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이 쏟아지고 있다. 올들어 발의되고 있는 경제민주화 법안들은 새로운 정부와 야당 등 정치권의 이해 관계가 적절히 맞물린 결과라는 평가다. 반면 법안의 대상이 되고 있는 기업들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이러다가 성장 엔진이 꺼져 초일류 기업은 커녕 2류, 3류 기업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온다. 경제민주화 관련 주요 법안들의 내용과 영향을 3부에 걸쳐 진단해 본다.[편집자]
스티브 잡스. 미국 애플의 공동창업자로 누구나 아는 이름이다. 그런 그가 1985년 애플에서 쫓겨난다. 당시 잡스가 내놓은 제품이 실패를 거듭하자 애플 이사회에서 그를 해임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공동창업자인 잡스를 이사회에서 해임할 수 있었던 것은 애플이 집행임원제도를 도입하고 있었던 결과다. 이처럼 이사회가 최고경영자 등 임원을 선임·해임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것이 바로 집행임원제도다.
한국도 최근 법무부가 상법 개정안을 발표하며 이 제도 도입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의무조항이 논란의 대상이 됐다.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자산 2조원 이상 대기업들은 모두 집행임원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 경영은 임원이, 이사회는 감독만
집행임원은 회사에서 경영을 맡고 있는 임원을 의미한다. 보통 최고경영자(CEO) 최고재무책임자(CFO) 등으로 불리는 사람들이다. 이런 집행임원들의 선임과 해임을 이사회에서 결정하는 것이 집행임원제도다.
이 제도는 이사회의 업무감독기능과 집행기능을 분리해 업무감독은 이사회가, 집행은 집행임원이 담당하며 효율을 극대화하자는 것이 목적이다. 법무부의 개정안 역시 이같은 취지에서 출발한다.
애플의 사례에서 보듯 주로 미국에서 활성화된 집행임원제도는 아직 국내에서 도입된 사례는 많지 않다. 현재 삼성전자나 현대차 등을 비롯한 대부분의 대기업은 집행임원인 대표이사가 등기임원으로 이사회에 참석하는 구조다.
때문에 집행임원제도를 의무화한 법무부의 상법 개정안에 대해 많은 기업들이 난색을 표하고 있다.
무엇보다 현재의 경영구조를 전면적으로 수정해야 하는 부담이 생기기 때문이다. 사외이사들이 과반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현재 이사회 구조상 사실상 사외이사들이 기업의 경영자를 선임하는 상황으로 바뀌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의사결정의 속도가 느려질 수 있고, 자칫 이사회와 집행임원간 갈등이 불거질 경우 기업의 경쟁력이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법무부의 개정안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며 "미국을 포함, 세계 어디에도 집행임원제도를 의무화한 나라는 없다"고 지적했다.
◇ "지배구조 선택, 기업 자율에 맡겨야"
"회사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면 경영을 할 수 없다." "도요타에는 도요타만의 경영방식이 있다."
지난 2003년, 조 후지오 당시 도요타 사장의 말이다. 지금부터 10여년전 일본 정부는 상법 개정을 통해 집행입원제도를 도입하자 소니 등 많은 기업들이 이를 채택했다. 하지만 도요타는 반대의 길을 걸었다. 내부사람으로 구성된 기존의 이사회 체제를 선택한 것이다.
그 결과는 극명했다. 집행임원제도의 공과를 평가할때 소니와 도요타가 대표사례로 비교될 정도다. 이사회와 최고경영자를 분리한 소니는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데이 노부유키, 하워드 스트링어 등 이사회에서 선임한 최고경영자들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반면 전통적인 체제를 고수한 도요타는 대규모 리콜사태, 일본 대지진 등 위기에도 불구하고 다시 세계 1위 자동차기업의 자리를 되찾았다. 사상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한 후에는 전문경영인 체제를 접고, 오너인 도요타 아키오 사장이 경영전면에 나서기도 했다.
때문에 경영지배구조는 기업이 전략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권종호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토론회에서 "지배구조는 기업의 운명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문제"라며 "이 선택은 기업이 자기책임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권 교수는 "기업은 업종 등 자신이 처한 상황에 가장 적합한 지배구조를 선택할 것이고, 그 평가는 결국 냉혹한 시장이 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정호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경영지배구조가 전략적 선택사항이라는 점은 소니와 삼성전자가 잘 보여주고 있다"며 "전자 거인이었던 소니는 컴퍼니제를 통한 분권화를 무리하게 시행하다 뒤쳐진 반면 삼성은 오너경영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