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 일부라도 (배상)할 수 있다면 소비자는 유동성이 생겨 좋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생각이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홍콩 H지수 ELS(주가연계증권) 불완전 판매와 관련해 일부 사실을 인정한 금융사들은 분쟁조정절차에 앞서 자율적으로 배상하는 것이 소비자에게 도움이 될 것이란 의견을 피력했다. 다만 이와 관련해 금융사들과 직접적인 소통은 없었다는 입장이다.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의 경우 부실 사업장을 신속히 정리할 수 있는 적기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를 통해 묶여 있는 자금이 성장성 있는 곳으로 순환할 수 있도록 돈맥경화 현상을 막아 금융 기능 회복에 주력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복현 원장은 5일 '2024 금융감독원 업무계획' 브리핑에서 H지수 ELS 불완전 판매 검사와 배상안 마련 등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지난 달 8일 부터 11개 주요 판매사에 대한 현장검사와 민원조사에 착수해 점검을 진행하고 있다. 설 연휴(9일) 전까지 각 금융사별 문제점을 유형화·체계화하고 연휴가 끝나면 2차 현장검사 등을 통해 이달 말까지 책임 분담 기준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복현 원장은 금융사들이 합리적 의사결정을 통해 자발적으로 투자자들의 일부 손해에 대한 배상이 이뤄지길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원장은 "검사 진행 과정에서 일부 금융사도 인정하는 부분이 있어 자발적으로 일부라도 배상한다면 소비자는 유동성이 생겨 좋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라며 "자율배상이 진행되면 분쟁조정절차도 빨라져 개인 부담도 줄이고 소비자 체감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금융사와 구체적으로 의견 교환을 한 것은 아니지만 (관련 사안을) 준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이복현 원장의 이 같은 발언이 금융사에 대한 압박일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자체 배상안 마련은 해당 금융사의 내부의사 결정 사안"이라며 "(자체배상 하지 않는다고해서) 특정 불이익은 전혀 없고 분쟁조정 이슈 절차가 끝나기 전 일부 금융사가 인정하는 범위 내에서 지급하고 나머지는 법적 절차를 통해서 가린 적도 꽤 있다"고 설명했다.
투자자 책임과 관련해선 재판매의 경우에도 불완전 판매가 이뤄졌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ELS는 오랜 기간 운영하는 상품인 만큼 여러 차례 가입해 상품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 것이란 인식으로 불완전 판매가 아닐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 원장은 "재가입 하는 경우 (상품에 대해) 알 것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최초 가입 시 리스크가 고지 됐는지, 이전에 일부 이익을 본 것이 재가입 권유 명분으로 간이 절차로 한 것이 아닌지 볼 필요가 있다"며 "앞서 가입 때 리스크 고지가 안된 상태에서 이후 재가입 때 그냥 넘어갔다면 소비자 책임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소비자 전체 자산 구성과 규모에 따라 적절한 권유가 이뤄진 것인지, 원금이나 그에 준하는 자금이 필요하면 이에 대한 설명과 권유가 있었는지 등 구매 권유 담당자가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게 금융소비자보호법 정신"이라며 "이 부분을 면밀히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부동산 PF 부실사업장에 대해선 신속한 정리를 다시한번 강조했다. 그 동안 SVB(실리콘밸리은행) 사태와 새마을금고 이슈, 미국 국공채 금리 상승에 따른 시장금리가 흔들리는 상황 등으로 인해 부실 PF의 신속한 정리가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었지만 현재는 국채금리 안정 등 금리가 더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시장 인식으로 사업장 정리의 적기가 왔다는 게 이 원장 생각이다.
이복현 원장은 "(부실 사업장을) 재평가해서 시장이 소화하는 방식으로 정리하면 속도를 내는 순기능이 있다"며 "너무 늦어지면 스타트업에 대한 지원이나 사업성이 있는 부동산 개발 등 금융이 필요한 곳에 자금이 묶여 돈이 나가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실물경기가 살아나는 시기에 자금 공급이 원활해지려면 (부실PF 사업장 정리) 시간 여유가 많지 않다"며 "시장이 받쳐줄지는 또 다른 문제지만 (부실 사업장 정리 지연이) 시장 문제가 아니라 이해관계에 의한 것이라면 뚫고 가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태영건설 워크아웃이 부동산 PF 우려를 촉발한 만큼 금감원도 부실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등에 주력하고 있다. 현 상황에선 태영건설 수준으로 시장에 충격을 줄 정도의 부실 건설사는 없다는 게 금감원 설명이다.
이복현 원장은 "많게는 수십개에서 중점적으로는 10여 건설사를 챙겨보고 있다"며 "완전히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시장에 충격을 줄 정도로 유동성 준비가 되지 않은 곳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