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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간 흔들리는 임금피크제…은행권 뒤숭숭

  • 2022.05.30(월) 15:37

대법, 임피제 무효 판단에 은행들 법률 검토 시작
은행 사측, 불리한 부분 많아…연이은 소송전 예고
두둑한 퇴직금 대신 근속…퇴직 풍속 바뀔수도

대법원이 임금피크제에 대해 무효판결을 내리자 은행권이 뒤숭숭한 모습이다. 그간 은행권은 임금피크제도를 적극 활용해 왔는데 이번 대법원의 판결로 인해 그간 시행했던 임금피크제도를 전면 재점검할 필요가 생겨서다. 

특히 일각에서는 현재 임금피크제도에 돌입한 직원들이 집단 소송에 나설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은행들 입장이 난감해진 모습이다. 

30일 은행권에 따르면 4월말 기준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등 주요 시중은행에 임금피크제에 돌입한 직원 수는 700여명 수준으로 집계됐다.

여기에 기업은행,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은 더욱 적극적으로 임금피크제를 활용하고 있어 은행권 전체로 합치면 1900여명에 가까운 은행 직원들에게 임금피크제가 적용중인 것으로 집계됐다.

대법원, 임피제 근간 흔들다

임금피크제도는 근로자가 정년에 가까운 연령에 도달한 뒤 퇴직 대신 고용을 보장하되 임금을 감축하는 제도다. 통상 은행권에서 임금피크제에 돌입하는 연령은 만 56세다. 지난 2016년 은행의 정년이 60세로 늘어난 이후 은행들은 정년을 보장하는 대신 임금피크제에 돌입하는 방식을 적극 활용해왔다.

하지만 이번에 대법원은 임금피크제도가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4가지 기준이 필요하다고 봤다. △임금피크제의 도입목적이 정당하며 필요한지 △실질적 임금삭감의 폭이나 기간이 적절한지 △임금피크제에 돌입한 만큼 업무량이나 강도가 줄었는지 △임금피크제 도입을 통해 감액된 재원이 도입목적에 사용됐는지 등이다.

대법원이 이러한 판단을 내리자 금융노조는 적극 환영하며 은행의 인력구조 변경을 위한 움직임에 나설 모양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관계자는 "이번 산별교섭때 정년 65세 연장, 60세 이전 임금피크제도 진입 금지 등을 이미 내걸 예정이었다"라며 "이번 대법원의 판결로 인해 고령노동자들의 고용안정성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일단 은행들은 법무팀 등을 소집해 해당 기준에 적합한 임금피크제도가 운영되고 있는지 살피고 있다. 

은행 관계자는 "현재 적용중인 임금피크제도가 위 4가지 사례에 적용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며 "회사별로 사안이 다르고 노사간 입장이 현저하게 다를 것으로 보이며 소송전이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라고 봤다.

① 임피제, 도입목적 정당했나

일단 은행들은 대법원이 내건 4가지 요건을 꼼꼼하게 살피는 모습이다. 일단 첫번째 관건인 '도입목적의 정당성과 필요성'에 대해서는 충분한 근거를 마련했다는 입장이다. 

일단 은행들이 임피제를 도입한 이유 가장 큰 이유는 은행업이 디지털화 하면서 인력 감축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일단 은행업의 디지털화로 인해 인력이 크게 줄어든 것은 맞다. 많은 업무에 RPA(로봇프로세스자동화)기술이 적용되면서 사람이 할 일을 AI등이 대신해주고 있는 추세다. 게다가 지점방문 고객이 현저하게 줄어들면서 대면영업 인원의 필요수는 점차 감소하고 있다. 

당장 이들이 일하는 지점이 빠르게 줄어든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지난 지난해 1분기말 기준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등 4대 은행 지점 수는 3303개에서 올해 1분기 3016개로 크게 줄었다. 이들 은행들은 올해 하반기에만 100여개가 넘는 점포를 추가로 통폐합할 예정이다.

은행 관계자는 "은행은 사라지지만 은행업은 남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은행의 디지털화가 진행되면서 필요인력이 빠르게 줄어든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② 임금삭감 폭-기간-업무량-강도 적절했나

두번째 관건인 임금삭감의 폭과 기간 그리고 세번째 관건인 업무량과 강도에 대한 적절성은 은행별로 따져봐야 할 부분이 많다. 

일단 시중은행들은 만 56세부터 임금피크제에 돌입하며 정년까지는 그간 급여의 50%가량만 받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부분은 노사가 합의한 부분이기 때문에 은행입장에서는 걸릴 것이 없다.

문제는 업무량과 강도가 적절했느냐다.

통상 임금피크제에 돌입한 직원의 경우 지점장급 인력일 가능성이 높다. 은행 지점장급이 되면 약 1억5000만원 수준의 연봉을 받게 되는데 이들의 연봉을 절반 가까이로 줄어들었다면 이는 은행 대리급 수준이다. 

즉 업무량이나 강도가 대리급에 준하게 줄어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사측과 근로자 측의 엇갈리는 모습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임금피크제에 돌입하면 즉각 업무를 재배정하며 노동강도를 줄이도록 노력해왔다"고 설명했다. 

반면 이 은행 노조 관계자는 "지점장급에게 업무를 재배정하더라도 그간 쌓아온 노하우와 네트워크 등이 있었기 때문에 업무강도가 줄어들었다고 보기는 힘든 측면이 있다"며 "임피제에 돌입했다고 사측이 이 근로자에게 대리급 성과를 기대하지는 않았다는 이야기"라고 주장했다.

③ 재원, 도입목적에 사용됐나

가장 큰 관건은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서 생긴 재원이 도입목적에 사용됐느냐다. 그간 은행들은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서 이 재원을 통해 청년고용을 적극 늘리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은행들이 청년 고용에 적극 나섰다고 보기는 힘들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대졸 신규 행원 채용 규모를 일정 수준에서 유지해왔지만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한 2020년부터는 이같은 움직임이 사라져서다.

당장 은행들이 상·하반기 공채를 없애고 수시채용 형태로 채용 형태를 바꾼것이 이를 방증한다. 특히 수시채용에서는 은행들이 현재 가장 필요로 하는 디지털 전문 인력 채용시에는 '지원분야 경력 보유자'에 우대사항을 부여하며 사실상 '경력직' 채용을 우선순위에 두겠다는 방침을 공고히 하기도 했다. 일부 은행들은 상·하반기 공채 대신 수시채용을 진행하면서 신입직원 채용 규모를 밝히지 않는 곳도 있다. 

은행 관계자는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삭감된 재원이 청년채용에 쓰였는지 문제는 내부적으로 검토해야 할 부분이 많다"며 "채용인원 수가 줄어들었다고 해서 임금피크제를 통해 확보한 재원이 엄한 곳으로 흘러 들어갔다고 보기는 힘든 측면이 있다. 다양한 은행 발전을 위해 사용됐다"고 설명했다.

연이은 소송전 예고…퇴직 풍속도 바뀔까

이번 대법원의 판결로 인해 은행들이 연이은 소송전에 휘말릴 가능성도 커졌다.

당장 가장 적극적으로 임금피크제도를 활성화했던 기업은행의 경우 지난 3월부터 일부 임금피크제 돌입 근로자들이 무효 소송을 내고 소송에 나서기도 했다.

은행 한 노조 관계자는 "현재 은행권의 임금피크제도는 많은 부분에 있어 이번 대법원 판결의 요지에 어긋나는 측면이 있다"며 "이에 따라 근로자들의 의견을 종합해 사측과 새로운 합의에 나서거나 혹은 소송 등 앞으로의 계획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임금피크제 노사 합의 당시 만 56세 이상 근로자의 경우 통상 관리자급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사측의 입장에서야 하기 때문에 사측의 의견을 사실상 따라야만 했다. 정작 합의 당사자들의 의견이 배제되는 측면이 있었다는 것"이라며 "이 부분도 깊이 따져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측에서는 이번 대법원의 판결로 인해 인건비가 상당부분 증가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봤다. 

그간 은행들은 '희망퇴직'을 통해 큰 규모의 퇴직금을 지급하며 고령 노동자들의 퇴직을 유도했는데, 임금피크제도의 전면 손질 가능성이 높아지며 정년까지 회사를 다니겠다고 희망할 근로자들이 많아질 것이란 이유에서다. 

은행 관계자는 "그간 은행들은 퇴직금에 더해 약 2~3년간의 연봉을 위로금으로 지급하며 희망퇴직을 적극 유도해왔고 이에 따라 희망퇴직이 인기가 있었다"며 "다만 100세 시대가 되면서 정년까지 일을 하겠다는 수요도 꾸준했기 때문에 이번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임금피크제를 적극 활용하는 인원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일단 현재 대법원의 판결에 위배되는 임금피크제도를 손보는 작업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라면서도 "은행은 인력을 점차 줄여야 하는 상황인 것이 맞는 만큼 희망퇴직을 유도하기 위해 위로금을 확대하는 방안이 논의될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힘들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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