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사가 보험사와 제휴해 보험상품을 판매하는 '카드슈랑스'가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판매 규제를 받는다. 당장 내년부터 특정 보험사 상품의 판매 비중을 66%로 낮춰야 하고, 내후년엔 50%로 이하로 맞춰야 한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말 특정 보험사 상품의 판매 비중을 25% 이하로 제한하는 '25%룰'의 3년 추가 유예를 결정한 바 있다. 하지만 방카슈랑스와 규제 형평성을 고려해 내년부터 단계적 적용을 추진키로 최근 입장을 바꿨다.
보험사와 카드사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카드슈랑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보험사가 많지 않은 데다 카드사 한 지점에선 한 보험사와만 시스템을 연결할 수 있는 구조여서 현실적으로 당장 판매 비중 조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단선적이고 획일적인 규제로 카드슈랑스 시장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 시장 상황 그대로지만 형평성 차원서 도입
금융위원회는 최근 신용카드업자의 보험모집 비중 규제를 단계적으로 적용하는 규정을 담은 '보험업법 시행령 일부개정안'을 공고하고 업계 의견을 청취했다. 개정안은 특정 보험사 상품의 판매 비중을 25% 이내로 제한하는 이른바 '25%룰' 적용 시점을 당초 2023년보다 1년 더 유예하는 대신 내년부터 66%, 50%, 33%로 단계적으로 적용하는 안을 담았다.
25%룰은 방카슈랑스엔 이미 적용하고 있지만 카드슈랑스는 전체 보험 모집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0.1% 수준에 불과한 데다 특정 보험사에 쏠린 시장 여건을 감안해 10여 년간 규제 적용을 미뤄왔다. 실제로 3~4개의 중·소형 보험사들만 이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어 25% 판매 규제 준수가 사실상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가령 생보사의 경우 신한과 라이나, AIA, 동양생명, 미래에셋생명 등 총 7개사가 카드슈랑스 영업을 하고 있지만 이중 신한과 라이나, AIA 등 세 곳이 전체 수입보험료의 90%이상을 거둬들이고 있다.
손보사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메리츠화재와 에이스손보, AIG손보, 삼성화재 등 총 8개사 가운데 메리츠화재와 에이스손보, AIG손보만이 주력으로 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특정 보험사 상품만 90% 넘게 판매하는 카드사가 있을 정도다.
당국은 시장 여건은 바뀌지 않았지만 형평성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만큼 규제 준수 가능성 확보 차원에서 단계적 도입 방안을 결정했다는 입장이다.
◇ 업계, 도입 1년 더 유예 및 생·손보 통합 적용 건의
업계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3개월여 만에 규제 적용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험업계는 도입 시기를 1년 더 유예해 줄 것을 당국에 요청한 상태다. 당장 내년 66% 도입조차 쉽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카드슈랑스는 제휴를 맺으면 한 지점에서 하나의 상품밖에 판매하지 못하는 구조"라며 "TM채널 판매 규제를 받고 있어 시스템 연결과 네트워크망 보안, 고객정보 보호, 녹취시스템 등을 감안할 때 한 지점에서 다수 보험사와 연결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카드사들이 보험사 한두 곳과 제휴해 그 상품을 주력으로 판매하고 있는 상황에서 규제 비율을 맞추려면 제휴사를 늘리고 인프라도 여러 개 구축해야 한다"면서 "인적, 물적 자원을 늘려 새 지점을 만들거나 기존 지점의 시스템을 아예 바꿔야 해 단기간에 적용이 쉽지 않다"라고 덧붙였다.
보험사도 부담이 늘어나긴 마찬가지다. 카드사의 전체 보험 판매액에서 개별 보험사의 판매액을 제한하는 만큼 매출이 줄어들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제휴 카드사를 늘려야 해 녹취서버 증축과 관리 및 교육인력 확대 등이 필요하다.
카드사들도 25%룰을 지키려면 적어도 생보 5곳, 손보 5곳과 제휴해야 하는데 이에 따른 인프라 및 인력 비용이 너무 크다는 입장이다. 시장 위축도 우려되고 있다. 기존에 생보사 3곳, 손보사 1곳과 제휴한 카드사가 있다면 손보사 제휴를 포기하고 생보사 제휴를 늘리는 쪽을 선택할 수박에 없을 것이란 얘기다.
이 때문에 카드업계는 당국에 생·손보사 각각에 적용하는 25%를을 생·손보를 모두 합쳐 적용해 줄 것을 요청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플랫폼을 비롯해 강력한 비대면 채널이 늘어나고 카드슈랑스 참여 보험사는 외려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라며 "인적·물적 부담이 큰 카드슈랑스 채널에 신규 사업자가 들어올 가능성이 크지 않아 생·손보를 합쳐 적용하지 않을 경우 사실상 규제 비율을 맞추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 방카슈랑스와 달라…동일 규제 적용 한계 지적
일각에서는 방카슈랑스와 카드슈랑스의 성격이 다른 데 금융기관보험대리점으로 묶어 동일한 규제를 적용받는 것이 문제라는 주장도 나온다.
카드슈랑스는 점포를 내점해 가입하게 되는 방카슈랑스와 달리 보험사 TM대리점과 같은 아웃바운드 영업을 한다. TM영업을 위한 별도 공간이 필요하고 전화, 녹취 등을 위한 통신관련 시스템도 마련해야 한다. 방카슈랑스에서 저축성, 연금상품을 주로 판매한다면 카드슈랑스의 경우 보장성 보험을 위주로 판매하고 있어 상품군도 다르다.
보장성 상품을 전화로 설명해야 해 다양한 상품 판매가 어렵고, 한두 상품만 집중적인 판매가 이뤄진다. 특히 상담 과정을 모두 녹취하려면 보험사와 녹취시스템을 연결해야 하는데 문제는 한 지점에서 한 곳의 보험사와만 시스템 연결이 가능하다는 데 있다. 지점별로 상담원 수가 다 달라 지점별로 보험사를 다르게 가져가더라도 비율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방카슈랑스 25%룰은 특정 은행의 계열 보험사 밀어주기 등을 우려해 취해진 조치지만 카드슈랑스는 TM채널 위주의 보험사들이 주력으로 하는 채널이고 보장성 보험 위주로 판매하고 있는 만큼 상황과 성격이 다르다"면서 "오히려 일반 TM채널과 유사한데도 금융기관보험대리점이라는 이유로 동일한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점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좋은 상품을 소개하고 고객이 이를 선택하는 구조인데 판매 제한 규제가 오히려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시장이 다른 만큼 규제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 "규제 비율 못 맞추면 사업 접어야"
당국이 업계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실질적으로 사업을 접거나 대폭 축소해야 하는 상황이 나올 수도 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자력으로 할 수 있는 부분에 한계가 있고 시장 여건 자체가 바뀌어야 하는데 단기간에 쉽진 않을 것"이라며 "규제 비율을 맞추지 못하면 당국의 제재를 받기 때문에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결국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보험권 전체로 보면 모집비용이 크지 않지만 카드사 소속 보험설계사들에게는 생계가 달린 문제여서 시장 축소에 따른 소득 감소도 우려된다"라고 덧붙였다.
금융위 관계자는 "시장 상황을 이유로 10년 넘게 규제를 유예했는데 규제 형평성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만큼 도입 필요성이 크다"면서 "현재 시점에서 (규제 비율 준수가) 가능하다 불가능하다를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규제 준수를 위해 필요한 의견을 듣고 지원할 수 있는 방안 등을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보험업계 관계자는 "3년 유예에서 단계적 적용도 갑작스레 이뤄진 부분이 있다"면서 "업계에선 방카슈랑스 이슈까지 영향을 줄 수 있어 쉽사리 나서지 못하는 분위기인데 당장 신규 보험사가 늘어나거나 추가 비용 등을 감당하지 못하면 기존 사업자들의 영업 축소와 소속 설계사의 고용 불안, 카드 및 보험사의 수익성 악화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