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급격하게 불어난 기업대출에 대한 점검에 나설 모양새다. 기업들이 금융기관에서 빌리는 돈이 늘어나는 점도 우려할 만한 부분인데, 대외 상황이 녹록지 못하다 보니 이들이 대출을 갚아나가지 못할 가능성도 점차 커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기업들 돈 꾸러 은행찾는다
8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기업들이 금융기관으로 부터 빌린 금액 대출 잔액은 1644조7000억원으로 조사됐다. 올해 1분기에만 63조7000억원 늘어났다. 이는 통계 작성 이후 역대 두번째 많은 규모로 대출이 늘어난 것이다.
가장 많이 늘어났던 것은 코로나19 대유행이 덮친 지난해 2분기 63조9000억원이었다. 코로나19 대유행만큼 기업들이 제대로 돈을 벌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단순 1분기 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지난달말 기준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등 주요 시중은행의 기업대출 잔액은 668조629억원으로 전월대비 7조5071억원 증가했다. 기업들이 자금조달을 위해 은행을 찾는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이 현재 경영을 하는데 여건이 좋지 않음을 시사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통상 기업들은 자금조달시 금융기관의 직접대출 보다는 회사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런데 회사채 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고 업황악화로 신용등급 역시 답보현상을 보이고 있어 회사채 발급 역시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다시 말해 투자자들로부터 돈을 조달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실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4월 회사채 발행규모는 16조6206억원으로 지난해 같은기간에 비해 32.6% 줄어들었다. 이중 일반회사채 발행 실적은 5조원으로 지난해 동기 8조8680억원보다 3조8680억원 감소했다.
은행 관계자는 "중소기업 대출이 기업대출을 이끌었지만 대기업 역시 적극적으로 대출을 늘리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부분"이라며 "시장에서 직접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으로 이는 경영환경이 좋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 4월 발행된 회사채중 신용등급 A이하 회사채가 차지하는 규모는 5조원중 8100억원 수준이었다. 다시 말해 경영환경이 좋지 않아 시장으로 부터 좋지 못한 평가를 받았다면 회사채를 발행하기도 어려웠다는 얘기다.
기업들 당장 운영자금이 급했다
지난 1분기 기업들이 빌린 돈의 용도는 운전자금이 41조9000억원이었고 시설자금이 22조원으로 집계됐다.
운전자금은 임금, 원자재가격 등 정상적인 경영활동에 필요한 자금을 말한다. 시설자금은 기업이 새로운 설비구입 혹은 시스템 구축등을 위해 사용되는 자금이다. 통상 운전자금은 '급한 돈'으로 취급되 만기가 짧은 1년 미만으로 금융기관으로 부터 조달한다. 반면 시설자금의 경우 회사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사용되므로 만기도 1년 이상 길게 가져간다.
따라서 운전자금 수요가 많았다는 것은 기업들이 현재 벌어들이는 돈만으로는 기업을 운영하기 위해 제대로 된 돈벌이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 대출 통계가 지난 1분기 통계지만 2분기에 들어선 현재도 상황이 나아지지는 않았을 것이란 게 금융권의 중론이다.
일단 서비스업 등 내수기업의 경우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거리두기 회복에도 고물가가 발목을 잡을 것이란 관측이다. 물가가 빠르게 오른 영향에 소비가 되살아나는 속도가 더뎌지면서 사회적거리두기 해제의 덕을 톡톡히 누리지 못할 것이란 얘기다.
제조업 기업 등의 경우 원자재 가격 상승세가 문제다. 우리나라는 특성상 원자재 대부분을 수입한 이후 재가공해 국내에 유통하거나 수출한다. 원자재 가격 상승은 비용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업들의 상황이 녹록지 못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외감기업 1만7827곳을 분석한 결과 영업비용이 이자 비용보다 적은 것으로 나타난 기업은 34.1%로 집계됐다. 다시말해 10곳중에 3버는 돈으로도 이자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올들어 대외 리스크가 더욱 확대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황은 더욱 악화됐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당분간 기업들의 경영환경이 개선될 여지도 적다.
물가는 여전히 고공상승세를 유지하며 7월 까지는 소비자물가지수가 5%를 넘어설 것이란 분석이 경제 수장들 입에서 직접 나온 상황이다. 게다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 장기화, 중국 봉쇄령 등으로 인해 원자재가격 역시 좀처럼 안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은행 관계자는 "앞으로 경제상황이 불투명한 만큼 기업들의 운영자금 수요가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라며 "시설자금보다 운영자금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얘기는 그만큼 부실화 될 기업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은행들, 기업대출 점검나선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기업들에게 돈을 내어준 은행들도 비상에 걸렸다. 자칫 기업대출에서 대규모 부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져서다.
기업대출의 경우 건당 규모가 크기 때문에 부실이 연쇄적으로 발생하면 은행의 건전성이 급격하게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일단 당장 눈앞에 보이는 지표는 건전하다. 지난 3월말 기준 기업대출 연체율은 0.26%로 조사됐다. 기업별로는 대기업 대출 연체율이 0.23%였고 중소기업대출 연체율은 0.27%였다.
다만 이를 은행들은 곧이 곧대로 해석하고 있지 않다. 은행 관계자는 "대기업의 경우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자금을 조달하는 경우가 드물고 대기업인 만큼 금융기관 여신에 대해서는 대체로 관리가 철저한 편"이라며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코로나19 만기연장과 이자유예 등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착시 현상이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은행들은 선제적으로 기업대출 리스크 관리에 나서기 시작한 모습이다.
은행 기업금융 관계자는 "상장사의 경우 현재 신용등급이 하락한 기업들을 중심으로 미래 상환능력이 충분한지를 중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경우 더욱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코로나19 지원이 종료되는 시점에 부실이 크게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은행권에서는 향후 전망 등을 점검하고 2분기 충당금을 대규모 쌓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 모습이다.
은행 관계자는 "기업대출이 급격하게 늘었지만 대내외 상황이 녹록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라며 "금융당국에서도 은행 등 금융기관의 손실흡수능력을 강조하고 있기 떄문에 현재 산업별 기업대출 상황등을 면밀히 점검하고 이에 따라 충당금도 충분히 쌓아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은행들이 올해 KPI(핵심성과지표)에 리스크 관리 배점을 높였을 정도로 공을 들이고 있다"면서도 "기업들의 상황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된다면 대규모 충당금을 쌓았던 2020년 수준으로 쌓을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힘들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