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지배구조 개편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을 통해 이재용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은 더 강화된 것으로 평가된다.
공익재단 이사장 선임에 이어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회사인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합병함에 따라 삼성의 승계작업이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 삼성전자 지배력 커졌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통해 이재용 부회장은 간접적으로나마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높일 수 있게 됐다. 그동안 이 부회장은 삼성 지배구조 정점에 위치한 제일모직 지분 23.2%를 통해 그룹 승계를 대비해 왔다.
하지만 직접 보유한 삼성생명의 지분은 0.06%, 삼성전자 지분은 0.57%에 불과했다. 삼성 지배구조는 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를 축으로 형성돼 있는 만큼 이 부회장이 그룹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선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지분을 확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건희 회장이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 20.76%와 삼성전자 지분 3.38%의 승계 시점이 관심을 모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부회장의 삼성SDS 지분 11.25%가 이 회장의 지분 인수를 위한 지렛대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역시 같은 배경이다.
다만 이번 합병을 통해 이 부회장은 이 회장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인수하지 않고도 간접 지배력을 높이는 효과를 얻게 됐다.
삼성물산과의 합병을 통해 이 부회장의 지분율은 23.2%에서 16.5%로 낮아진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 지분율 역시 각각 7.8%에서 5.5%로 줄어든다. 이건희 회장 지분율은 3.4%에서 2.9%로 축소된다.
대신 제일모직은 삼성물산이 가지고 있던 삼성전자 지분 4.06%를 가져오게 된다. 이 부회장의 본인 지분율이 줄어든 대신 제일모직을 통해 삼성전자에 대한 간접 지배력을 높이는 결과가 된 셈이다.
제일모직이 2대 주주인 삼성생명이 가지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 7.21%까지 감안하면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을 통해 삼성전자 지분 10% 이상에 대한 지배권을 얻은 셈이다. 여기에 이 회장의 삼성생명 지분을 가져오게 되면 이 부회장의 지배력은 더 단단해진다.
◇ 다음 행보는..지주회사 전환?
이번 합병을 통해 삼성은 계열사들간 얽혀있던 지배구조를 상당부분 단순화했다. 우선 합병 삼성물산(제일모직+삼성물산)을 정점으로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이 위치하게 된다.
삼성물산이 삼성전자는 물론 삼성엔지니어링(7.8%), 제일기획(12.6%), 삼성SDS(17.1%), 삼성바이오로직스(4.9%) 등의 지분을 보유했던 만큼 합병 삼성물산과 삼성전자를 축으로 제조계열사가, 삼성생명을 축으로 금융 계열사가 자리잡는 구조가 됐다.
이 부회장은 이 회장이 가진 삼성생명, 삼성전자 지분만 인수하면 과거보다 지배구조가 단순화된 삼성그룹을 지배하게 된다.
이에 따라 그동안 제기됐던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까지 실행할 것인가에도 관심이 쏠린다. 그동안 삼성 지배구조의 문제로 제기됐던 복잡한 순환출자를 해소하고, 이재용 부회장 체제에 맞춘 새로운 지배구조를 선택할 것이냐 여부다.
일단 지배구조를 단순화한 만큼 당장 지주회사 전환까지 결정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계열사간 지분 정리 등에 여전히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고, 관련법상 제약도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 논의되고 있는 중간지주회사법이나 사업재편지원특별법(원샷법) 등이 시행될 경우 지주회사 전환에 대한 제약이 상당부분 해소되는 측면도 있다.
중간지주회사법을 통해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중간지주회사를 만들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원샷법에서 논의되고 있는 지주회사 자회사들의 손자회사 공동출자 허용이 이뤄지면 지주회사 전환과정에서 계열사간 지분정리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 입장에서는 일단 이번 합병을 통해 지배구조 단순화와 이 부회장의 지배력 강화라는 효과를 거둔 만큼 향후 관련법 처리 등의 과정을 보며 지주회사 전환 여부의 득실을 따질 수 있게 됐다.
◇ 더 빨라진 승계작업
이 부회장으로의 승계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점에 대해 삼성도 부인하지는 않는다. 특히 최근 이뤄진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 이사장 선임이 상당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은 그동안 계열사 사업재편을 통해 삼성그룹 전체 사업 포트폴리오와 지분구조를 단순화하는 작업을 해왔다. 계열사간 사업교환부터 상장, 합병, 방산·화학분야 매각 등이 숨가쁘게 이뤄졌다.
이런 일련의 작업이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이 부회장의 공익재단 이사장 승계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특히 이 재단들은 홍라희 삼성 리움 관장과 이수빈 회장이 잠시 맡은 것을 제외하곤 줄곧 이건희 회장이 이사장을 맡아왔다. 그룹의 총수가 맡아온 자리다. 공익재단 이사장 선임에 이어 이번 합병 역시 이 부회장으로의 승계작업이 과거보다 더 속도를 내고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삼성 관계자는 "이 부회장으로의 승계작업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며 "다만 앞으로 언제, 어떤 형태의 결정이 내려질 것인지에 대해선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