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함께 그룹을 이끌 핵심 파트너인 우리은행장을 선임하는 데 공을 들이는 모양새다. 애초 회장 후보로 추천됐을 당시 이원덕 우리은행장이 사임의사를 내비치자 최대한 빠르게 차기 행장을 선출하겠다는 것과 달리 약 두 달 여간의 시간을 들여 행장을 선출하기로 하면서다.
임종룡 회장이 차기 행장 선임에 '장고'에 나선 이유는 앞으로 우리금융지주의 인사 방향을 명확히 하기 위함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철저한 성과주의를 바탕으로 우리금융지주에 오랜 기간 자리 잡은 출신 은행발 '파벌싸움'을 종식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는 분석이다.
4명 압축된 우리은행장…리테일보단 '기업·기관'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지난 24일 자회사대표추천위원회를 열고 차기 은행장 후보군을 이석태 우리은행 국내 영업부문장, 강신국 우리은행 기업투자금융부문장, 박완식 우리카드 대표, 조병규 우리금융캐피탈 대표 등 4명으로 압축했다.
후보군의 면면을 살펴보면 임 회장의 차기 은행장이 갖춰야 할 자질을 엿볼 수 있다. 바로 '영업능력'이다. 특히 개인고객 보다는 기업, 기관영업과 관련된 영업능력을 우선순위로 둔 모습이다.
이와 관련 임종룡 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우리금융은 오랫동안 기업금융의 명가로 인정받았다"라며 "더욱 차별화된 경쟁력으로 기업금융 시장에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강자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실제 현재 기업금융 관련 핵심보직을 담당하고 있는 강신국 기업투자금융부문장은 물론 박완식 우리카드 대표이사(우리은행 개인·기관그룹 집행부행장), 조병규 우리금융캐피탈 대표(우리은행 기업그룹 집행부행장) 모두 기업과 기관영업 분야에서 요직을 지냈다. 이석태 부문장도 이전 영업총괄그룹 집행부행장을 지내며 관련 경험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 고위 관계자는 "우리은행은 사실 기업금융, 기관금융에서 최근 몇년 사이 쓴맛을 봤다. 서울시금고를 신한은행에 내준 것이 대표적"이라며 "게다가 소매금융의 경우 최근 기준금리 인상 등, 이자장사 논란 등으로 인해 더 이상 파이를 늘리기 쉽지 않은 상황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이어 "임종룡 회장 역시 오랜 기간 은행의 먹거리가 될 수 있는 기업금융과 기관영업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 아니겠느냐"고 덧붙였다.
은행장 선출 '60일 장기프로젝트' 돌입
주목할 만한 대목은 임종룡 회장이 우리은행장 선출에 약 두 달여간의 긴 시간을 할애하기로 결정했다는 점이다. 임 회장이 회장 후보로 낙점된 이후 이원덕 행장이 사임 의사를 내비치자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은행장을 선출하겠다던 결정을 뒤집은 셈이다.
종전까지 우리금융지주는 계열사 대표이사를 선출할 때 회장을 위원회장으로 하는 자회사대표후보추천위원회를 약 2~3차례가량 연 뒤 회의를 거쳐 선출했다.
임 회장 역시 취임 이전 의중이 반영된 계열사 대표이사 인사에서 이같은 절차를 이어갔지만 은행장 선출은 충분한 시간을 두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전에는 단순 회의를 통해서만 은행장을 뽑았다면 이번에는 △전문가 심층인터뷰 △평판 조회 △업무역량 평가 △심층면접 등 4차례에 걸쳐 후보를 2명으로 압축한다.
이후 또 한번의 심층면접을 통해 차기 은행장을 확정한다. 우리금융지주는 이같은 과정이 약 5월말경 끝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은행장 선출에 약 두 달여 가량의 시간을 할애하는 셈이다.
이처럼 60일간의 은행장 선출 '장기 프로젝트'에 나서기로 한 것은 임 회장이 취임일성으로 내건 조직쇄신의 일환이라는 게 우리금융의 설명이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이번에 새로 도입한 은행장 선정 프로그램 시행 경험을 토대로 경영진 선발을 위한 경영승계프로그램의 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라며 "이는 새로운 기업문화 정립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일·상업 파벌싸움…이제는 '끝"
임 회장이 새롭게 내건 은행장 선출 방식은 우리금융지주에 깊게 뿌리내린 '출신은행 간 파벌싸움'을 종식시키기 위한 임 회장의 의지도 담겨있다는 분석이다.
우리은행은 과거 한일은행과 상업은행의 대등합병으로 탄생하면서 현재까지 출신은행 간 파벌싸움이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임 회장 역시 취임사를 통해 "분열과 반목의 정서, 낡고 답답한 업무 관행, 불투명하고 공정하지 못한 인사 등 음지의 문화"라고 직격했을 정도다.
이에 임 회장은 후보군을 한일은행 출신 두 명과 상업은행 출신 두 명으로 좁혀 출신은행간 균형을 맞췄다. 강신국 그룹장과 박완식 대표는 한일은행, 이석태 부문장, 조병규 대표는 상업은행 출신이다.
은행 한 고위 관계자는 "파벌 싸움을 종식시키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기는 했지만 후보군이 한 은행 출신으로 쏠린다면 여기에서 나오는 불평이나 불만이 분명히 수면위로 떠오를 것"이라며 "이를 충분히 고려해 후보들의 출신을 안배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어 "다만 은행장 선출 과정을 금융지주 회장 선출 과정 만큼 세밀하게 가다듬었고 이 과정에서 내부 뿐만 아니라 외부의 평가도 반영하게 했다"라며 "출신은행 보다는 능력을 보겠다는 의중이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