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에 비상경영의 바람이 다시 거세지고 있다. 경기침체와 엔저 등 환율 영향으로 실적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메르스 사태로 인해 소비심리가 극도로 위축되며 주요 기업들의 위기감은 높아진 상태다.
기업들은 각종 경비절감에서 출근시간 조정 등을 통해 임직원들에게도 이같은 분위기를 전달하고 있다. 이같은 긴장 상황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 '내우외환' 비상 선포한 포스코
비자금 조성 비리 수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대우인터내셔널을 둘러싼 내홍까지 벌어진 포스코는 최근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위기 타개를 위해 '비상경영쇄신위원회'를 구성한 상태다. 팀장급 이상 임직원들은 주말에도 출근하는 등 조직의 긴장감은 극도로 높아진 상태다.
포스코는 권오준 회장 체제 출범후 계열사 구조조정 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본격적인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재무구조 개선 역시 지체되고 있는 상황이다. 포스코는 쇄신위원회를 통해 위기 탈출을 시도하고 있지만 비상경영 체제는 상당기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부터 비상경영에 돌입한 현대중공업 역시 아직 탈출구를 찾지 못한 상태다. 권오갑 현대중공업 사장은 지난해 취임과 동시에 고강도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전체 임원의 3분의1이 퇴진했고, 직원들에 대한 희망퇴직도 실시했다.
하지만 지난 1분기에도 영업손실을 기록하는 등 6분기째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2억2000만 달러 규모의 교환사채 발행에 나서는 등 재무구조 개선작업을 하고 있다. 아직 주력사업이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현대중공업의 비상경영 역시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룹 오너의 부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SK와 CJ그룹도 장기간 비상경영체제를 이어가고 있다. 최태원 회장의 장기 부재가 계속되고 있는 SK그룹은 지난해 SK하이닉스를 제외한 대부분 계열사들 실적이 좋지 못했다.
특히 적자를 기록한 SK이노베이션은 비상경영의 강도가 한층 더 강해졌다. 새로 수장을 맡은 정철길 사장은 비주력분야 자산매각 등 강력한 구조조정을 진행중이고, 과거에 사라졌던 야근이 부활하는 등 내부에서 느끼는 긴장감도 높아진 상태다.
이재현 회장의 재판이 진행중인 CJ그룹 역시 비상경영이 계속되고 있다. 경영위원회를 통해 대응하고 있지만 이 회장의 장기부재가 불가피한 만큼 이같은 분위기는 계속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 비용 줄이고, 출근 당기고
삼성과 현대차 등 재계 1, 2위 그룹들도 이미 경비절감 등 사실상 비상경영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지난달 신경영 22주년을 맞은 삼성은 최근 후쿠다 전 고문의 인터뷰 등을 통해 정신무장을 강조했다. 삼성전자 등 주력 제조계열사들은 이미 수개월째 각종 경비절감 등에 들어간 상태다. 특히 메르스 사태와 삼성물산 합병 등 돌발이슈들이 발생하며 그룹 전체의 긴장감은 한층 더 높아진 상태다.
국내외에서 판매부진에 직면해 있는 현대차그룹의 위기감도 상당하다. 전사적으로 자동차 판매 확대를 독려하는 한편 불요불급한 경비를 줄이고 있다. 특히 내수시장에서의 부진을 타개하기 위한 대책수립에 골몰하고 있다.
LG그룹 계열사들 역시 연초 각종 경비를 최대 절반까지 삭감했고, 최근 판매가 부진한 사업부문은 주말 근무가 일상화되고 있다. "모 사장의 경우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양복, 일요일은 그나마 캐주얼을 입고 출근한다"는 얘기가 회자될 정도다.
금호아시아나그룹도 1일부터 출근시간을 조정하는 등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메르스 사태로 인해 여행객이 줄며 아시아나항공 실적이 나빠지고 있고, 그리스 사태 등 글로벌 경기침체로 인해 금호타이어 등 계열사들의 상황도 여의치 않다는 판단에서다.
재계 관계자는 "일부에서 경비절감이나 출근시간 조정 등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그만큼 기업들이 위기감을 크게 느끼고 있는 상황"이라며 "경제나 기업들의 상황이 단기간 좋아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만큼 비상경영 분위기는 더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