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이 쏟아지고 있다. 올들어 발의되고 있는 경제민주화 법안들은 새로운 정부와 야당 등 정치권의 이해 관계가 적절히 맞물린 결과라는 평가다. 반면 법안의 대상이 되고 있는 기업들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이러다가 성장 엔진이 꺼져 초일류 기업은 커녕 2류, 3류 기업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온다. 경제민주화 관련 주요 법안들의 내용과 영향을 3부에 걸쳐 진단해 본다.[편집자]
김모씨는 상장사인 A사의 주주다. 어느날 뉴스에서 A사 자(子)회사인 B사의 경영진이 불법행위를 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분노한 김씨는 B사의 해당 임원에게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하기로 마음먹었다.
김씨는 불법행위가 일어난 B사의 주식을 1주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소송이 가능했다. B사 모(母)회사인 A사의 주주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B사의 주주인 이모씨도 또 그 임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 B사는 모회사 주주인 김모씨, 그리고 주주인 이모씨의 소송에 각각 대응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 모(母)회사 주주가 자회사 간섭
다중대표소송이 도입되면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법무부는 상법 개정안 입법예고를 통해 일정요건을 갖춘 모회사의 주주가 자회사나 손자회사, 증손자회사 등의 이사에 대한 책임을 추궁할 수 있도록 했다. 모회사 소액주주를 보호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재계, 특히 지주회사 체제의 기업들은 우려섞인 반응을 내놓고 있다. 다중대표소송은 해외에서도 입법 사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인 만큼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실익보다 비용이 클 것이라는 주장이다.
실제 미국의 경우 다중대표소송을 인정하는 판례가 있지만 그 요건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즉 ▲지배회사가 종속회사의 주식을 모두 보유하고 ▲동일한 사업을 공동으로 실시하고 ▲지배회사가 종속회사를 위해 자금을 조달하고 ▲양사의 이사나 임원이 같은 경우 등이다.
이는 사실상 지배회사와 종속회사를 한 회사로 인정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다중대표소송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반면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개정안은 지분 50%를 넘을 경우 소송이 가능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해외 법원에서 다중대표소송이 제기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가령 국내 모회사의 주식을 미국 투자자가 취득하고, 이 투자자가 자회사를 대상으로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세미나에서 "지배회사의 소액주주들이 종속회사의 이익을 위해서만 다중대표소송을 제기할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며 "단기 차익을 노린 국제투기자본 등에 악용될 소지도 있다"고 우려했다.
◇ 소송 남발 우려..제한적 허용 필요
주주간 이중 삼중의 소송이 제기되거나 기업의 독립경영 원칙이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는 결국 기업의 경영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모회사인 A사, 자회사인 B사(지분율 51%), 손자회사인 C사(지분율 51%)가 있다고 가정하면 A사의 주주는 B사와 C사의 이사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B사 주주 역시 C사의 이사를 대상으로 소송에 나설 수 있다. B사와 C사 각각의 주주는 물론 회사 차원에서도 소송이 가능하다. 이런 복잡한 과정에서 적지않은 혼란과 비용이 초래될 것이란 설명이다.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주주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의견도 있다. 자회사의 이사에 대해 손해배상책임을 추궁하거나 면제할 권한은 자회사 주주에게 있지만 모회사 주주가 이를 무시하고 소송을 제기한다면 결국 자회사 주주의 권리를 침해하는 결과라는 해석이다.
또 다중대표소송을 인정할 경우 특정사업을 모회사내 사업부로 운영하는 것과 별도 자회사로 두는 것의 차이가 없고, 이는 결국 현재 기업집단구조에 혼란을 초래할 것이란 설명이다.
이와관련 김지환 경남대 법학과 교수는 "제도 도입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만일 제도를 도입한다면 미국 판례와 같이 모회사와 자회사간 통합경영이 이뤄지는 경우에 한해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는 견해를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