리, 밀 등을 섞어 미생물로 발효·숙성시킨 간장입니다. 일본식 발효 방식을 사용해 과거에는 '왜간장'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자연 숙성을 거치기에 풍부하고 깊은 맛이 특징이지만, 열을 가하면 맛과 향이 변하기 쉬워 주로 무침이나 소스용으로 쓰입니다.
반면 산분해 간장은 앞서 두 간장과 달리 화학적으로 만들어낸 간장인데요. 기름을 뺀 콩인 탈지대두에 염산을 부어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분해한 뒤 알칼리성인 수산화나트륨으로 중화시켜 만듭니다. 여기에 캐러멜색소와 향료를 더해 간장의 형태를 갖추는데요. 단 며칠 만에 대량으로 만들어낼 수 있어 가격이 저렴하죠. 산분해 간장은 주로 식당에서 사용하거나 가공식품의 원료가 됩니다.
그럼 우리가 흔히 쓰는 진간장은 무엇일까요? 본래 진간장은 한식간장을 5년 이상 숙성한 진한 간장인 '진장'에서 유래했는데요. 1966년 샘표는 진장에서 착안해 '진간장'이라는 브랜드를 선보였습니다. 이후 이 이름이 워낙 유명해지다 보니 여러 회사에서 '진간장'이라는 이름을 붙인 제품들을 내놓으며 마치 보통명사처럼 쓰이게 된 겁니다. 결국 진간장은 국가가 정한 식품유형이 아니라 단순한 제품의 이름인 셈입니다.
여기서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건 '진간장'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어도 식품유형은 천차만별이라는 점인데요. 우리가 마트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진간장은 '혼합간장'입니다. 보통 양조간장 10~20%에 산분해 간장 70~90%를 섞어 만듭니다.
법적으로 양조간장이 한 방울만 섞여도 혼합간장이라는 명칭을 쓸 수 있는데요. 혼합간장은 엄밀히 말하면 전통 발효 식품보다는 '조미액'에 가까운 셈이죠. 물론 최근에는 '100% 양조간장' 혹은 한식간장을 섞어 만든 프리미엄 진간장도 출시되고 있는데요. 이런 경우 제품 뒷면의 식품유형에 '양조간장' 또는 '한식간장'이라고 명확히 적혀 있습니다.
혼합간장은 나쁘다?
선재스님이 언급했던 '진간장'은 '산분해 간장'이 섞인 혼합간장을 의미합니다. 재래식 간장과 양조간장은 미생물에 의한 자연 발효 과정을 거치는데요. 반면 산분해 간장은 고온에서 염산을 사용하는 화학적 공정을 통해 생산됩니다. 이 과정에서 유해 가능 물질인 '3-MCPD(3-모노클로로프로판디올)'가 의도치 않게 생성될 수 있습니다.
국제암연구소는 이를 '2B군 발암 가능 물질'로 분류하고 있는데요. 동물실험에서는 발암 가능성이 확인됐지만, 인체에서의 명확한 인과관계는 충분히 입증되지 않은 수준이라는 의미입니다.
3-MCPD 안전성 논쟁은 1990년대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1996년 처음 문제 제기가 된 이후 정부와 업계는 저감 공정을 도입해 관리 기준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왔습니다. 특히 2016년 특정 제품 논란을 계기로 산분해 간장과 혼합간장의 허용 기준은 2020년 7월 0.1㎎/㎏ 이하로 설정됐고 2022년 1월부터는 0.02㎎/㎏ 이하로 더욱 엄격해졌습니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주요 기업 제품은 이런 안전 기준을 충족하고 있습니다. 즉, 일반적인 섭취 수준에서 즉각적인 건강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설명입니다. 실제로 3-MCPD는 치즈나 빵을 고온으로 가열하는 과정에서도 생성될 수 있고 일상 식품에서도 소량 검출되는 물질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가별 관리 기준을 보면 미국은 1㎎/㎏, 유럽연합은 한국과 동일하게 0.02㎎/㎏을 최대 허용치로 두고 있습니다. 또 위해성 평가를 담당하는 국제기구 식품첨가물전문가위원회는 3-MCPD의 일일섭취허용량을 체중 1㎏당 4마이크로그램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를 적용하면 체중 60㎏ 성인의 경우 하루 240마이크로그램 수준까지는 건강에 영향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좋은 간장 고르는 법
미디어를 통해 간장 선택 기준이 널리 알려지면서 소비자 관심도 꾸준히 높아지고 있습니다. 간장의 품질을 비교적 쉽게 판단할 수 있는 대표적인 지표는 제품 용기 뒷면에 표시된 'T.N(Total Nitrogen, 총질소)' 수치입니다.
T.N값은 간장에 들어 있는 아미노산 함량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간장의 맛을 결정하는 핵심 성분은 콩 단백질이 분해되면서 생성되는 아미노산인데요. 이 수치가 높을수록 감칠맛이 풍부하고 맛의 깊이가 좋은 간장으로 평가됩니다. KS 규격에 따라 1.0% 이상이면 '표준', 1.3% 이상이면 '고급', 1.5% 이상이면 '특급'으로 구분됩니다.
따라서 제품을 비교할 때 이 수치를 확인하면 품질을 직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자연 발효에 가까운 제품을 원한다면 성분표도 함께 살펴보는 것이 좋은데요. '양조간장 100%' 혹은 '한식간장', '조선간장' 등으로 표시된 제품은 발효 중심 제조 방식으로 만들어진 간장입니다.
결국 선재스님의 '진간장' 발언은 단순히 특정 제품을 비판하기보다 우리 몸을 살리는 전통 장류의 진정한 가치를 되새기자는 취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오래 숙성한 장을 '약'처럼 귀하게 여겼을 만큼 장 문화는 우리 삶과 건강 속에 깊숙이 자리 잡아 왔습니다. 이런 전통의 가치는 2024년 '한국의 장(醬) 담그기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세계적으로도 다시 한번 그 위상을 인정받았습니다.
요리의 용도에 따라 어울리는 간장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일상에서 전통 방식을 계승한 한식간장을 꾸준히 곁들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건강을 챙기는 동시에 한국 발효 식문화의 소중한 맥을 이어가는 작지만 위대한 실천이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